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희포항여성회장
“나의 시어머니는 나의 두 아이들을 키워주셨다. 아이들을 맡기고 사무실로 출근할 때면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들과 고된 실랑이를 해야 했고, 퇴근 후 집에 가면 기운이 소진된 어머님과 아직도 장난칠 거리가 무궁무진한 활기찬 아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고집 센 아들과 활기찬 딸을 감당하느라 10여년을 보내신 후 어머님은 부쩍 늙으셨고 편찮으신 곳도 많아지셨다. 우리가 셋째를 낳을까 고민하는 것을 알고 어머님은 일언지하에 반대하셨다. 사회가 함께 나눠주지 않는 육아의 고단함을 아는 까닭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경험한 이 땅의 어머니들은 천사였다. 자신의 욕구와는 상관없이 가족공동체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헌신했으니 말이다. 기꺼운 헌신은 세월이 흘러 몸과 마음에 흔적을 남겼다.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천사의 품성으로 길들여진 그녀들의 몸과 마음은 그야말로 상처투성이다. 하여 어머니됨의 고단함과 위대함에 대한 경외는 신화가 됐다.

산업화 시대를 살아낸 우리 어머니들은 가족공동체와 사회의 발전을 위해 기꺼이 무급 가사노동과 보살핌 노동을 감내해 온 세대이다. 가부장적 가족제도 속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교육과 성장의 기회를 박탈당하면서도 그것이 숙명인양 순응해 왔다. 사회적으로 부과되는 책임과 의무에 비해 권리를 누릴 수 없었음에도 저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척박한 시절의 고달픈 여성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도 인간이기에 올곧게 헌신만을 할 수는 없는가 보다. 아이들을 키워달라는 자녀들의 요구를 냉정히 거절하기도 하고, 보살핌이 필요한 어르신들을 가족 내 누군가가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요양기관에 위탁하는 일도 늘어나고 있으며, 자녀들도 믿을 수 없으니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기도 하신다. 또한 어머니 세대의 고단함과 고단함 후의 빈곤과 고독을 목도한 이후 세대 여성들은 가족과 사회의 삶 이전에 자신들의 삶을 고민하기 시작하고 있다. 여성들의 현실에 대한 냉철한 자각과 실천은 현상적으로 저출산 고령화 사회라는 우리 사회 지속가능성의 위협으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생명을 잉태하고 낳고 키우고 교육시키는 과정이 오로지 한 개인과 가족만의 문제일까를 생각해본다. 또한 우리사회를 지속가능케 하는 근본적인 대안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는 즈음이다.

그러던 중 지난 3월 셋째 주와 넷째 주 경북매일을 통해 경북도의회가 예산 심의 과정에서 무상급식예산 전액을 삭감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에 대한 점차적인 무상급식 실시를 골자로 하는 교육청의 예산에 대해 포퓰리즘(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행태로 대중영합주의)이라 폄하하며 삭감한 것이다. 많은 시민들이 바라고 원한다면 그 이해와 요구를 받아 국가 정책과 예산 속에 반영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하는 것이 무릇 권력을 위임받은 의회와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라 나는 알고 있다. 그들이 의정활동과 행정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반이 국민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상급식은 대중의 인기를 얻고자 특정 정치세력이 주장하는 정책이 아니라 아이를 양육하고 교육시키는 일을 개인과 가족, 사회가 함께 나누자는 정책적 대안이며,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대안으로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는 정책이다. 게다가 이미 구미, 포항, 고령, 영천 등 각 시·군에서 대응예산을 확보해 놓고 기다리고 있는 사업을 단지 포퓰리즘에 동조할 수 없어서 예산을 삭감했다는 것은 경북도의회야말로 정치논리로 예산을 삭감했다고밖에 볼 수 없음이다. 경북도의회의 이번 예산안 심의 과정을 나를 비롯한 많은 도민들은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

봄을 기다리는 4월, 경상북도의회가 심히 유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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