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대구본부 부장
지난 8월27일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막식이 열린 대구스타디움. 전 세계 스포츠계에서 내로라 하는 특급 VIP들 속에 그야말로 특빈이 있었다. 이날 대구의 귀빈은 이명박 대통령 부부도 전두환, 김영삼 전 대통령 부부도 아니었다. 국제올림픽 위원장 자크로게, 세계육상연맹 라민디악 회장도 아니었다. 다름아닌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었다.

이건희 회장이 누구인가. 국내는 말할 것도 없이 자타가 인정하는 글로벌 기업의 회장으로 범인은 얼굴 한 번 보기도 힘든 사람이다. 그는 이날 홍라희여사와 함께 수많은 VVIP들과 자리를 나란히 한 채 역사적인 대회의 개막식을 지켜봤다.

이날 방문은 IOC위원이자 이번 대회 공식스폰서인 삼성의 회장 자격이었다. 이 회장은 앞서 인터불고호텔에서 열린 IOC 및 IAAF위원 초청 리셉션 및 오찬에 참석했고, 그랜드호텔에서 1박 후 28일에는 대구오페라하우스로 IOC위원들을 초청, 오찬과 공연을 본 후 전용비행기로 귀경했다. 이 자리에는 김범일, 조해녕 전·현직 대구시장을 비롯, 김관용 경북도지사 등 9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이건희 회장의 대구 공식방문은 문희갑 시장 재직때인 1995년 9월, 성서공단 삼성상용차 건설현장을 방문한 이후 15년 11개월 만이었다. 16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다. 철조망이 가로 놓인 남북이산가족 방문도 아니고, 한 하늘 아래 KTX로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서 이처럼 방문이 없었느냐에 대해 시민들의 의견이 분분했고 `너무하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대구가 어떤 곳인가. 이 회장의 선친이 중구 인교동에서 삼성상회로 삼성의 모태를 이룬 도시다. 여기에서 삼성은 제일모직을 만들어 대기업의 초석을 다지며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프로야구 삼성 구단의 연고지인 등 삼성과의 인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런 고향이다.

한 시민은 “16년만의 방문이라는 것을 언론보도를 보고 알았다. 대기업 회장이 아무리 바쁘기로 서니, 거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대구를 이렇게 찾지 않았다니 실망감이 든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시민은 “삼성이 그동안 대구를 위해 한 게 뭐 있느냐. 돈이 안되니까 공장도 옮기고 단물만 빨아먹고 떠났다. 아무리 경제논리를 쫓아서 움직이는 기업일지라도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이 시민은 이 기간동안 삼성전자가 있는 수원은 몇 번 방문했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이 회장의 16년만의 방문에 대해 대구시는 과연 자유로운가. 이 회장의 마지막 공식 방문 이후 대구시는 문희갑, 조해녕 시장이 4년 임기를 마쳤다. 그리고 김범일 시장은 작년 재선에 성공, 6년째를 맞고있다.

그동안 시장들마다 이 회장의 내구를 위해 노력했을 것이고, 이 회장은 여러 사정 등으로 대구 방문이 미뤄졌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16년이라는 갭에 대해 전·현직 대구시장들은 할말이 없을 것이다.

대구도 기업유치를 위해 대기업 총수들을 불러 올 수 있는 이벤트를 할 필요가 있다. 물건을 팔기 위해 온갖 재주를 부리는 왕서방 상술이 필요한 때다. 지금은 사랑방에 앉아 담뱃대나 두드리며 폼을 잡을 시대가 아닌, 발로 뛰는 마케팅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구시도 공을 들여 삼성SSLM을 유치, 지난달 기공식을 가졌다. 이 투자는 지난 2000년 삼성상용차 퇴출 이후 무려 11년만이다. 이를 계기로 지역 경제계는 삼성과 대구가 화해를 해, 해빙무드가 됐다는 등 장밋빛 전망이 많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너무 안이하다고 여겨진다. 대구와 삼성이 맞대놓고 싸운적이 있는가. 없었다. 거대 자본의 힘에 눌린 대구가 삼성의 눈치를 살피는 일방통행이었다.

수구초심이라 했다. 한갓 미물인 여우조차도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말이다. 굳이 경제논리만 따지면 삼성이 대구를 홀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게 정신적·사회적 합일이다.

부모없이 태어난 자식이 있을 수 없듯, 대구가 없었으면 오늘의 삼성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삼성이 망해야 한국이 산다`라는 말도 심심찮게 들린다.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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