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씨를 떨구듯

적요한 시간의 마당에

백지 한 장이 떨어져 있다

흔히 돌보지 않는 종이이지만

비어 있는 그것은

신이 놓고간 물음

시인은 그것을 十月의 포켓에 하루 종일 넣고 다니다가

밤의 한 기슭에

등불을 밝히고 읽는다

흔히 돌보지 않는 종이이지만

비어 있는 그것은 신의 뜻

공손하게 달라 하면

조용히 대답을 내려주신다

`떠도는 몸들`(2005)

백지란 텅 빈 여백을 의미한다. 있음과 없음 그 이전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생성을 예비하는, 창조의 모태이고 원형이다. `백지 한 장`을 꽃씨에 비유한 시인은 생성의 시원(始原)으로서의 백지의 존재성에 시의 초점을 맞춘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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