`끄라비` 박형서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292쪽

지난 2003년 첫 소설집 `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이래 출간하는 책마다 기이하고 극단적인 상상력과 예리한 유머로 독자를 사로잡아온 소설가 박형서가 네번째 소설집 `끄라비`(문학과지성사)를 출간했다.

표제작을 포함해 7편의 작품이 실렸다.

박형서가 안고 있는 `뻔뻔한 허풍` `발칙한 상상` 등의 수식어가 다시 한 번 증명된다. 표제작 `끄라비`부터가 그렇다. 작가의 상상을 거친 태국의 휴양지 `끄라비`는 책에서 한 여행객을 흠모하는 질투의 화신이 된다.

`끄라비`는 흠모하는 여행객이 자신을 떠나지 못하게 하려고 기상을 악화시키는 등 투정을 부린다. 더 한 패악은 여행객이 애인을 데려왔을 때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작가가 사랑과 애착을 빙자한 폭력에 대해 말하는 방식이다.

작가의 허풍과 상상은 수록작들에서 확장한다. 360억년을 주기로 붕괴와 대폭발을 반복하고 있는 우주에서 다음 우주의 신을 육성한다는 이야기 `티마이오스`에서는 우주로도 뻗는다.

그렇다고 위트와 상상만이 박형서를 말하지는 않는다. 박항서는 파이(π)값이 하나의 지점을 향해 수렴되고 있음을 증명하려는 수학자를 내세운 `Q.E.D.`를 통해 소설가로서의 자세를 말한다. `이상이 내가 증명하려는 내용이었다`라는 의미로 수학자들이 증명을 마칠 때 찍는 약호 `Q.E.D.`를 영원히 찍지 못하는 수학자 이면에 시도로서 증명되는 작가가 있다.

제3세계 희귀 언어로 쓴 소설을 표절한 작가를 주인공을 내세운 `아르판`에서도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다. 소설 속 표절 작가는 희귀 언어로 쓴 소설은 읽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소설이 아니고 이를 가져와 많은 독자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언어와 문화로 각색한 뒤에야 비로소 소설다운 소설이 된다는 발칙한 주장을 펼친다.

박형서는 `Q.E.D.`가 애초 목적이 아닌 듯 끊임없이 소설을 파헤치고 있다. 지침서를 닮은 `논쟁의 기술`, 논문의 형식을 빌린 작품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 등이 실린 2006년 두 번째 소설집 `자정의 픽션`에서부터 본격화된 작업은 현재 진행형이다.

“또다시 싸움을 걸었다. 단방에 맥없이 코피를 뿜으며 나가떨어지기에 어찌 된 일인가 봤더니 그게 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그 아이는 3학년 최강 싸움꾼이었고, 나보다 심한 청각장애가 있었으며, 게다가 여자애라나 뭐라나.”(`어떤 고요` 252쪽)

“남에게 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건 마약과 같은 작업이어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용되는지 따위는 관심 밖이다. 어쩌면 그건 성욕과 다를 바 없을지 모른다. 번식이 육신의 DNA를 보존하려는 욕망의 소산이라면, 예술은 정신의 DNA를 남기려는 욕망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끄라비`에 수록된 단편 `아르판`에 나오는 대목이다. 왜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그리 들려주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생물학적 해석이 그럴듯하다. 아르판은 화자가 동남아시아 오지의 `와카`라는 곳에서 머물며 발견한 이야기꾼이다. 아르판은 “세상의 마지막 전신주로부터 수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산등성이 분지에서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이야기를 써 내려간” 사람인데, 작가가 그곳에서 아르판의 이야기를 듣고 문명세계로 돌아와 자신의 소설에 써먹는다.

제3세계 작가들을 초청한다는 명분으로 서울까지 데려온 아르판은 정작 자신의 서사가 차용된 나의 작품만 인기를 끄는 모습을 물끄러미 관찰할 따름이다. 그에게 사실을 고백했는데 아르판은 나를 “내게서 생명을 받아간 자, 내게서 모든 걸 물려받은 사람”이라고 칭하면서 “제 정신의 DNA가 어떤 식으로 세상에 간섭했는지 확인한 뒤 자랑스럽게 허리를 펴 퇴장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으로 돌아간다. 이야기꾼의 본질과 그 욕망의 바탕을 우화 형식으로 전개한 박형서의 재치와 재능이 돋보인다.

 

▲ 소설가 박형서

이런 독특한 서사 스타일은 이번 소설집에 실린 여타 단편들에도 여일하게 적용된다.

마지막에 실린 자전소설 `어떤 고요`에는 문장마다 위트, 혹은 비애가 묻었다. 유아기에 열병을 앓고 일시적으로 청력을 상실한 사건에서 시작하는 소설에는 그가 `글을 쓰겠다`고 선언적으로 마음먹은 계기, 문학상을 받은 후의 고민 등이 담겼다.

`어떤 고요` 속 `어림잡아 5년 이내에` 완전히 듣지 못하게 될 거라는 전문의의 진단 앞에서 “귀도 안 좋고 해서 20년쯤으로 들었다”는 작가의 농담은 슬프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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