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신객원 논설위원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
이맘때 쯤 가장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흰 구름 따라 고향 길을 시간보따리를 풀어 놓고 걷는 것이다. 육신의 아름다움은 찰나다. 꼿꼿하던 등이 굽어지는 것도, 탄력으로 넘치던 우유 색 피부에 버짐이 붙고 잡티가 피는 것도 찰나다.

`어제 온 고깃배가/고향으로 간다기에/ 소식 전하고파 갯가로 나갔더니/그 배는 멀리 떠나고/물만 출렁이내/고개를 떨구니 모래 씻는 물결이요/배뜬 곳 바라보니 구름만 뭉게뭉게/때 묻은 소매 보니 고향이 더욱 그립소`(노산 이은상 `고향생각`)

밤 바다가 나이만큼이나 무거운 듯하다.

새벽이슬같이 흩어 졌다가 밀려오는 파도 소리처럼 젖어드는 고향생각….

버리고 온이도 못 잊을 고향인데 두고 온 마음이야 오죽하리까.

서울 탑골공원에서 멍하니 앉은 두 노인이 무척 낯이 익어 가까이가 보니 이전까지만 해도 경주 쪽샘 부근에서 이웃으로 살았던 친구였다. 이들은 경주시가 황남· 황오동 일원에서 펼친 팔우정과 신라고분군 정비계획에 밀려 자신들이 살았던 집들을 정부에 내주고 서울의 자식 집에 떠밀려간 이주자들이었다. 마땅한 거처를 마련하지 못해 고향을 떠난 60대 신노인이었다.

경주시의 인구는 지난 10년 사이 크게 줄었다.

지금 한국 농어촌은 어딜 가나 빈집 들이고 사람행적이 끊긴 담 모퉁이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지만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사람들로 넘친다.

영덕군 노물리 등 얘기 울음소리가 끊어진지가 20년이 넘은 마을이 수두룩하다. 눈물겨운 나홀로 입학식이나 입학생을 업어주는 선배학생들의 모습, 폐교되는 학교는 뉴스 꺼리 조차 되지 않는다.

물론 나라가 부강해지고 취미 생활이 다양해져 종가집이나 파종손이 물려받은 한옥들은 이런 현실에서는 예외다. 그런 집이 전국에 몇 집이나 될까. 청태낀 고옥은 정부가 보존을 위해 보수 예산을 지원해주고 한옥 체험 관광객들로 인해 인기를 얻으면서 사는 형편들이 조금씩 나아지지만 대다수 농촌은 갈수록 피폐화되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정부가 퍼붓고 있는 지금의 농촌 살리기는 너무 생산과 직결돼 있다.

어느 한쪽만 물어뜯으면 성공하지 못한다. `일마을 한가지 특산품`에 매달려 있다. 마을을 대표하는 특산품이나 고유 `술`도 개발하고 귀향을 희망하는 노인세대에게는 살 곳과 텃밭 등 소일꺼리를 만들어 주는 데 초점을 맞추면 노인 정책과 맛물려 이족저쪽이 모두 살아날 것이다.

유럽은 그런 정책을 쓰서 이미 성공하고 있다.

독일 등 복지제도가 뛰어난 유럽 국가들의 농촌 살리기는 바로 귀향을 돕는 정책이다. 독일정부는 농촌의 버려진 땅이나 헐값농토를 사서 200~300평 크기로 다듬고 적당한 크기의 집을 지어 임대를 주는 정책을 펴서 성공하고 있다.

지금의 60대는 과거와는 달리 젊게 살고 그 정도 농사는 자경할 여유 힘이 있다. 장기 임대 소형 아파트를 지어 주는 것도 귀향을 돕는 방안이다.

국가는 수도권에 집중되는 인구 쏠림 현상을 막고 예산을 골고루 쓸 균형 있는 국토개발안이어서 국민들로부터 찬사를 받을 것.

시·군으로 불러들인 젊은 층의 귀향은 신문에 날만큼 환영을 받지만 실패율도 높고 다시 떠나는 현상이 짙지만 갈 곳이 마땅찮은 60대는 그 반대다. 노후 30년을 노인으로 자식에게 얹혀살기보다는 자립을 선택하겠다는 의지가 크기 때문이다.

시· 군, 중앙정부는 돌아오기를 꺼리는 젊은 층에게 더 이상 매달리지 말고 젊은 노인을 겨냥하는 신 이주 정책을 쓰면 성공률을 장담할 수 있다. 텅텅비고 잡초 밭 흉가에서 탈출할 수 있는 성공 분명 복지 정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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