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창원 수필가·청하중 교장

올해 유행한 단어 중의 하나가 `돌직구`이다. 이 말은 원래 야구에서 나왔다. `돌처럼 무거운 직구`란 뜻이지만 정식 야구 용어는 아니다. 비슷한 말로 강속구가 있다. 강속구가 `강하고 빠른 공`이란 뜻인데 비해 돌직구는 타자가 선호하는 직구이긴 하되, 돌처럼 무거워 방망이에 맞히기도 어렵고 맞아도 멀리 가지 않는다는 뜻이 가미돼 있다.

이 말이 쓰이기 시작한 건 2, 3년밖에 안 된다. 삼성라이온즈의 오승환 선수가 몇 점 차 이기고 있는 경기를 마무리할 때 던지는 직구가 워낙 빠르고 무거워 타자들이 헛스윙을 하거나 범타로 물러나는 경우가 많은데 오승환 선수의 이 공을 돌직구라고 부르면서 생겨났다. 오승환과 비슷한 구속을 가진 투수의 공과 비교해 보면 오승환의 공은 돌처럼 무거워 타자들의 눈에는 더 빠르게 느껴지고 방망이 중심에 맞히기 힘들다는 거다. 오승환 투수는 155km/h에 육박하는 빠른 공을 던진다. 보통 145km만 넘어도 강속구라 하는데 오승환은 150km가 넘는 공을 뿌려댄다. 그는 팀이 3점차 이내로 이기고 있는 9회말에 나와서 상대팀 선수 3명을 상대한다. 상대편은 마지막 공격이고, 한두 점만 내면 따라잡을 수 있기에 타석에 들어선 타자는 공을 맞히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이때 오승환이 155km/h에 가까운 직구를 던지게 되면, 타자의 방망이가 허공을 휘두르며 차례차례 아웃이 된다. 오승환은 기교를 부리거나, 속여서 잡지 않는다. 피하지도 않는다. “칠 테면 쳐라”다.

대체로 야구경기를 보는 사람들은 타자들이 안타를 치거나 홈런을 쏘아 올릴 때 즐거워하고 환호한다. 9회말에 오승환이 나오면 관중들은 희한하게도 오승환의 투구에 환호한다. 불과 공 5개 이내로 타자를 돌려세우는 역동적인 투구를 보면서 탄성을 지른다. 그가 나오면 그 경기는 역전 없이 그대로 끝난다. 그러기에 그는 독보적인 `끝판대장`이다. 오승환의 돌직구는 관중들이나 야구 중계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을 시원시원하게 하는 힘이 있다.

야구에서 유래된 돌직구가 최근에 화법 용어로 많이 쓰인다. 이 때 돌직구는 `직설적 표현`을 비유하는 말이다. 에둘러서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하면 누가 누구에게 돌직구를 날렸다고 한다. 요즘 방송에 토크 쇼 프로그램이 많은데 출연자가 스스럼없이 뱉는 톡 쏘는 말이 돌직구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대화할 때 혹여 상대가 상처 받을까봐 모나지 않고 부드러운 말을 쓰려고 노력했다. 이게 예의였다.

하지만 요즘 방송에 출연자들의 돌직구가 범람하면서 돌직구가 마치 `개념 있는` 사람들의 대화법인 양 치부되고 있어 안타깝다. 야구팬을 즐겁게 하는 오승환의 투구에서 유래된 긍정적 이미지 탓인지, 토크쇼나 인터뷰에서도 누가 누구에게 돌직구를 날렸다며 연일 화제가 된다. 그러다보니 돌직구를 잘 날리는 사람이 인기를 얻고, 때로는 이 시대의 영웅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오죽하면 `○○○의 시사돌직구`란 방송 프로그램이 생겼을까.

이 돌직구가 도를 넘으면 위험해진다. 작년 가을 어느 대통령 후보는 후보자 토론회에 나와서는 왜 출마했느냐고 묻는 상대 후보의 질문에 “당신을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고 해서 많은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돌직구가 도를 넘으면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줄 뿐 아니라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에게도 짜증을 안겨 준다. 이렇게 되면 그 돌직구는 부메랑이 되어 자신을 친다. 몇몇 방송인은 자신이 던진 돌직구에 맞아 방송을 떠나기도 했다.

얼마 전 모 국회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이 터지면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죽느냐 사느냐의 싸움이기에 한 동안은 합리적 절차 대신 상대를 향한 돌직구가 난무할 것이다. 대립이 격화되면 돌직구의 수준을 넘어 험한 막말과 독설, 궤변과 폭언이 신문과 방송, 인터넷을 도배할 것이다.

언어는 사회의 품격을 나타낸다. 거친 언어는 거친 사회를 만든다. 더 이상 돌직구를 미화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