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관광 필수 코스인 통일신라시대 연못·별궁
경주관광 필수 코스인 통일신라시대 연못·별궁
  • 윤희정기자
  • 등록일 2011.03.24 19:52
  • 게재일 2011.0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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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보며 춘분·추분·하지·동지 등 24절기 관측 천문대

안압지, 첨성대
▲안압지

경주를 찾는 사람들이 꼭 들르는 곳 중의 하나가 통일신라시대 연못과 별궁이 있던 안압지다. 인왕동에 있는 사적 제18호인 안압지는 신라 제30대 임금인`문무왕 14년(674년)에 궁 안에 연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귀한 새와 기이한 짐승을 길렀다`는 기록을 따라 동궁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동궁은 헌덕왕 때 왕의 친동생 수종을 부군으로 삼아 월지궁에 살게 했으므로 태자가 기거하는 동궁이라는 의미로 사용됐다.

궁궐 안에 연못을 만들었을 당시의 이름은 월지. 그 옆에 왕과 귀족의 연회 장소였던 임해전이 있었다 한다. 이곳에서는 신라 귀족들의 생활과 관련된 유물이 많이 출토됐다. 14면체 주사위인 주령구가 대표적인 유물. 참나무로 만들어진 이 주사위의 각 면에는 다양한 벌칙이 적혀 있다.

1974년 이래의 준설공사와 고고학적 조사에 의하여 주목할 만한 유구와 유물이 발견됐다. 동서 200m, 남북 180m의 구형으로 조성됐는데, 크고 작은 3개의 섬이 배치됐다.

연못 기슭과 섬에 실시된 호안공사는 정교하고 도수로와 배수로의 시설도 또한 교묘하다. 연못 바닥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와전류로서는 신라 특유의 우미(優美)한 무늬가 있는 것이 많은데, `儀鳳四年(679)` 또는 `調露二年(680)`의 당나라 연호명이 있는 와전은 중요한 자료이다. 불교 예술품으로서 판상의 금동여래삼존상과 금동보살상 등의 우수한 작품이 있고, 유존하는 예가 드문 목조의 배, 건축 부재, 목간 등의 채취와 그 보존에 성공한 일은 귀중한 공적이다.

▲첨성대

첨성대는 신라 27대 왕인 선덕여왕 때 만들어진 천문대다. 국보 제31호. 높이 9.17m, 밑지름 4.93m, 윗지름 2.85m이다. 밑에서부터 4.16m 되는 곳의 남쪽 허리에 한 변이 1m인 정사각형 문이 달려 있다. 모양은 원통형으로 남쪽 문에 사다리를 걸었던 자리가 있다. 30cm 높이의 돌 362개로 27단을 쌓아 만들었다.

내부는 제12단까지 흙이 차 있고, 제19단에서 제20단까지와 제25단에서 제26단까지의 두 곳에 정(井)자형 장대석(長大石)이 걸쳐 있는데 그 양끝이 밖으로 나가 있다. 제27단 내부의 반원(半圓)에는 판석(板石)이 있고, 맞은편에는 판목(板木)을 놓았던 곳으로 보이는 자리가 있다. 판석은 길이 156cm, 너비 60cm, 두께 24cm이다.

꼭대기에는 정자석(井字石)이 2단으로 짜여 있는데, 그 위에 관측기구를 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혼천의(渾天儀)와 같은 관측기구를 정상에 설치하고 춘분 ·추분 ·동지 ·하지 등의 24절기를 별을 통하여 측정하였고, 정자석을 동서남북의 방위를 가리키는 기준으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첨성대가 제단이었다는 학설도 있다. 삼국유사에 신라 선덕여왕 때 건립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이 천문대를 쌓은 돌의 숫자도 재미있다. 361개 반, 음력으로 따진 1년의 날수와 같다고. 도자기 모양을 연상시키는 천문대의 중간엔 사다리를 걸쳤던 흔적이 남아 있는 사각형 문이 있다.

이밖에 대릉원, 계림, 석빙고, 국립경주박물관 등은 걸어서도 돌아볼 수 있는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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