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위덕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가을을 왜 독서의 계절이라고 했을까. 일본에서도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독서의 계절로 겨울을 꼽고 있다. 고대 중국에서는 농촌 아이들의 배움을 위해 농한기인 겨울에만 열리는 서당 같은 것으로 동학(冬學)이라고 것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겨울을 독서하기에 좋은 계절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우리나라나 일본은 가을이 책을 읽기에 좋은 날씨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을이 결실의 계절로 독서를 통해 마음의 양식을 풍요롭게 하자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나는 책이 있는 곳이면 마음이 놓인다. 그래서 책으로 가득한 연구실에서 하루 종일 있어도 지치지 않고, 어느새 서재로 변해버린 우리 집 거실은 가장 내 마음에 드는 장소다.

엄마가 늘 책을 읽기 가까이 하자 딸도 책 읽기를 좋아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등교 준비를 하는 것도 잊은 채 책을 읽고 있다. 잠들기 전에는 꼭 책을 읽어 준다. 딸은 지금도 엄마가 책 읽어 주는 목소리를 들어야만 잠이 온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초등학교 1학년인 딸은 어휘력과 표현력이 풍부하다.

얼마 전에 일본 시인이 지은 `세계는 한권의 책`이라는 시를 읽었다.

`책을 읽자. 좀 더 책을 읽자. 좀 더 많이 책을 읽자`로 시작하는 이 시는 문자로 쓰여진 것만이 책이 아니라, 눈부신 햇빛, 별의 반짝거림, 새들의 울음소리, 강에 흘러가는 물소리, 너도밤나무 숲의 고요함, 커다란 고독한 느티나무도 책이라 했다. 이들 `책`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글로 쓴 책이라 했다.

지도 위에 있는 한 점인 작은 나라도 책이고, 그 나라의 거리도 책이고,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책이라고 했다. 사람은 인생이라고 하는 책을 가슴 속에 품고 지낸다고 한다.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노인의 표정도 책이라 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아있는 움직이는 한 권의 `책`인 셈이다.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노인 한명이 죽으면 두꺼운 책 한권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난다.

이 세상에는 책이 아닌 것이 없다고 했다. 세계는 열려 있는 커다란 한권의 책이라 했다.

지금 유럽에서는 `살아 있는 도서관`이 인기라고 한다. 지난 2000년에 덴마크에서부터 실시해서 점점 퍼져 나가 헝가리, 노르웨이 등 30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살아있는 도서관`이라는 것은 평소 잘 접할 수 없는 사람들, 예를 들어 마피아나 동성연애자, 성전환자, 노숙자, 이주민, 전과자, 이슬람교도들을 도서관에서 초대해 직접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으로 사람이 책 역할을 하는 도서관이다.

독자가 읽고 싶은 `책`을 대출하면 30분간 1대1로 그 `책`인 사람으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다. 질문에는 금기 사항은 없으며, 어떠한 질문을 해도 좋다고 한다. 지금까지 일반 독자들이 갖고 있는 편견이나 선입관 등이 직접 이야기를 듣고 대화함으로써 해소되었다고 한다.

또한 `책`이 된 사람도 `독자`의 질문을 통해 일반 사람들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서 스스로도 설명하는 동안에 고민이나 편견으로부터 벗어 날 수가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각양각층의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그러므로 책을 통해서 간접 경험처럼 다양한 세계를 접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 `책`이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오감을 통한 생생한 경험이 될 것이다.

올 가을엔 눈에 보이지 않은 글로 쓴 `책`을 접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 한 권의 `책`이 되기 위한 준비를 착실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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