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맛` 하성란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368쪽

하성란의 다섯번째 소설집 `여름의 맛`(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됐다. 네번째 소설집`웨하스 이후 7년 만에 만나는 소설집이고 신작으로도 장편소설 `A`이후 3년 만이다.

최근 2013년 황순원문학상 수상 소식과 함께하는 반가운 만남이다. `여름의 맛`에는`두 여자 이야기` `여름의 맛` `알파의 시간`(현대문학상), `그 여름의 수사(修辭)`(오영수문학상)와 더불어 `카레 온 더 보더`(황순원문학상) 등 한여름을 추억하며 읽기 좋은 10편의 작품들이 풍성하게 담겨 있다.

하성란만큼 난장(場)의 삶을 정확히 직시하고 있는 작가는 드물다. 그동안 그녀는 우연과 폭력의 양면성을 가진 삶을 스스로 양자 우주 속의 입자가 돼 증명하는 소설을 써왔다. 그런데 이번 소설집에서는 좀더 `바라보는 데` 초점을 둔 독특한 시선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오후, 가로지르다`에서`여자`는 누군가가 사무실에서 기르는 뱀이 다리에 스치는 느낌 때문에 책상 위로 뛰어오르게 되는데 그 순간 1인용 감옥과도 같은 큐비클 안에 갇힌 보이지 않던 개별자들의 사연에 눈을 뜨게 된다.

그 안에는 빨래를 널어놓고 `살다`시피 하는 사람, 젊은 날의 사진을 크게 뽑아 걸어놓은 사람, 사랑을 나누는 사람 들이 있다.

이 모습을 작가는 나이와 경력에 맞게 뒤로 밀릴 대로 밀린 `나이 든` 화자의 쓸쓸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또 `알파의 시간`에서는 국도 야립 간판에 새겨진 아버지의 흔적을 통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엄마의 생을 되돌아보는데 당시에는 몰랐던 엄마의 빛나는 한 시절이 불쑥 떠오르자 `나`는 “내 자신이 풍경의 일부”가 된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이때는 바로 엄마와 자신의 시간(모습)이 횡의 시간이 아닌 종의 시간으로 이해되는 순간이다. 그것은 대상을 오래 바라봄으로써 얻게 되는 기다림의 결과 혹은 보상인 것이다.

`여름의 맛`에 담긴 하성란의 소설은 읽는 이로 하여금 가지고 있는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 다 읽어내지 못한 숨겨진 의도와 이야기를 찾게 한다. 그러한 감각을 부르는 읽기는 인간의 본능, 본성을 다각적으로 만나게 한다.

또 예민한 감각을 사용하게 해 긴장감을 높이는 가운데 어떤 정확한 말, 고급한 말보다 더 `느낌 있는` 단어의 선택과 특유의 유머로 긴장을 풀어주는데, 이것은 하성란 작가만의 여유가 전하는 선물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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