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건너 어둔 숲에 버려진 기와집들

오랜 세월에 바래진 빛깔로 겨우 어른댄다

갓 피어나 버들강아지나 물푸레나무, 하류를

거슬로 올라온 무나무들이 물줄기 휘감고

일어나다 쓰러지길 되풀이하는 동안

내 모습은 홀로 물빛에 잠겨 반짝이고

다 저녁, 가벼운 바람에 휩쓸려 같이 흐르는데

강둑에선 자잘한 풀꽃무더기들

연방 꽃망울 톡 ,톡 터뜨리며 강물을 시샘한다

갈수록 강은 얕아지고 강둑은 높아져도

내 모습은 아래로, 아래로, 검게, 흘러만 간다

`귀 단지`(2004)

이른 봄 강가에서 되살아나는 생명의 불꽃들을 바라보는 시인은 그 경이로움에 놀라고 그들에게 마음과 눈길을 주기에 바쁘다. 봄이 스미는 강가에서 차오르는 생명의 기운들을 바라보는 시인은 또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본다. 자신의 의식이나 마음은 아직 어둡고 차갑다. 그래서 검게 흘러간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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