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맹호 자서전` 박맹호 지음 민음사 펴냄, 332쪽

▲ 박맹호 민음사 회장

사람은 누구나 평생에 한 번쯤은 `그 생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받기 마련이다. 그러나 과거를 돌이키기보다 오직 미래를 창조하는 데 몰두하는 사람은 삶 자체로서만 답할 뿐 이에 대한 답을 흔히 후세의 몫으로 넘기곤 한다.

1966년 서울 청진동 옥탑방 한 칸에서 민음사를 창립한 이래, 문학과 인문학 출판에서 많은 업적을 쌓아 마침내 한국 최대의 단행본 출판사로 키워 낸 박맹호 민음사 회장이 그 질문에 답하면서 `책`이라는 과감한 제목의 자서전을 펴낸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다. 그동안 “각계 명사들이 지나간 이야기를 털어놓는 지면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번번이 고사해 온 터여서 더욱 그렇다.

`박맹호 자서전`(민음사)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의 형식으로 씌었다. 1933년 생으로 올해 맞은 팔순이 한 계기가 됐고, 충청북도 보은의 한 마을인 비룡소에서 시작해 “책으로 쌓아 올린” 평생을 돌이키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박 회장이 답하고자 한 것은 늘 위기가 아닌 적인 없었던 한국 출판의 역사를 통해, 그 역사 속에서 늘 새로운 길을 개척해 왔던 민음사의 역정을 통해 오늘날 팽배해 있는 패배주의적 “출판 위기론”에 대한 대안적 통찰이다.

 

이 책에는 박 회장과 책의 만남이 빚어낸 강렬한 에피소드들이 곳곳에 실려 있다. 청소년 시절 그가 즐겨 읽고 감동에 빠졌던 `인간의 굴레에서`, `1984`, `밤으로의 긴 여로`, `적과 흑`,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삼국지`, `수호지` 등 동서양의 명작들은 문청 시절에는 `이런 작품을 쓰겠다`는 다짐으로, 출판 입문 이후에는 `이런 책들을 반드시 내 손으로 펴내겠다`는 형태로 가슴에 남아서, 수많은 시도 끝에 결국 40년이 흐른 뒤인 1998년에야 실현되어 최근 300권을 돌파한 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의 밑거름이 됐다.

그밖에도 `한국일보` 제1회 신춘문예에 소설로 당선될 뻔했으나 독재 정권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취소되어 운명이 바뀐 이야기, 시인 고은과 만나서 의기투합해 출판 동지이자 평생의 우정을 계속한 이야기, 김현, 김치수 등 `문학과 지성` 그룹과 함께 `세계 시인선` `오늘의 시인 총서` 등을 기획해 시집 열풍을 불러온 이야기, 정병규를 만나 그를 디자이너의 길로 이끌고 함께 한국 책 디자인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분투한 이야기, 건국 이래 최대의 베스트셀러인 이문열 평역`삼국지`를 둘러싼 이야기, 한수산, 박영한, 강석경, 하일지 등 작가들과의 인연, 김용옥, 최창조, 이강숙 등 신진 학자들과의 만남 등이 두루 실려 있어 흥미를 더한다.

대한출판문화협회를 둘러싼 이야기는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부분을 드러낸다.

그는 2005년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출협 회장에 당선돼 한국 출판의 미래를 열기 위해 분투하다가, 병으로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드는 대목에서는 숙연한 느낌이 든다.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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