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자르는… ` 함민복 지음 창비 펴냄, 136쪽

▲ 함민복 시인

선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선천성 그리움`의 힘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가난한 삶을 노래해온 함민복(52) 시인의 신작 시집`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이 출간됐다.

지난 2005년 10년 만에 네번째 시집 `말랑말랑한 힘`을 펴낸 데 이어 다시 8년 만에 선보이는 다섯번째 시집이다.

요즘 시단의 풍경으로 보자면 꽤나 느린 걸음이지만, “함민복의 상상력은 우리가 기꺼이 공유해야 할 사회적 자본이다”(이문재, 추천사)라는 평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세월의 무게에 값하는 70편의 수작을 담았다.

부드러운 서정의 힘이 한결 돋보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가난한 삶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여유로움이 배어 있는 삶의 철학과 타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는 “경험에서 이끌어낸 실존론적 사유”(문혜원, 해설)의 세계관을 펼쳐 보인다. 손끝에서 놀아나는 섣부른 수사나 과장 없이 정갈한 언어에 실린 솔직하고 담백한 `삶의 목소리`로 일구어낸 시편들이 따뜻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잔잔한 울림을 선사한다.

 

“보름달 보면 맘 금세 둥그러지고/ 그믐달에 상담하면 움푹 비워진다 //달은/마음의 숫돌//모난 맘/환하고 서럽게 다스려주는//달//그림자 내가 만난/서정성이 가장 짙은 거울”(`달`전문)

타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평등한 삶을 지향하는 시인의 사유는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흥미롭게도 시인은 감겨 제 몸을 재고 있는 줄자(`줄자`), 살아 움직일 때보다 더 무거운 고장난 시계(`죽은 시계`), 녹이 슬어 버려진 저울(`앉은뱅이저울`)처럼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사물에 주목하면서 그것들로부터 존재론적인 사유의 바탕을 얻는다.

여기서 시인은 풍경을 지우며/풍경을 그리고 건물을 지워/건물이 없던 시절을 그려놓는 안개와도 같은 시각으로 폐기된 사물에서 빛나는 사물성을 읽어내며 “보임의 세계에서 해방된”(`안개`) 사물 고유의 본성을 감지한다.

“나는 나를 보태기도 하고 덜기도 하며/당신을 읽어나갑니다//나는 당신을 통해 나를 읽을 수 있기를 기다리며/당신 쪽으로 기울었다가 내 쪽으로 기울기도 합니다//상대를 향한 집중, 끝에, 평형,/실제 던 짐은 없으나 서로 짐 덜어 가벼워지는”(`양팔저울`부분)

매일의 고달픈 일상을 힘겹게 이어나가는 현실은 세대나 계층을 불문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느낄 법한 비애가 되어버린 지 이미 오래다. 시인 또한 그러한 삶의 남루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는 이 남루한 삶의 풍경들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가운데 그 모든 장삼이사들의 끈기 어린 의지적 면모를 살며시 들춰 보여준다.

“좌판의 생선 대가리는/모두 주인을 향하고 있다//꽁지를 천천히 들어봐//꿈의 칠할이 직장 꿈이라는/쌜러리맨들의 넥타이가 참 무겁지”(`금란시장` 전문)

“물이 법(法)이었는데/법이 물이라 하네//물을 보고 삶을 배워왔거늘/티끌 중생이 물을 가르치려 하네//흐르는 물의 힘을 빌리는 것과/물을 가둬 실용화하는 것은 사뭇 다르네//무용(無用)의 용(用)을 모르고/괴물강산 만든다 하니//물소리 어찌 들을 건가/새봄의 피 흐려지겠네”(`대운하망상`전문)

함민복의 시는 꾸밈없는 삶의 기록이다. 시인은 삶의 어느 한 순간도 가벼이 보지 않고 소중한 의미로 받아들이며 세상의 모든 존재들에게 애틋한 마음을 건네며 다가선다. 가난을 일으켜 세우는 긍정의 힘이 있기에 그의 시는 가난하면서도 따듯하다.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흔들린다`)며 “먼 길 걸어온 사람들 목을 축여줄 수 있”(`폐타이어 3`)기를 소망하는 그의 시는 더 나은 삶과 사회,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따스한 위로가 될 것이다. 메마른 대지를 촉촉하게 적시는 봄비처럼 그렇게.

“뜨겁고 깊고/단호하게/순간순간을 사랑하며/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바로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데/현실은 딴전/딴전이 있어/세상이 윤활히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초승달로 눈물을 끊어보기도 하지만/늘 딴전이어서/죽음이 뒤에서 나를 몰고 가는가/죽음이 앞에서 나를 잡아당기고 있는가/그래도 세계는/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단호하고 깊고/뜨겁게/나를 낳아주고 있으니”(`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전문)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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