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시절 대륙간 대장정 기록은 신라인 혜초의 `왕오천축국전`과 당나라 현장법사의 `대당 서역기`가 있고, 바다를 통한 교역로를 개척한 사람은 명나라 환관 `정화`가 있다. 육로를 통한 여행기는 승려들에 의해 기록됐고, 관리에 의한 해로(海路) 개척은 정화가 유일하다. 육상의 기록은 서역(인도)까지가 한계였다. 승려들의 여행목적은 불법(佛法)을 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10년 넘는 세월 동안 인도대륙 전역을 돌아보고, 불교 관련 서적과 용품들을 수집해서 고국에 돌아와 기록을 남겼으며, 그 기록은 소설가들에 의해 작품으로 각색되기도 했다. 대당서역기는 `서유기`라는 대하소설의 소재가 됐지만 왕오천축국전은 신라인의 기록이어서 그런지 문학작품화 하지 않았다.

신라와 고려는 국제사회로 `열린`강소국(强小國)이었다. `처용가`는 신라에서 벼슬살이를 했던 페르시아 사람의 향가이다. 처용은 신라와 교역하는 아랍 상인들을 보호하는 공사(公使) 구실을 했던 관리로 추정할 수 있다. 아라비아와의 국제교류가 바다를 통해 이뤄졌음을 입증하는 고려가요가 있는데, 바로 `쌍화점`이다.

신라와 고려사회는 성개방사회였고, 아랍에서 온 남자들은 너무나 잘 생겼기 때문에 여자들이 혹했을 것은 분명하고, 그 내용이 `쌍화점`에 나타난다. 쌍화점이란 만두가게인데, 그 주인이 회회아비이다. 한 여자가 그 만두가게에서 자고 왔다고 자랑을 하니 다른 여자들도 다투어 쌍화점에 갔다는 내용이다. 이로 미뤄보면, 페르시아인들이 상당수 신라와 고려에 이민와서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옛부터 육상·해상으로 활발한 문물교류가 있었다. 교역로는 크게 3가지인 데, `초원의 길`은 오늘날 유라시아철도가 놓여져 있는 바로 그 길이고, 실크로드는 중국대륙을 가로질러 사막지대 누란을 거쳐 천산산맥을 넘는 길이다. 그 다음이 바닷길로서 과거 명나라 정화가 선단을 이뤄 탐험했던 교역로이다.

경북도는 육상 실크로드 탐사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용기를 얻어 이번에는 해상교역로를 3개월에 걸쳐 답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내년 개천절 날인 2014년 10월3일 출발할 계획이다. 고대시절 인터넷이 없던 때에는 견문을 일일이 기록하고, 책으로 편찬해서 어렵게 보급했지만 지금은 세상이 손바닥에 들어 있어서 손금 보듯 세상의 일들을 보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기행문 정도 작성하겠다고 그 먼 길을 배 타고 나설 이유는 없다. 그러므로 해로 탐사여행은 일종의 문화·경제 사절단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국가간 친밀도를 더 높이고, 소원했던 도시와는 유대를 강화하고,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도록 대화의 기회를 갖게 하는 것도 한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경북의 위상이 한결 높아지기를 기원하며, 도민들의 적극적인 성원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