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

프랑카는 40대 중반의 독일여인이다. 대학생 시절 프랑카는 어느 날 우연하게 호수를 찾아 27년 전 옛 애인, 하인리히라는 남자를 만났다. 호수에서, 숲에서, 벤치에서 거침없이 사랑을 나누었던 하인리히도 어느덧 세탁소 주인이 된 채 장년으로 변해있었다. 그들은 5박6일간(1989년 11월6~11일) 오랜 세월에 묻혔던 사랑의 불씨를 되살려 놓는다. 프랑카의 가슴이나 하인리히의 뱃살이 옛날 같지 않았지만 둘은 아름답게 바라보면서 다시금 사랑을 불태운다. 그렇게 침대에 묻혀 사랑에 빠져있던 닷새 사이인 1989년인 11월 9일, 위기적 상황에 몰린 에곤 크렌츠 동독 공산당 서기장은 오후 7시를 기해 베를린 장벽을 전면 개방한다고 선언, 사실상 동서독의 장벽이 무너져 버린 채 동독시민들은 파도처럼 서독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프랑카나 하인리히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렇게 사랑을 하고 있었다.

이것은 독일의 작가 엘케 하이덴리히의 소설에 등장하는 한 장면이지만 실제로 많은 서독인들은 베를린 장벽인 무너졌던 그날 저녁, 연인끼리 데이트 하거나 선술집에서 맥주잔을 기울이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많았다. 필자도 그날 1989년 11월9일 저녁 독일에서 독일친구들과 어울려 선술집에서 생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날 그 호프집에서 생맥주를 마시던 많은 독일인들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튿날 TV에서 쏟아져 나오는 청천벽력 같은 특보를 보고서야 놀라는 사람들도 많았다. 베를린 장벽은 그렇게 무너진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지금도 많은 독일인들은 통일이 예상치 못하게 어느 날 갑자기 닥쳐왔다고 얘기한다. 우리로서는 아리송하면서도 여간 흥미 있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구서독은 60년대 이후부터 체제우위를 굳히면서 공산체제는 외부압력으로 굴복시킬 수 없다는 인식아래 꾸준하게 동독체제에 접근하면서 체제변화를 유도해 왔다. 이른바 동방정책이다. 그럼에도 갑작스런 통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상상하기 쉽지 않은 통일이 실제로 어느 날 느닷없이 닥쳐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무너뜨려야 할 장벽은 계속되고 있다. 지금은 많이 잠잠해지고 있지만 통독체제에서 아직도 겉돌고 있는 일부 구 동독인들은 강력했던 구동독체제에 어렴풋한 향수마저 느끼고 있다. 이것을 두고 `오스탈기`(동독을 향한 노스텔지어)현상이라 한다. 통독 기념일이 다가오면 곳곳에서 축제가 열리지만 그러나 일부 동독인들은 아직도 축제 대신 `차라리 옛날이 좋았다`고 깜짝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박근혜대통령 신년기자회견에서 등장한`통일대박`이 연신화제가 되고 있다. 박 대통령 당선 후 줄곧 대립각을 세워오던 야당에서조차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 `통일대박`으로 신년사 대박을 친 셈이다.

`통일대박 발언`후 전문기관이나 전문가들의 의견도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통일비용과 그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와 관련된 것들이다. 통일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지하자원의 엄청난 매장량만 보드라도 상상을 초월하는 경제적 파급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의견들이다.

통독 전부터 서독이 동독의 각종 인프라 구축에 투자 했듯이 한국도 그렇게 해야 만 통일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의견에서부터 통일이 되면 중국과 러시시아를 연결하는 한반도 에너지 망(網)이 완성되어 동북아 경제의 역동성을 크게 키울 것이라는 의견들도 등장하고 있다. 통일대박을 현실적으로 기대하지 않은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남북통일. 언젠가는 현실화될 것이다. 독일 연인들이 사랑에 빠진 사이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듯이 어느 날 갑자기 통일이 닥쳐올지도 모를 일이다. 잇속을 노리는 주변 열강들의 움직임 역시 빨라질 것이다. 이 점 만큼은 우리는 깨어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