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끝내고 닷새 만에 문을 연 국내 금융시장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리스크라는 날벼락을 맞았다. 원ㆍ달러 환율이 30원 넘게 급등하고 코스피지수는 3% 이상 급락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금융시장이 리먼브러더스 파산 3주년에 맞춰 요동친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리스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가 해소되기 전까지 환율과 증시의 변동성 확대는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그리스 부도가 현실화되면 각종 금융시장의 지표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 수준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 금융시장 요동

1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30.50원 오른 1,107.80원에 거래를 마쳤다. 환율이 1,100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 5월25일 이후 약 4개월 만에 처음이다. 이런 현상은 추석 연휴 기간 그리스의 부도 위기가 불거지면서 안전자산인 달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때문이다. 앞서 “신용부도스와프(CDS) 시장에서 그리스 5년물 국채의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대비한 비용은 5년내 그리스 디폴트 가능성을 98%로 예상한 수준”이라고 블룸버그는 보도했다.

그런 중에 국내 증시 또한 큰 폭으로 출렁였다. 같은날 코스피는 3.5% 이상 하락해 1,740대까지 떨어졌다. 코스닥지수도 한 달 만에 450선 밑으로 내려앉았다. 그에 앞서서는 무디스가 프랑스계 은행인 소시에테 제네랄과 크레디 아그리콜의 신용등급을 강등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7% 이상 급등해 지난달 11일 이후 처음으로 40선을 넘어섰다. 옵션 투자자들의 시장 전망이 그만큼 나빠졌다는 뜻이다.

◇유럽 시장도 하락세 출발

한국시간 14일 오후에 해당하는 유럽의 현지시간 14일 아침 주요 증시도 그리스 위기가 계속 증폭되면서 일제히 하락세로 출발했다.

이날 영국 런던증권거래소의 FTSE 100 지수는 전일 종가보다 0.31% 떨어진 5,157.85로 시작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증권거래소의 DAX 30 지수는 전일 종가 대비 1.13% 급락한 5,158.26, 프랑스 파리 증권거래소의 CAC 40 지수도 1.3% 추락한 2,855.00으로 각각 출발했다.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이날 프랑스의 2, 3위 은행인 소시에테 제네랄과 크레디 아그리콜이 그리스 재정위기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점을 들어 신용등급을 각각 한 단계 강등한 것이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스 디폴트가 관건

3년 전이던 2008년 9월15일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었다. 그 여파는 지금도 남아 유로존 재정 위기와 미국경제의 더블딥(경기 회복 후 재침체)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국내 금융시장을 지금 뒤흔드는 것은 그 중 그리스의 파산 우려다. 14일 네덜란드가 그리스의 디폴트를 기정사실화해 다른 유로국들과 은밀히 접촉해 왔다는 소식이 전해져 충격이 컸다. `그리스가 5년 안에 디폴트할 확률이 98%`라는 월가의 관측이 진폭을 키웠다.

그리스정부의 자구노력은 이미 한계에 봉착해 국내 투자자들은 당분간 다른 유로존 국가의 지원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만약 그리스의 파산이 현실화되면 국내 금융시장에서 유럽계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제2의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할 거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기로에 선 그리스 부도 선언

그리스 2년물 국채 금리는 지난 13일 장중 한때 76%로 치솟았고 10년물 금리도 사상 최고인 24%대로 올라섰다. 해당국 정부의 재정적자 감축 노력이 지지부진하고 유로존 국가들의 지원 가능성이 불투명해지자 디폴트 가능성이 점차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유로존의 맏형 격인 독일에서는 그리스의 `질서 있는 디폴트`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독일이 그리스 부도를 염두에 두고 자국 은행과 보험사 등 금융기관을 지원하는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는 `그리스 포기설`도 금융시장에서 나돌았다. 독일 보수 정치인들이 그리스를 유로존에서 배제해야 한다며 압박 수위를 높인 탓에 불안이 더욱 증폭됐다.

네덜란드 정부는 그리스의 디폴트를 기정사실화하고서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이 때문에 그리스 익스포저(대외위험도)가 높은 유럽 은행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신용등급이 강등될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유럽 은행의 위험 부각은 글로벌 은행시스템 악화와 신용경색을 가져온다.

◇한국 금융·실물 악영향 불가피

그리스의 디폴트로 유럽 금융시스템이 악화하면 국내 주식·채권시장도 동반 약세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주식의 약세는 주로 채권의 강세로 이어져 왔지만, 유럽계 자금이 국채 채권시장에서 이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디폴트가 이탈리아와 스페인, 포르투갈 등 재정위기를 겪는 남유럽 국가들로 전파될 때는 리먼 사태에 버금가는 파문이 생길 수도 있다.

그나마 안심되는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각국 금융기관에 대한 긴급자금 지원 정책과 국가 간 통화스와프 등 신용경색 확산을 막을 장치들이 마련돼 있어 충격이 이전보다 강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는 사실이다.

어쨌거나 사태는 심각하고, 한순간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연합뉴스/정리=윤경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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