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고양이의 산책…` 모리 아키마로 지음 포레 펴냄, 188쪽

애거서 크리스티 탄생 120주년을 기념해 하야카와쇼보와 하야카와 기요시 문학진흥재단 주최 장편 미스터리 신인상인 애거서 크리스티 상이 2010년 일본에서 영국 크리스티 사의 협력으로 신설됐다.

많은 예비 작가들이 `21세기의 크리스티`가 되기 위해 도전장을 던졌고, `검정고양이의 산책 혹은 미학강의`로 선고위원들의 감탄을 자아낸 모리 아키마로에게 첫 수상의 영예가 돌아갔다.

제목부터 특별한 `검정고양이의 산책 혹은 미학강의(포레)`는 탐정소설의 선조인 에드거 앨런 포의 텍스트와 일상의 수수께끼를 미학적 관점에서 교차 해석하면서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는 여섯 편의 단편이 실린 연작소설집이다. 끔찍한 사건이나 기괴한 악인이 나오지는 않지만 세상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는 진리를 되새김하는 이 작품은 “인간의 삶을 보여주는 훌륭한 이야기” “매력적인 캐릭터로 직조된 유쾌한 미스터리” “포에 대한 새로운 해석, 고전들, 일상의 수수께끼라는 삼색의 조합”이란 평을 들었다.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포의 텍스트에서 모티브를 빌려와 미학, 철학, 영화, 문학, 연극, 종교 등 다양한 분야의 이론과 알레고리로 현실의 불가해한 사건과 그 속에 숨은 인간 심리를 탐구해가는 소설 `검정고양이의 산책 혹은 미학강의`의 주인공은 `검정고양이`라는 별명을 가진 젊은 교수와 `나`라는 대학원생이다.

박사과정 1년차로 에드거 앨런 포를 연구하는 `나`는 스물넷에 교수가 된 천재 미학자인 검정고양이의 동갑내기 조수다. 늘 제멋대로 행동하는 검정고양이 때문에 `나`는 난처할 때가 많지만 “아름다운 진상만이 진상이란 이름에 값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모든 사건을 미학적 관점으로 명석하게 꿰뚫고 아름답게 풀어내는 젊은 학자에게 탄복해 오늘도 수수께끼를 들고 그를 찾는다.

이야기의 얼개는 화자인 `나`가 미스터리 혹은 일상의 수수께끼를 검정고양이에게 털어놓고, 그 이야기를 들은 검정고양이가 포의 작품과 다른 이론을 엮으면서 사건을 해결(해석)해가는 구조다. 그들은 도심의 거리, 주로 공원을 산책하며 문답식 대화를 통해 진상에 조금씩 다가선다.

미스터리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 소설에는 보통의 미스터리처럼 살인이나 유괴 사건은 나오지 않는다. 두 사람은 엄마의 옷장 속에서 튀어나온 엉터리 지도에 숨겨진 의미를 추적하고, 니체를 연구하던 청년이 친구들을 초대한 날 왜 갑자기 자살했는지를 해명하며, 연인을 위해 만든 향수를 들고 사라진 남자의 행방을 추리한다. 그 밖에도 사라진 여교수, `두개골`을 찾아 헤매는 영화감독, 노학자의 서재에서 울려퍼진 정체 불명의 음악 등 일상에서 포착한 오묘한 수수께끼를 풀어나간다.

이 모든 이야기에 포의 텍스트가 각각 한 편씩 엮인다. 바그너를 연구하던 여자 대학원생과 니체를 연구하던 청년의 이야기를 그린 `벽과 모방`은 포의 대표 단편 `검은 고양이`와 연결되고, 시각 장애를 가진 아름다운 여자 조향사와 사라져버린 청년의 이야기 `물의 레토릭`은 향수 판매원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 `마리 로제의 수수께끼`와 교차하는 식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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