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야네 말` 이시영 지음 창비 펴냄, 149쪽

맑고 투명한 서정 속에서 더욱 빛나는 강인한 시정신으로 한국 현대사와 문학사를 관통해온 이시영 시인의 신작 시집 `호야네 말`(창비)이 출간됐다. “현실에 맞서 시대의 진실을 세심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밀도 높은 서정이 다양한 형식 속에 조화롭게 어우러진 뛰어난 시정신의 소산”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박재삼문학상`과 `만해문학상`을 잇따라 수상한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이후 2년 만에 펴내는 열세번째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서정과 서사를 아우르는 독특한 감성의 어법으로 단형시, 산문시, 인용시 등 변함없이 다채로운 형식을 선보이며 삶에 대한 애정과 웅숭깊은 자기성찰이 깃든 `오래된 노래`를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직나직 들려준다. “짧은 서정시라 불리는 독특한 시 형식에 `스스로 그러함`을 드러내는 영원한 순간들의 미학”(오철수, 발문)이 현란한 수식 없이 간결하고 명료한 일상적 언어에 녹아든 단정한 시편들이 묵직한 울림과 잔잔한 감동을 자아낸다.

“동양파라곤아파트 동쪽 정원 측백나무 옆/고양이 세마리가 나와 자울자울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데/그중 두 놈은 흰 배에 검은색 등이고/나머지 한 놈은 완전 호랑이 색깔이다/그런데 저렇게 평화로울 수 있다니!”(`평화롭게` 전문)

이시영의 시는 짧지만 긴 여백 속에 큰 울림이 있다. 냉정하다 싶을 만큼 차분한 감성과 극도로 절제된 언어로 사물의 현상과 실체를 에두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정확히 꿰뚫어보는 시선이 더없이 예리하면서도 한편 따뜻하다.

`서정시를 쓰기 어려운` 팍팍한 시대를 올곧은 정신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시인은 “모든 결빙(結氷)의 시절”(`십이월`)인 현실을 직시하며 그 속에 감추어진 세계의 진실을 드러내는 데 온 힘을 쏟는다. 암울한 시대의 어둠을 밝히며 진실한 삶을 오롯이 지켜온 시인은 편을 가르거나 누구를 따돌리지 않고 서로 어울려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 “국경도 없고 경계도 없고 그리하여 군대나 경찰은 더욱 없는” “그런 `나라` 없는 나라”(``나라` 없는 나라`)를 꿈꾼다.

이시영 시인은 삶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사람에 대한 애정 또한 각별하다. 그래서 그의 시는 쉽게 가슴을 울릴 만큼 `인간적`이다.

이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아직도 어린아이의 마음을 간직하고 싶은 평범한 시인”(시인의 말)으로서 온화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선한 눈빛과 순정한 마음이 새잎에 돋는 이슬방울처럼 “금빛으로 환하게 눈부”(`금빛`)시다.

“양들이 조심조심 외나무다리를 건너 귀가하고 있습니다/곧, 저녁입니다”(`곧` 전문)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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