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우 편집국장

자주 찾는 회사 근처 작은 식당의 입구 문틀위에 빨간 부적이 붙어 있다. 재물과 보화와 사업운과 세간 출세운을 불러 들인다는 내용이다. 부적 한 장으로 그런 운을 기대하는 식당 주인의 소박한 꿈이 보이는 것 같다. 그 부적 한 장으로 식당뿐아니라 식당을 드나드는 고객들 모두에게 그런 운이 따라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치 우리 정치에서 보는 수많은 슬로건처럼.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개념을 구체화한 슬로건이다. 그 슬로건이 어려우면 `거시기`가 된다. 5.16 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민들을 단합시키고 허리띠 졸라매게 만든 것도 바로 그 슬로건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슬로건을 통한 이념적 결속을 가져온 천재였다. 재건으로 시작해서 건설, 자립, 증산, 민족중흥, 새마을 운동 그리고는 유신까지.

어느 대통령인들 그런 슬로건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신한국 창조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국민들 사이에 팽배한 정치불신과 만연한 부정부패를 한국병으로 규정하고 공명선거로 이를 치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으로써 자주 평화 민주의 삼대원칙아래 통일된 민족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 무대에 우뚝서는 한민족공동체로 신한국을 창조하자고 강조했다. 임기 내내 세계화를 부르짖은 김 대통령 정권당시 공무원들은 세계화에 맞추느라 호들갑을 떨었다.

실용정부를 표방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슬로건은 일자리 창출을 핵심으로 한 경제살리기였다. 이 전 대통령은 이른바 MB노믹스라 부르는 시장경제 중심의 경제 정책을 펴면서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치는 세워 7% 성장과 4만불 소득, 세계 7위의 경제를 이룩하자”며 `줄푸세 타고 747로`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경제가 구호만으로 살아지지는 않았음이 그의 임기 내내 실패한 경제 정책이 증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지표인 창조경제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박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창조경제를 강조했다. 국민행복 시대를 열기위해 경제를 부흥시키고 거기에 창조경제를 등장시켰다. 과학기술과 산업이 융합하고, 문화와 산업이 융합하고, 산업간의 벽을 허문 경계선에 창조의 꽃을 피우는 것이 창조경제라 설명했다.

그때만 해도 창조경제는 그냥 과학기술과 IT산업이 기존 산업과 융합하는 정도로 이해됐다. 그것이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서 불거진 것이다. 여당 의원들로부터 매도를 당하면서 일이 불거졌다. 창조경제의 개념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자 박 대통령은 `과감한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며 직접 진화에 나섰다.

지금 대한민국은 개념조차 모호한 창조에 매몰돼 있다. 기업들은 기업들대로, 학교는 학교대로, 자치단체를 비롯한 공공기관들은 기관들대로 창조경제를 업무에 접목시키는 묘안을 짜내느라 궁리다. 대구시는 발 빠르게 `창조사과`를 대구 대표 아이덴티티로 결정했다. 알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어쩌면 말 장난 같은 창조경제. 지금까지 기업들이 해 온 것을 이름만 바꿔 창조경제라고 분칠했다는 폭언도 들린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너무나 많은 슬로건에 매몰돼 있었다. 정치적 슬로건을 대표적인 것만 들어봐도 이렇다. 정권 담당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지금 국민들은 더 이상 20세기식 슬로건에 열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냉정하게 따져보고 자신들의 처지와 현실을 짚어보기도 하고 뒤에 이어질 결과를 예측해서 뛰어든다는 것이다.

창조경제라는 슬로건이 이 시대의 부적이 될 수 있을까. 그래서 다시 20세기 새마을운동을 벌일 때처럼 국민들이 허리띠 졸라매고 단결해서 국가의 부를 만들어낼까. 어쨌건 창조경제가 주저앉은 우리 경제를 벌떡 일으켜 세우고 우리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