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 김사과 지음 창비 펴냄, 352쪽

2005년 스물한살의 어린 나이에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이후 저돌적인 에너지로 세상과 정면으로 맞서며 한국문학의 가장 개성적이고 문제적인 작가로 성장해온 소설가 김사과(29)의 신작 장편 `천국에서`(창비)가 출간됐다. 더 넓어진 시선으로 우리가 처한 이 출구 없는 세계의 전모를 조망하며 그 균열을 곧장 가로질러 나아가는 그의 패기 넘치는 행보가 놀랍고도 미덥다.

소설은 주인공 `케이`가 뉴욕에서 매력적인 여자아이 써머와 그녀의 남자친구 댄과 어울리며 공연과 파티와 마약으로 이어지는 뉴욕의 문화를 경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세련되고 근사한 이른바 힙스터들의 세계 속에서 그녀는 말할 수 없는 고양감에 젖어 반짝이는 여름 한철을 보낸다.

그러나 꿈 같은 나날은 그녀가 서울로 돌아오면서 끝날 수밖에 없다. 현실의 삶으로 돌아온 케이는 그후로 모든 것이 시시하게만 느껴지고, 그러던 어느날 홍대 앞의 한 술자리에서 뉴욕에서 산 적이 있는 재현을 만난다. 그리고 소설은 서울과 광주와 인천 등으로 이어지는 여정을 따라 그녀가 만나고 헤어지는 인물들과 그녀가 겪는 내적 편력을 그려나간다. 잠실 출신의 부유한 여대생 친구, 운동권 출신으로 독일에서 반문화운동을 경험하고 돌아와 문화기획 일을 하다 광주에서 통닭집을 운영하는 중년의 남자,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로 줄곧 인천의 공단에서 일하고 있는 그녀의 초등학교 동창 지원과 그의 가족 등 그녀는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자신을 에워싼 불안과 마주하게 된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야기 틈틈이 끼어드는 작가적 논평이다. 주인공 케이와 주변 인물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뿐 아니라 각각의 인물들이 지닌 사회적 배경과 이력에 대한 설명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며 길게 서술되고, 그것이 소설의 구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거의 모든 인물들에 대해서 그리고 주인공 케이와 그를 둘러싼 현실 자체에 대해서도 작가는 직접적인 논평을 덧붙이기를 잊지 않는다.

 

소설가 김사과

그런 논평들은 주인공 케이의 시선과 때로는 일치하기도, 때로는 거리를 두기도 하면서 시종 주인공에 대한 동일시를 교란한다. 한편으로 김사과 소설 특유의 것이기도 한 날것 그대로의 생동감 넘치는 대화가 그런 논평과 어울리면서 `천국에서`만의 독특하고 절묘한 원근감이 생겨난다. 주인공 케이의 고민과 방황이 그것대로 절실한 감정으로 다가오면서, 또 한편 그것이 내포하는 균열과 모순이 선명한 형태로 드러나는 것. 그것이야말로 `천국에서`가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것이기도 하다.

케이가 겪는 절실한 방황에도 불구하고, 어느 곳도 누구도 그녀에게 해답을 주지 못한다. 뉴욕의 경험을 이해할 세련된 인물로 보였던 재현도 실상은 허영에 찬 무기력한 백수일 뿐이고, 그와는 반대로 성실하고 착해 보이던 지원은 그와는 다른 세계에 속한 케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고민을 털어놓기 위해 찾아간 통닭집 남자마저 그녀에게 또다른 환멸을 안겨준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에는 써머와 댄이 속한 세계마저도 그녀가 예상하지 못했던 파국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케이 자신에게 내재한 것이기도 했다. 그녀는 평범한 것을 경멸하고 세련된 취향을 섭렵하는 것으로 불안을 떨치고 스스로를 증명하려 하지만, 그럴수록 자신이 바로 그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것이 되지 않으려는 노력 자체가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것이라는 사실, 그것이 케이가 직면한 현실이다. 소설은 케이와 같은 감각의 소유자가 필연적으로 도달할 수밖에 없는 그 불안과 자가당착적인 환멸을 냉정한 묘사와 생생한 대화, 직설적인 진술을 교차하며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그럼으로써 소설이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그 불안과 환멸의 바탕에 놓인 세계 자체의 몰락이다. 그리고 이것이 김사과 소설의 눈에 띄게 달라진 면모이기도 하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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