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선희 시인

“이번엔 걸이다. 걸. 우예든동 걸만 놓그라. 그라믄 곧바로 끝난데이.”

머리칼 희끗한 선수는 두 손으로 꼭 쥔 네 개의 윷가락에 간절히 입을 맞춥니다. 빙 둘러선 사람들의 눈이 그의 손으로 일제히 향합니다. “으럇찻차” 던진 윷가락이 모두 등을 보입니다. “모다, 모. 지화자!” 끗수에 따라 말을 놓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 만세를 부릅니다. 한 쪽에선 함성이 한 쪽에선 아쉬움이 터집니다.

정월 대보름을 앞둔 토요일, 청림 초등학교 강당에선 종일 잔치가 열렸지요. 몰개월 사람, 청림마을 사람, 일월동 사람들 꽃잎처럼 둘러 앉아 떡국을 나누고 막걸리 잔을 치며 묵은 안부를 묻습니다. 좀처럼 나들이가 없던 할머니도 오늘은 발그레한 비로드 모자를 쓰고 물빛 스카프를 둘렀네요. 행여 기념품을 잃어버릴까 다부지게 쥐고 계십니다. 강당에 마련한 자리마다 윷판이 들썩거립니다. 동장도 시의원도 소복소복 머리를 맞대고 응원하는 사람들 모두가 이웃이지요. 1통부터 19통에 이르는 주민뿐 아니라 자생단체와 포스코컴텍, 포스코 열연부, OCI, 금원기업, 미래새마을금고등 청림동과 인연을 맺은 자매기업도 대진표에 따라 대항을 합니다.

청림동은 읍, 면을 제외하면 포항시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적은 동입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해변의 방풍림이 아름다워 `푸른 숲(靑林) 사이로 해와 달(日月)이 뜨는 고장`이라 불렸던 곳이지요. 더 오래전엔 낮에도 도적이 출몰한다는 말이 돌 정도로 노송이 우거졌다던 `골뱅이골`의 은밀한 이야기도 있었답니다. 그러나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드넓었던 논과 밭, 울창했던 숲은 공단 부지로 사라졌고 군사시설과 공항까지 인근에 있다 보니 발 빠른 발전과는 다소 거리가 멀 수밖에 없었지요. 포스코가 들어서면서 한 때 외부 인원이 유입되기도 하였으나 주거 환경이나 교육 문제로 점차 도회지로 빠져나갔습니다. 또 해병 가족들은 주소를 청림동에 두었지만 이동이 잦은 현실상 실질적인 주민 역할을 하지 못했구요. 그렇게 청림동은 조금은 황량한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5년 전, 청림동 사람들은 서로 지킬 10가지 약속을 정하고 선포식을 했습니다. 조선 시대 권선징악과 상부상조를 목적으로 만든 향촌의 자치 규약, 바로 향약(鄕約)인 셈이지요.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합니다` `이웃의 일을 내 일처럼 돕습니다` `우리 마을 상가를 이용합니다` `국경일에는 빠짐없이 태극기를 게양합니다` `법과 기초 질서를 지키는데 앞장섭니다.` `사회 봉사 활동에 적극 참여합니다` `내가 먼저 웃으며 인사합니다.` `서로 다투지 않습니다` 등등 한결같이 자신보다는 공동체를 위하는 절제와 예의와 봉사가 고스란히 담긴 문구였습니다. 그것을 집집마다 배포하고 해마다 정월 대보름을 기점으로 향약 실천 다짐 행사를 열었지요. 남녀노소 동민들이 모여 윷대회를 겸하면서 효과는 매우 컸습니다. 거리에는 칭찬릴레이 현수막이 걸리고 어둡게 휘어지던 골목엔 벽화가 그려지고 또 대로변엔 향수를 일으키는 조형물도 생겨났습니다. 마을행사에 적극 봉사하는 자생단체와 참여 주민들이 늘고 이웃 간의 정이 두터워졌습니다.

그 옛날 해변을 울창하게 채웠던 푸른 숲(靑林)은 세월에 흘러갔지만, 이제는 청림동 사람들이 어울려 숲이 되고 있습니다. 건물만 좁혀 앉았을 뿐 사람의 거리가 나날이 멀어지는 도회지에서는 쉬이 만나지 못할 훈훈한 사람의 숲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