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락 / 포항장성요양병원장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경험을 쌓아 나간다. 복잡하고 잡다한 희로애락을 경험하기도 하고, 주위로부터 여러가지 갈등과 기쁨을 느끼면서 연령이 증가되어 간다. 사춘기가 되면 이성에 대한 고뇌가 마음을 마구 흔들어 놓다가, 청년이 되면서 짝을 만나 후세를 낳고, 치열하게 살다가 흰머리로 손자 손녀를 안으면서 점점 늙어 가는 게 일생이다. 결혼이란 둘이 사랑의 출발 지점에서 이제 영원을 향해 함께 떠나는 것이다.

연애 시절에는 상대방에게 집착도 하고, 그래서 상대가 자기에게 끌려오면 온 세상이 자기 것이 되는 것같이 느낀다. 그러나 사랑이란 미지의 세계에 뛰어드는 것으로 모험과 같고, 알 수 없는 미래로 빠져 들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신혼생활로 들어가는 것까지는 에로스적인 사랑이 주가 된다. 그러나 그때부터 고뇌가 움트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이후의 생활에는 자기희생이 있어야 되거나, 상대의 희생을 요구하는 생활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아가는 과정에서 사랑이 점점 깊어지면 질수록 자신은 괴롭더라도 상대를 기쁘게 해 주고 싶어진다. 즉 남녀 간의 에로스적인 사랑은 결혼으로 인해 신의 사랑(아가페)이 내재되기 시작한다.

결혼 후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사랑할 수 있다면, 그는 사랑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 세월이 쌓여감에 따라, 그 둘은 공통된 인생경험을 바탕으로 인생의 나이테가 겹겹이 형성되고, 한 번의 시선만으로도 서로를 깊이 이해해 애달픔, 기쁨, 연민, 아픔의 감정을 차곡 차곡 깊이 간직하게 된다.

사람이 부부로 살아가는 데는 결혼 전 성장할 때의 생활습관의 차이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에 간격이 나타나서 많은 갈등을 겪는데 이것은 더 좋은 후손을 낳기 위한 좋은 도구가 되기도 한다. 부부가 같은 환경에서 생활하며 성장했다면 마음이 맞아 사는데 별 다른 어려움이 없어서, 생각의 폭이 좁은 후손이 가능하지만, 부모의 생각차이가 많으면 후손의 생각의 폭을 넓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생각의 차이가 많은 두 사람으로 하여금 사랑으로 빠지게 하는 것은 성격적으로 더 나은 2세를 낳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각차이 때문에 같은 문제에 계속 묶여 버리면 제철 공장에서 우유병을 찾듯 방법이 없어진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부부의 사랑은 점차 에로스에서 아가페로 바뀌어 간다. 아가페는 자기를 상대에게 바치는 수준의 사랑이다. 그들은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격언에 `진정한 사랑이란 마주보는 것이 아니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비올 때 우산을 받쳐 주는 것이 아니라, 비를 함께 맞으며 걸어가는 것이다`라는 것은 백번 지당한 말이다.

부부란 성공적이고 완성된 관계가 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되도록 목표를 같이하는 것이다. 부부는 끊임없이 공동으로 노력하면 우리가 상상도 못할 놀랍고도 멋진 곳으로 그 가정을 인도할 수 있다.

인생을 일장춘몽이라거나, 한 바탕의 허황한 꿈이라는 것은 허무주의의 표현이다. 부부의 사랑은 시간이 흐를수록 둘만의 사랑을 뛰어 넘어, 그 폭이 점점 확대돼 신의 사랑까지로 도착하게 된다. 일상생활에서 평범한 남녀의 사랑 중에서 아가페의 사랑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부부가 되는 것이다.

결혼 후 현실에서 제일 큰 문제를 우리는 자식을 잘 키위서 출세나 부를 확보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자식이 주위에 있는 인간과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즉 인류사랑, 세상사랑 등 신의 사랑을 현실에 접목시켜서 그 사랑을 승화시켜야 한다. 인간이 살아 갈 때 시선은 미래를 지향하지만, 생활은 현재, 내가, 여기서 하고 있다. 인간은 자기의 운명과 자식의 미래 방향을 자기 스스로가 만들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