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환 작가·`아시아`발행인
지난 2일 이해할 수 없고 용납하기 어려운 집단행동이 발생했다. 사법연수원생 974명 중 520여명이 로스쿨 졸업 예정자 중 50명을 검사로 우선 임용하겠다는 법무부 방침에 반발하여 임명식을 거부하고 집회를 열었다. 그들 중 하나가 말했다. “불의에 항의하는 것은 사법시험에 합격한 연수원생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을 듣고 나는 개그 콘서트의 “귀가 막히고 코가 막힐 일”이라는 장면을 떠올렸다.

그와 그들에게 묻는다. 불의의 목록에 집단이기주의를 관철하기 위한 탈법적 집단행동이 당연히 포함된 것을 모르는가? 불의의 반대개념이 정의라면, 집단이기주의를 관철하기 위해 공무원법을 어겨가며 집단행동을 하는 것이 정의라는 말인가? 앞으로 판사나 검사로 임용되면 법을 무시하는 집단행동을 옹호할 것인가? 그러면 법치주의나 민주주의가 유지될 수 있는가?

정부에게도 묻는다. 만약 공립학교 신임 교사들이 정부가 마련한 공식 행사장에서 탈법적 집단행동을 했다면, 사법연수생들의 탈법적 집단행동을 다루듯이 한시 바삐 덮으려고 유야무야 넘어가겠는가? 사법연수원장은 그들에게 의사전달의 통로를 열어주겠다는 사탕 봉지를 들고 나왔는데, 신임 교사들이 그랬더라면 사탕 봉지는 고사하고 일벌백계의 채찍을 들고 나왔을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과연 이것이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한 것이며, 이른바 `공정 사회`인가?

그와 그들이 사법연수원 시절을 거치고 나면 얼마나 더 성숙해질지 몰라도 사법고시에 합격한 젊은이들의 정의와 불의에 대한 분별의 수준이 그 모양이니 어처구니없고 서글픈 노릇이다. 그것은 머리는 똑똑한데 시대와 세계를 고뇌하는 영혼이 없다는 단적인 증거다. 법조라는 특정 분야의 특정 기능인으로 굳어져갈 그와 그들의 미래에서 진정한 지적 역량을 갖춘 포괄적 지성인의 모습을 기대하기 어렵다.

문학적인 철학자 니체(1844~1900)는 “광기는 개별적 인간에게는 드문 어떤 것이다. 그러나 집단, 당파, 민족, 시대에 있어서는 일상적인 것”이라고 했다. 라인 강의 기적이라 불린 전후 독일경제 부흥에 이론을 공급한 경제학자 오이켄(1891~1950)은 “집단은 양심이 없다. 집단은 어떤 경우에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 사법연수원생들의 탈법적 집단행동은 두 독일인의 견해가 틀리지 않았음을 새삼 확인시켜 주었다. 물론 그와 그들도 개인으로서는 양심의 한 구석에 불편을 느꼈을 것이다. 혹시 불이익을 받을세라 임명장만은 한 명도 빠짐없이 받아갔다는데, 그와 그들은 그 종이를 받아드는 순간에 손이 조금 떨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집단으로 뭉친 그들에게서는 양심이 하품하는 낌새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집단이기주의의 탈법적 표현방식을 `불의에 저항하는 정당하고 당연한 행위`라고 우긴 것이야말로 집단에는 양심이 없다는 또 하나의 본보기였다.

2011년 한국의 국가적, 시대적 비전은 일류국가에 도달하는 것이어야 한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토대로 삼아 마침내 올라서야 할 선진화의 목표는 일류국가다. 그러나 그것이 국민의 가슴을 울리지 못하고 있다. 복합적 요인들이 작용한 결과다. 당대를 움직일 리더십의 부재와 선진화 개혁의 첫 대상으로 꼽히는 한국정치의 후진적 자화상을 빼놓을 수 없지만, 관용과 타협에 대단히 인색하고 법과 질서의 문란을 야기하는 집단이기주의가 일상으로, 극성스럽게, 폭력적으로 준동하며 특정 종교가 사회통합에 오히려 역행하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타성적 폐습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법무부의 방침에 문제가 있더라도, 그래서 내 밥그릇이 줄어들 소지가 분명히 예견되더라도, 사법연수원생쯤 되었으면 국가와 시대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사색하고 토의하면서 자기 의사를 합법적으로 표현할 방법을 찾았어야 옳았다.

엄연히 공무원 신분인 그와 그들에게 정부는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 그냥 덮고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그와 그들이 자기 분야에서 진짜 한목소리로 규탄할 대상은 `전관예우`라는 너무 오래되고 낯 뜨거운 집단이기주의의 폐습이다. 탈법적 집단행동을 불의에 대한 저항이라고 우겨대는 `귀가 막히고 코가 막힐` 똑똑한 머리들에게 확실히 알려주고 싶다. 일류국가로 가는 도정에서 그대들의 정의 실현은 전관예우 폐지에 앞장서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