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가이드도 물어물어 도착한 찔레곤은 수도 자카르타에서 서쪽으로 100km 떨어진 공업단지다. 현재 20개사가 입주해 있는 이곳 연관단지의 전체 평면도는 포항철강산업단지와 비슷하다.

30도를 오르 내리는 이곳 역시 무덥기는 마찬가지다. 그나마 해풍이 불어서인지 한결 쉬워하게 느껴진다. 인도양과 연접한 이곳은 태풍은 물론 지진에 인한 쓰나미에도 비교적 안전한 편이라고 한다. 아마도 일관제철소 장소로 선정된 이유도 그런 이유일것 같다. 김동호 법인장은 “지난 40년동안 이곳에는 큰 태풍이나 쓰나미의 기록은 없을 정도로 비교적 안전한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착공식을 가진 이곳 현장은 아직은 황량한 벌판이다. 토목공사가 진행중이지만 이제 시작단계이다보니 중장비들의 굉음만 귓전을 때린다. 이곳 매립지역은 인근 야산을 활용해 성토하고 있다.

포스코가 인도네시아 일관제철소 건설사업에 뛰어든 것은 인도네시아 국영철강사인 크라카타우스사와 합작을 통해서다. 포스코의 현지공장은 크라카타우스사가 미리 확보해 놓은 400ha 부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합작투자 비율은 포스코 70%, 크라카타우스틸 30%다. 사업안정화 이후 크라카타우스틸은 지분을 45%까지 늘리는 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회사명은 크라카타우 포스코(PT. KRAKATAU POSCO)다.

포스코가 건설하는 인도네시아 제철소는 쇳물 생산량 총 600만t 규모로 1·2단계 공사로 진행된다. 상반기 부지조성이 마무리되는대로 300만t 규모의 1고로 설비에따른 착공에 들어간다. 1단계 300만t 고로는 2013년 12월 완공예정으로 있다. 1단계가 완공되는대로 곧바로 2단계(300만t) 고로 공사에 들어간다. 이 제철소가 가동되면 전기로 공장 밖에 없는 인도네시아에선 사상 첫 고로제철소가 된다. 1·2단계 공사에 약 50억달러 투자가 예상되는데 우선 1고로에 27억달러를 투자한다.

가동인원은 1고로가 완공되면 2천여명, 전체 2고로공장이 완공되면 많게는 5천명까지 인원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제철소는 동남아시아에선 최초의 일관제철소이자 포스코의 세번째 고로제철소다. 이곳은 항만·용수·전력 등의 인프라가 모두 갖춰져 있어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공사를 할 수 있다.

현재 기반을 다지기 위해 진행중인 파일항타공사도 상대적으로 쉽다. 광양의 경우 50-60m까지 땅속으로 내려가야하지만 이곳은 15-20m내외면 가능하단다. 일단 토목공사에서는 경제성이 있다는 뜻이다.

이번 일관제철소 프로젝트는 유리한 점이 많다. 우선 현지 합작사가 보유하고 있는 도로, 철도, 항만, 전력, 용수 등 기존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는 브라운필드(Brown Field) 투자다. 투자기업이 인프라와 생산설비 등 모든 것을 처음부터 만들어가는 그린필드(Green Field) 투자와 달리 초기 투자비용이 적고 가동시기를 단축할 수 있다. 특히 합작사의 유휴부지를 활용하기 때문에 지역주민 동의, 시 당국 설득 등에선 훨씬 유리하다. 현지사정을 잘 아는 합작사가 전면에 나서기 때문에 포스코가 현재 인도에서 고전하고 있는 인·허가 문제에선 비교적 자유롭다. 김동호법인장은 현재까지 환경적인 문제 등에서도 큰 논란은 없다고 밝히고 있다.

포스코가 얻는 이점은 이뿐이 아니다. 자원이 풍부하고 성장잠재력이 큰 인도네시아 투자에 나설 수 있다. 인도네시아는 철광석 약 22억t, 석탄 약 934억t 이상의 잠재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 대우인터내셔널, 포스코건설 등 포스코 패밀리는 자원개발을 비롯해 에너지, 정보통신, 인프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동반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포스코는 인도네시아 제철소를 교두보로 삼아 연간 3천만t 이상 철강제품을 수입하는 동남아 시장을 선점한다는 전략도 수립해 놓고 있다. 이렇게 되면 포스코는 인도네시아 찔레곤 제철소를 중심으로 베트남,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등 동남아 현지 생산·가공·판매체제를 갖추게 돼 시장지배력을 크게 높일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Ⅲ.

자카르타 현지에서 포스코의 인기는 비교적 높다. 인도네시아에는 포스코외에도 금호타이어, 롯데마트 등이 진출을 확정해 놓은 상태다. 이가운데 투자규모가 가장 큰 포스코의 인기는 상대적으로 높을 수 밖에 없다.

알르고르 크라카타우포스코 인사담당 이사는 “포스코가 들어오면서 생산효과가 커진 것은 물론, 현지인력 채용과 지역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지역 업체들의 프로젝트 참여로 기술습득 효과까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포스코가 채용한 현지 통역원은 한국말에 능통하다. 정말 잘한다. 함께한 현지직원들에게 방문한 기자와 포스코직원과의 질문· 답변을 일사천리로 통역한다. 포스코 직원만 들으라고 한 “무슨 고속도로가 이러냐, 누더기 도로도 이런도로는 없다”는 말까지 눈치없이 전하는 통역원 앞에서는 머쓱해질수 밖에 없다. 알르고르 인사담당이사는 이런 통역에도 빙긋이 웃는다. 틀린 지적은 아니기 때문일까.

이곳 찔레곤 현장에는 포스코와 계열사 소속의 직원 60여명이 진출해 있다. 모두다 뜨거운 태양아래 검게 그을린 모습이다. 김동호 현지법인장도 그을리기는 했지만 상대적으로 피부가 희다. 직원들 말로는 근본적으로 희단다. 이곳에는 피부가 흰사람이 대접을 받는다. 김동호법인장이 만약 이곳 현지인이라면 아마도 귀족출신이 아니었을 까 싶다.

지난해부터 이곳에 근무해 생활이 익숙할만 한데도 몇가지 어려움을 호소한다. 무엇보다 먹는 것이 가장 고통스럽단다. 자카르타에는 한국음식점이 많이 있지만 이곳 인근에는 없다는 것이다.

가장 근접해 있는 곳이 20-30분 거리를 나서야 그나마 한국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다. 그러다보니 매일 이용하기는 불편한 모양이다. 취재차 방문한 우리 일행도 현지취재를 마치고 그곳 식당까지 가서 점심을 먹었지만 이동이 쉽지 않았다. 먼거리는 아니지만 도로사정과 워낙 정체가 심하다보니 이곳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김동호 법인장은 “교민들이 나서 식사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직까지 진척된 것은 없다”며 아쉬워했다.

주말부부도 이들에게는 부담이다. 거리는 100km에 못미치지만 기본적으로 자카르타를 이용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차량정체에 묻히기라도 하면 꼼짝없이 3시간가량을 도로에 할해해야 하기때문이다.결국 이들은 먼 이국까지 와서 주말부부로 살아가야만 한다.

자녀들의 교육문제도 고민거리다. 이곳에는 한국과 유사한 입시학원 등이 있다고 한다. 가이드는 “ 일부 교민들은 이 같은 학원에서 자녀교육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고 귀띔해준다.

포스코 본사가 있는 포항에는 지금 이곳에 진출하겠다는 건설업체들이 늘고 있다. 포스코건설 등으로부터 공사를 하청받는 경우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포스코직원들은 이문제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동호법인장은 “인도네시아는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 건설업의 경우 외국기업진출 자체를 막고 있다”며“향후 동남아시장 등을 감안하면 몰라도 이곳 현지와 합작을 해야하는 건설업종이라면 이곳 진출은 신중하게 검토해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도네시아인으로 귀화하고 이슬람으로 개종한 가이드도 비슷한 입장을 보인 점을 감안하면 포항지역의 건설업체는 참고해야 할 것 같다.

인건비가 저렴해 경제성이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기술습득(효율성)이 늦어지면서 국내처럼 원활한 생산활동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도 포스코의 속을 태우는 점이다. 현지법인관계자는 “현지 인건비와 기술습득 등을 감안, 생산비를 국내와 비교하면 80% 수준”이라면서도“결국은 이 같은 조직을 어떻게 끌어나가느냐의 문제”라고 전했다. 인건비가 저렴하다고 큰돈을 벌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87%에 이르는 이슬람 특유의 하루 5번에 이르는 기도와 라마단(금식기간) 등도 하나의 원인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늦은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이 막히기 시작한다. 자카르타 시내에서는 꼼짝 않는다. 가이드는 흔히 겪는 일들인 것 처럼 태연하다. 하긴 짜증낸다고 될일도 아닌 것은 맞다. 시내는 양방향 모두 정체다. 점심먹고 들어와 호텔에서 간단히 정리하고 나니 바로 저녁먹어야 할 시간이다. 다시 차를 탄다. 아직도 정체는 계속된다.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끝)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이준택기자 jtlee@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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