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로타리 코리아 차기위원장
“5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있는 비취가락지다. 5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5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5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고 한 피천득의 5월도 지나쳐 버리고 벌서 6월의 한가운데로 들어섰다. 한껏 무르익은 봄은 가고 여름으로 접어들었으나 꽃의 자태는 더 관능적이나 먹는 꽃, 못 먹는 꽃이 있다. 50년은 넘게 되었다. 이른 봄 진달래 꽃 방망이를 만들어 산에서 내려오는 초립동들의 입가는 붉게 물들어 진다. 먹어도먹어도 배고픈 참꽃(진달래)을 따먹었기 때문이다. 진달래가 지면 경상도 방언으로 연달래 수달래(철쭉)가 핀다. 진달래꽃과 흡사하고 꽃 색은 더 연해서 손이 가지만 먹을 수 없는 꽃이나 그 시절 진달래는 화전이나 화채, 술에 띠워 먹을 수 있어 늘 곁에 있었으나 철쭉은 독성(그레이아누톡신)이 숨어있어 보는 꽃이었을 뿐이다.

음력 3월 3일 삼짇날에는 마을별로 진달래 화전을 부쳐 먹었고 9월 9일 중양절에는 국화차, 국화 술을 먹어 꽃잎을 즐겨 먹었다. 꽃에는 향기롭고 비타민·아미노산·미네랄 같은 영양소가 들어 있고 화려한 색과 향기는 식욕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

먹는 꽃은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진달래꽃과 국화 아카시아 동백 호박 매화 복숭아 살구꽃 등이 있다. 단오에 떨어지는 감꽃은 한나절 숨을 죽이면 먹기가 더 좋다. 감꽃이 한나절 시들어 흑갈색으로 변하면 쓴 맛이 줄어지는 대신 꽃잎이 연해져 씹기가 좋다. 반면 은방울꽃·삿갓나물꽃·그리고 돌 틈에서도 잘 자라고 간난 아기 변처럼 가늘게 찔끔 나와 애기똥풀꽃으로 긴 이름이 지어졌지만 이 꽃 가녀린 줄기에서 나온 노란 즙은 가벼운 아편 증세를 일으키는 성분이 들어 있다.

60대 이후 한국인이 가장 즐겨 부르는 애창곡 찔레꽃은 많은 사연을 가진 꽃이다. 5월에 피고 6월에 꽃이 떨어지면 까치밥으로 영근다. 찔레는 꽃은 먹지 못하지만 이른 봄 뻗어나는 찔레순은 껍질만 벗겨내면 그 맛이 향기로워 보릿고개를 넘기던 소 먹이 아이들의 최고 간식이었다.

가을에 붉게 달리는 까치밥은 달콤하고 향기롭다. 까치밥을 모아 서너 번 덖고 말리면 훌륭한 차가 된다. 찔레는 속까지 하얗다. 그래서 순수함으로 나고 순정파 여 학생으로 거듭 태어나서 민중의 꽃으로 불려졌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바다 내고향/언덕위의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이 노랫말은 빨치산 대원들이 즐겨 불렀다 해서 자유당 시절엔 마음대로 흥얼거리지 못했다.

아마도 꽃피고 물 흐르는 고향생각에 눈물지우는 빨치산들이 많았을 것이다. 한반도 남쪽에 주로 자생하는 찔레는 순 토종 야생화이고 여전히 이맘때부터 지천으로 피는 꽃이다.

모든 생명체에겐 먹는 것과 안식처는 중요한가보다. 노랑나비들이 물러간 초여름 들판에는 벌떼들이 이 꽃 저 꽃을 파고든다. 꽃가루와 달콤한 꿀을 물물교환하고 벌통으로 돌아오면 육각형 집을 짓는다. 벌들이 꽃에서 얻은 소재로 지은 육각형 집은 가장 작은 재료로 최대한의 공간을 확보한 경제적 구조이자 힘을 배분하는 설계여서 많은 양의 꿀까지 저장할 수 있다. 벌들이 남긴 이런 독특한 구조는 건축구조나 심지어 고속열차의 충격흡수장치로 응용되는 등 인간이 가장 많이 활용하고있다. 하늘을 달리고 꽃을 지나 녹음을 스쳐오는 말고 향기로운 바람은 가난하고 빈한하게 살지만 꽃 속에 묻히면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녹음처럼 마음이 열린다.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