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 `미술품 컬렉터` 하정웅씨
故 손아유 작가 유작 1천6백80점 기증
포항시립미술관 오늘 특별전 개막

▲ 포항시립미술관 `디아스포라-손아유 특별전` 전시장 모습.

조선인에 대한 멸시, 병마와 궁핍으로 얼룩진 예술가의 삶에도 끝내 귀화를 거부하고 아버지의 고향 포항 영일만의 감수성을 화폭에 불사른 재일교포 천재 화가. 실명과 죽음 직전에 이른 고난의 삶을 극복하고 도쿄올림픽의 특수로 부호에 오른 재일교포 사업가.

그는 자신이 못 이룬 화가의 꿈과 차별의 아픔을 바탕으로 가난하고 천대받아온 동포 미술가들의 작품을 수집하며 돕는 일에 남은 일생을 바친다. 그리고 감동스런 한편 드라마와 같은 이들의 인연은 작가의 고향 미술관에 작품으로 기증돼 오랜 여정을 끝내고 관람객들의 마음을 울린다.

한 재일교포 컬렉터의 숭고한 메세나 정신이 한 작가의 고귀한 작품의 귀환을 도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재일교포 동강 하정웅(74)씨는 자수성가한 `미술품 컬렉터`로 일본에서 한국계 예술인의 대부 역할을 한 주인공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씨는 1960년대 중반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에서 한국 현대미술을 처음 접한 뒤 조국 작가들의 작품을 컬렉션 한 것이 계기가 돼 40여년 동안 수집한 미술품 1만여점을 조국의 문화예술발전을 위해 기꺼이 기증하겠다고 결심했다.

어릴적 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그의 꿈은 당연히 화가였다. 고등학교 재학 당시 미술부를 창립하고 아키타현 고교미술협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가난한 재일교포 노동자의 장남으로 출생한 그는 영양실조에 의한 실명까지 경험하면서 화가의 꿈은 꺾이고 말았다.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운영하게 된 작은 철공소는 도쿄올림픽의 특수로 큰 돈을 벌어들여 그를 동경 요지의 빌딩 소유주로 탈바꿈시킨다. 하지만 하정웅 자신은 지독하게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교포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하며 돕는 일에 매달렸다.

오랜세월 차곡차곡 수집한 그의 컬렉션은 지난 1998년 광주시립미술관을 시작으로 포항, 부산 등 국내 공공미술관에 7천점이 기증됐다. 부모의 고향인 전남 영암에는 2천500점의 그림이 `영암군립 河미술관`에서 빛을 보고 있다. 국립 고궁박물관에 기증된 순종황제와 영친왕·이방자 여사의 사료까지 포함하면 그가 국내에 들여온 컬렉션은 1만점이 넘는다.

그리고 지난 2011, 2012년에는 포항시립미술관에 포항이 고향인 재일교포 2세 서양화가인 손아유의 작품 1천6백80점을 기증했다.

손아유는 어려운 환경과 정체성의 혼란을 극복하고 일본뿐만 아니라 유럽 등지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친 유망한 작가였다. 귀화를 거부한 아버지의 혼을 이으며 52세의 나이로 작고한 손아유는 일본 열도에서 독창적이고 열정적인 창작 활동으로 점과 선과 색의 세계를 일군 작가로 평가받는다. 평소 손아유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작품이 아버지 고향인 포항에 수장되기를 하정웅 선생에게 얘기했다. 결국 그의 오랜 바람은 사연을 알게 된 김갑수 포항시립미술관장의 노력 끝에 20일 열리는 `디아스포라-손아유 특별전`과 `컬렉터 하정웅-나눔의 미학전`으로 결실을 맺게 됐다.

김갑수 포항시립미술관장은“한·일 간 구슬픈 민족사의 소용돌이에서 재일한국인으로 살아온 하정웅과 손아유에게 미술작품은 조국이자 자화상이었다”고 전했다.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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