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의 혼(魂)을 찾아서 ⑽
경북의 혼(魂)을 찾아서 ⑽
  • 특별취재팀 = 임재현, 정철화, 이용선
  • 등록일 2012.10.22 21:01
  • 게재일 2012.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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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만 철기문화, 포스코 성공 신화로 꽃피다

▲ 조선시대의 풍수학자 이성지가 예언한 대로 영일만 모래바람 속에 세워진 포항제철소 건설 현장의 항타 파일은 흡사 대나무의 모습이다.
본지는 지난 8월부터 기획특집 `경북의 혼(魂)을 찾아서`를 연재해 경북동해안에 내재된 역사문화사회적 원류를 고찰함으로써 경북의 정체성에 또 하나의 곶간을 마련하기 위한 시도에 나섰다.

이를 위해 지난 8회에 걸쳐 `제1부 경북동해안 철기문화를 꽃 피우다`를 통해 선사시대와 원삼국시대, 삼국시대를 무대로 초기 국가들의 명멸(明滅)과 정치경제문화의 발전에서 鐵器(철기)가 첨단소재의 정점에 서는 과정을 짚어봤다.

이제 본지는 포항을 중심으로 싹튼 철기문화의 씨앗이 포스코의 영일만 신화를 통해 숙명처럼 실현되는 과정에 이름으로써 제1부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글 싣는 순서

<1부=경북동해안 철기문화 꽃피우다>
 
1)프롤로그
2)한반도 철기문화의 뿌리
3)경북동해안은 고인돌 왕국
4)경북 동해안의 소국
5)동예인들의 후예
6)신라가 진한지역을 통일하다
7)철을 가진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8)철기문화발전의 최적지 영일만
9)고래의 고장 영일만
10)철기문화의 맹아, 포스코 신화 낳다


조선 풍수학자 이성지, 현재 제철소 인근 유람하다
“대나무가 나면 수만명 살 곳… 모래밭 없어져” 예언
영일만 척박한 환경 극복 `한국 근대화` 상징 우뚝


□ 쇠부리터의 고장 영일만

본지는 이번 특집을 통해 경북동해안에서 포항의 철기 유적과 유물이 북구는 흥해읍 옥성리, 마산리, 학천리, 성곡리, 대련리, 냉수리 등에서 발견됐음을 거론했다. 기록에 의하면 북구에는 이밖에 죽장면 상옥리 무쇠골의 철광산, 기북면 성법리 일대의 철물 생산이 기록돼 있으며 남구에도 호동 고분군의 철기유적과 도심이 들어선 이동의 무소마을, 대보면 대보리 단야(鍛冶) 유적지 등이 산재해 있다.

또한 블루밸리 산업단지가 들어설 예정인 장기면 일대에도 이른바 쇠부리터(야철지, 冶鐵址)로서 방산리 불미골이 추정되고 있다. 지난 2006년 향토사학자 이상준씨 등 장기발전연구회가 발간한 `장기고을 장기사람 이야기`등의 자료에 따르면 `불미`란 `풀무`의 사투리로서 대장간이나 제철소에서 용철로(熔鐵盧)의 연소 속도를 높이기 위해 공기를 분사하는 장치이므로 제철소가 있던 골짜기임을 짐작케하는 근거이다. 장기에는 또 계원2리 적석(赤石)마을이 철이 생산된 곳으로 전하며 산서리 월산마을에는 1960년대까지도 수연(水鉛, 몰리브덴, 스텐레스강 등의 합금재료) 광산이 있어 `쇠점이`즉, 쇠붙이를 판매하던 점포라는 마을이름이 있었다.
▲ 60년대말 포항제철소 건설 현장사무소 주변의 형산강과 냉천 인접 지점 일대에 나룻배들이 빼곡히 서 있는 모습.

역사나 신화적으로도 연오랑세오녀 신화 등을 통해 이미 영일만 일대가 남구 동해면 도구리를 중심으로 한반도의 철기문화를 일본으로 전파하는 요충이 됐다는 학설이 근거를 더하고 있다. `노래하는 역사`의 저자 이영희 포스코 미래창조아카데미 교수는 예로부터 형산강과 남구 오천읍 일대는 사철(砂鐵)을 건져 낸 무쇠의 내였고, 신화의 무대인 청림동 일월지(日月池)는 쇠부리터의 중심지며, 그 우두머리가 연오랑과 세오녀라고 주장해왔다.

□ 철강산업 맹아론에 대한 경계

이처럼 포항이 제철의 중심으로서 오늘 대한민국 철강의 산업기지가 됐다는 맹아론(萌芽論)에는 경북동해안에 철강산업을 위한 천혜의 조건이 갖춰져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가 분명히 확인된다. 또 그 취지 만큼이나 학계는 물론 산업계 연구소들의 고증도 상당한 성과를 낸 덕에 포항은 국내 철강사의 보고로서 충분히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향토사학자 강호진씨(포항 영일중 교감)가 지난 1988년 계간 `포항연구`창간호에 실은 `영일 호동 폐고분군 조사보고`에 따르면 국내에는 과거 영일군 오천면의 `연일57호`를 비롯해 영남에만 모두 24곳의 철광산과 야철지 등이 산재해 있다. 구체적으로 경주 전곡면, 경산군 남천면, 달성군 거창면, 경남의 양산군 물금면, 김해군 대동면, 하동군 악양면, 동래구 망미동 등이 그곳이다.

따라서 곳곳에 철광산이나 그 유적이 산재했다는 근거만으로 이곳이 현대 제철산업의 부지로 천혜의 땅임을 강조하는 맹아론이라면 견강부회라는 반박에 빌미가 될 수 있다. 특히 이 땅에 꽃핀 철기문화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중세봉건제 하 조선을 거치면서 퇴락할 대로 퇴락하고 일제는 대륙 침략의 전초기지로 삼은 조선에서 황해도 겸이포와 청진을 낙점하고 제철소를 가동했다.
▲ `쇠불이터`(야철지)가 자리해 `무소(쇠)마을`로 불리는 포항시 남구 이동 일대가 상전벽해 된 모습.

□포스코, 신화가 현실이 되다

결국 찬란했던 민족문화와 제철 과학기술은 끊어질 듯 명맥만 유지한 채 이어지다가 마침내 지난 1960년대 포항종합제철의 건설로 혁명과 같은 전기를 맞게 된다. 자생적 산업화가 막 시작되던 척박한 시기에 토목과 금속 등 당대 한국의 일류 공학자들과 함께 제철소 후보지를 검토하던 박태준에게 영일만이 선택된 것이다. 그에게 모래 바람이 불어대던 경북동해안의 한 포구는 제품과 원료 수송선 접안을 위한 깊은 수심과 부지 면적 등 제반 조건은 물론 북한의 공격권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전한 최적의 입지로 확정됐다.

이는 근대적 세계관에 어느 만큼 근접했을지 알 수 없는 조선의 한 풍수학자에 의해 일찍 예견됐다는 흥미로운 일화로 전해진다. 조선 숙종 때, 관상감에 근무하며 천문, 지리, 지상, 잡학의 대가였던 이성지(李聖至)가 친구를 만나고 유람도 할 겸 어룡사(魚龍砂) 부근에 찾아온다. 어룡사는 형산강 하류를 중심으로 남과 북, 즉 포항제철소 부지와 포항 송도해수욕장 전역의 옛 지명이다.

그는 현지의 선비들과 함께 이 일대를 둘러본 뒤 `서편의 운제산이 십 리쯤만 떨어졌어도 수십만의 사람이 살았을 것`이라며 `이만한 지형이라도 좀 늦어지기는 하겠지만 많은 사람이 모여 살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에 지방선비들이 `풀 한 포기 없는 백사장에 어찌 수십만의 사람이 살 수 있겠는가`라며 믿으려 하지 않자 다음과 같은 시를 뇌었다.

`竹生魚龍沙 可活萬人地 西器東天來 回望無沙場 (죽생어룡사 가활만인지 서기동천래 회망무사장)`즉, `어룡사에 대나무가 나면 가히 수만 명이 살 곳이니라. 서쪽 문명이 동방에 오면, 돌이켜 보니 모래밭이 없어졌더라`는 뜻이다. 그의 예언 대로 하늘을 찌를 듯한 제철소 굴뚝이 대나무처럼 우뚝우뚝 서고 포항은 이제 인구 53만명의 특정시로서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모래바람을 극복한 경북의 혼

하지만 이 같은 신화에 이르기까지 영일만의 척박한 환경은 포스코의 시작에 큰 걸림돌이었다. 건설 요원들은 사막전의 병사와 같았고 건설사무소는 독일군 영웅의 야전지휘소를 연상케한다며 애칭이 `롬멜하우스`였다.

1968년 6월15일 부지 성토 및 정지 착공식 이후 포항제철의 창업 주역과 영일만의 해풍에 단련된 경북동해안의 건설 역군들은 전국에서 몰려든 농어민의 아들과 함께 `산업의 쌀`, 철강을 생산하는 제철소 건설에 매달렸다. `보릿고개의 나라`, 한국의 근대화는 포항제철과 경부고속도로라는 국가적 모험이 성공함으로써 식민지배에 이은 한국전쟁 60여년 만에 `세계 7대 무역대국,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의 기적을 낳게 됐다. 이로써 먼 옛날 신화의 세계가 암시하고 선사와 역사의 유적으로 배태된 철기문화는 영일만에서 현실이 됨으로써 경북의 혼 속에 첨단의 경쟁과 도전·극복의 기질이 숨쉬고 있음을 증명해냈다.

<1부 끝>

□ 특별취재팀 = 임재현, 정철화, 이용선(이상 본사 기자), 김용우 향토사학가, 장정남 한빛문화재연구원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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