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

러시아에 첫 메달을 안긴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올가 그라프가 노출사고의 위기를 간신히 넘겨 화제가 되고 있다. 그라프는 지난 10일 소치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3천m에서 자신의 시즌 최고 기록을 갱신한 나머지 기쁨에 겨워 트랙을 한 바퀴 돌며 세리머니를 펼쳤다.

그런데 그라프가 경기복의 갑갑함을 덜기 위해 지퍼를 내린 순간,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속옷을 착용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스피드스케이팅 유니폼은 공기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몸에 착 달라붙는 첨단소재로 제작되는데 일부 선수들은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속옷을 착용치 않는다고 한다. 맨 가슴이 그대로 노출될 뻔한 그라프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아채고 황급히 지퍼를 올리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같은 시기 김연아 선수의 적수로 급부상하고 있는 러시아 피겨스케이팅의 신예 리프니츠카야도 화려한 속옷으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러시아 여성의 속옷은 소련이 해체된 1991년 전후로 화려해지기 시작했다. 2000년으로 기억된다. 당시 유서 깊은 문화와 역사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러시아인들의 구소련시절의 속옷 전시회가 3개월간이나 열려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1917년 10월 혁명에서부터 1991년 고르바초프가 공산당서기장직을 사임하고 공산당 중앙위원회를 해체해 버림으로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까지 소련연방 공산당시절의 속옷들이다. 러시아 미래의 방향을 잡아가기 위해선 과거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 속옷 전시회의 취지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1991년 공산당이 무너지면서 레닌그라드라는 명칭에서 되찾은 이름이다. 1905년 추운 겨울, 짜르(황제)에 대항할 계획을 세우며 노동자들이 언 손을 녹이던 곳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궁전이었고 1917년 2월 혁명의 소식을 듣고 그해 4월 외국에 망명 중이던 레닌이 돌아왔을 때 그를 열렬이 맞은 시민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이었다. 이처럼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혁명의 중심지였다.

속옷 전시회는 세 번의 시대 순으로 분류돼 전시됐다. 첫 번째는 1920년에서 40년대의 속옷들이다. 이 시대의 압권은 볼셰비키 레닌그라드 당 서기장 키로프를 상징하는 인형과 피로 얼룩진 속옷의 재현이다. 레닌이 사망한 뒤 권력투쟁과정에서 스탈린에 의해 1934년 희생된 키로프와 스탈린의 피의 숙청은 1938년까지 계속됐다. 당시 소련인들이 입었던 속옷은 개인의 개성 따위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초라할 정도로 투박한 것이 특징이었다. 여성들의 팬티는 무릎까지 올 정도로 길고 옷감도 두터워 추위에 잘 견디도록 돼있다. 속옷조차 혁명과 전쟁의 시대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1946년에서 1964년 사이의 속옷들로 한 마디로 활동적인 것이 특징이었다. 잠 잘 때는 속옷이지만 작업장에서 겉옷을 벗고 작업을 시작하면 바로 작업복이 되기도 했다. 소련은 전승국이었지만 독일군이 후퇴하면서 공장과 시설 등 많은 것들이 초토화됐다. 전쟁의 공포도 서서히 지워지는 시기인데다 경제재건의 기치가 울러 퍼지는 시기였다. 국가의 계획안에 발맞춰 모두가 열심히 일했던 시기로 여성들의 속옷도 서방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면서 그제서야 하늘색이나 분홍색 등 개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세 번째는 1964년부터 서방의 문화와 경제력이 유입되면서 소련이 무너지는 1991년까지로 옷감도 고급화되고 서유럽인들과 마찬가지로 최고 유행에다 화려하게 치장된 여성들의 속옷이 전시된 것이다.

결국 소련의 속옷 역사는 경제력이 바꿔 놓고 말았다. 구소련이 붕괴되기 전 볼품없었던 그들의 속옷은 세월이 흘러 전 세계 패션쇼에 소개될 만큼 소치올림픽 주체국 러시아의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