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욱 시인

“저는 시와 에세이 창작반을 통해 많은 것을 받고 있습니다. 하루 시 한 편의 필사를 통해 마치 일기를 쓰는 것처럼 저의 하루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많은 후배들이 이 수업을 통해 힐링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제 내면의 변화입니다. 시를 배우며 작은 것 하나에도 그 속에 담긴 의미가 무엇일지 찾으려 노력하고 또 그것을 어떤 말로 표현하면 아름다울까 생각합니다.”

“유년시절, 학창시절, 꿈 등 다양한 주제로 에세이를 쓰면서 과거와 현재, 미래의 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친구와 언니들의 에세이 발표를 들으면서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게 되었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위로 할 수 있었다. 내가 왜 공부하고 있는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더 나아가서는 왜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건 지까지 고민해보게 되었습니다.”

지난 4월이었다. 동지여고에 근무하시는 은사님으로부터 논술 교실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은 대입 논술을 위한 글쓰기의 기초를 다져달라는 게 요지였다. 은사님의 부탁이라 거절하기도 힘들었거니와 무엇보다 망설여졌던 것은 `대입 논술을 위한 글쓰기 지도`였다. 입시를 위한 글쓰기 지도는 그 방법과 접근이 기계적이고 소모적일 수밖에 없다. 단언컨대, 입시나 입상을 위한 글쓰기는 자아와 가치관, 타인과의 관계까지 황폐화시킨다.

고민 끝에 시와 에세이 그리고 NIE를 제시했다. 글쓰기의 기초를 다진 후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논술지도를 하겠다는 일종의 절충안이었다.

그렇게 동지여고 여고생들과의 글쓰기 교실이 5월부터 시작됐다. 1, 2학년이 주축이었는데 모두 20명이었다. 그나마도 한 달 동안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2학년 학생 세 명이 담임교사의 반대로 글쓰기 수업을 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교육에서 고등학생이 지금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생각해보라”는 이유를 들었을 때는 저절로 탄식이 나왔다. 한 학생은 새벽에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왔고 나머지 두 학생은 손 편지를 보내왔다. 듣고 싶은데 못 듣게 되어 죄송하다는 내용이었는데 읽는 내내 가슴이 아렸다.

그것이 계기가 되었다. 매주 수요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의 수업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 얼마나 귀한 시간인가! 얼마나 빛나는 시간인가! 다른 아이들이 문제집과 씨름하는 동안 이 아이들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돌아보고 자신을 둘러싼 세상과 사람을 객관적으로 응시하는 경험을 나눴다. 매주 하나의 주제를 정해 시를 써오면 모두 함께 둘러앉아 허심탄회하게 합평을 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나의 꿈과 비전`이라는 주제로 에세이를 써와 낭독을 하면서 우리의 시와 에세이가 있는 교실은 울음바다가 되거나 웃음이 벚꽃처럼 흩날리기도 했다. 참으로, 참으로 귀한 시간이었고 소중한 나눔이었고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대한민국의 교실에 시와 에세이가 넘치면 좋겠다. 입시라는 거대한 블랙홀 앞에서는 아무 소용없는 얘기지만 어른들은 알고 있다. 입시는 장엄한 끝이 아니라 가엾은 시작이라는 것을. 입시보다 취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각`이고 `깨달음`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라는 물음은 노년기가 아니라 청소년기에 필요하다. 그런 물음을 하도록 돕는 것이 바로 시와 에세이다.

안타깝지만 시와 에세이가 있는 교실은 오는 18일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있다.`삶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란 말을 지난주에 해주었다. 자신이 살아갈 삶의 방향을 이리저리 가늠해보는 이 멋진 여고생들의 이름을 가슴에 오래 간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