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나 안데르손 `덕 시티` 민음사 刊, 272페이지, 홍재웅 옮김, 1만원

도발적인 문체와 날카로운 유머로 사회비판적인 작품을 발표해 주목받은 레나 안데르손의 세 번째 소설 `덕 시티`는 미국이 주도하는 소비 만능주의와 그 때문에 빚어지는 전체주의적 사회 분위기를 통렬하게 비판한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안데르손은 일등 국가 `덕 시티`가 뚱뚱한 사람들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상황을 설정해, 패스트푸드와 다이어트를 동시에 강요하는 현대 사회의 실상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대통령이 `체지방과의 전쟁`을 선포한 후 벌어지는 극단적인 상황들은 한편으로는 웃음을 유발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섬뜩한 공포를 느끼게 한다.

끊임없이 식욕과 싸우면서 고통스러워하는 인물들, 뚱뚱한 사람을 인간 취급도 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지금 우리 현실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풍요로운 사회에 대한 문학적 공격이자, 완벽한 몸에 대한 풍자”라는 평가를 받은 `덕 시티`는 출간 당시 스웨덴 대중과 비평가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었으며 독일, 네덜란드, 노르웨이, 핀란드 등 다양한 국가에서 출간됐다.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도시, 덕 시티. 그곳에도 터질 듯이 나온 배가 부의 상징이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덕 시티에서 `흰 고래`, 즉 체지방은 공공의 적이다.

대대적으로 체지방과의 전쟁을 선포한 대통령은 시민들에게 에이햅 작전에 따르라고 강요한다. 이제 사람들은 매일 아침 체지방량을 측정당하고 뭘 먹고 얼마나 열량을 소모하는지 감시받아야 한다. 공장 노동자 도널드, 대학 강사 데이지, 유명한 문학평론가 해럴드는 단지 뚱뚱하기 때문에 사회에서 `쓰레기` 취급을 당한다.

그럼에도 대통령과 손잡은 대기업이 설탕이 잔뜩 발린 도넛을 비롯한 기름 범벅 음식들을 멀쩡하게 파는 상황은 어쩐지 이상하다. 살을 빼야 하는 나라에서 살찌우는 음식들을 적극적으로 팔고 있으니 말이다. 맛있는 도넛의 유혹과 다이어트의 강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덕 시티 시민들은 조금씩 미쳐 간다.

소설은 `덕 시티`라는 가상공간을 통해 대량생산 식품들의 노예, 다이어트의 노예가 돼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자본을 앞세운 대기업은 오감을 자극하는 맛있는 음식과 그것을 먹는 아름다운 모델의 이미지를 동시에 유통하면서 사람들에게 `무한 소비`만 강요한다.

안데르손은 애니메이션 `도널드 덕`에서 힌트를 얻어 가상공간 `덕 시티`를 창조하고 주인공으로 도널드와 데이지, 도널드의 삼촌 존을 등장시킨다. 작가는 미국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를 전파하는 텍스트로도 해석되는 `도널드 덕`을 차용해 절묘한 은유를 탄생시킨다.

`덕 시티`의 JvA는 기름진 도넛을 팔아 이윤을 남기지만, 한편으로 JvA 회장 존 폰 앤더슨은 `날씬한 사람이 우월하다.`라는 인식을 `덕 시티` 전체에 퍼뜨리는 당사자다.

`게으르고 뒤처진 사람들은 무식하게 설탕과 지방만 먹기 때문에 뚱뚱해진다. 그러므로 그들은 무시당해도 싸다.`라는 것이`덕 시티`의 통념이다.

이는 `몸짱`과 `몸꽝`으로 계급을 구분하는 오늘날 흔히 통용되는 생각이기도 하다. 전 세계인들은 이미 다국적 대기업의 햄버거 맛에 중독당한 지 오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날씬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적게 먹고 운동하라는, 이율배반적인 요구에 시달려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덕 시티`는 매일 기름 덩어리를 먹으면서도 바싹 마른 몸매를 유지해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한 현대인들의 삶, `몸꽝`들은 사회 낙오자로 찍히고 마는 암울한 분위기를 신랄하게 풍자한 블랙코미디라 할수 있다.

예전에 노예가, 여성이, 흑인이 아무 근거 없이 차별받았듯 현대 사회는 `기준`에서 벗어나 과도하게 살찐 사람들을 지나치게 괴롭힌다.

남들보다 뚱뚱하다고, 얼굴이 못생겼다고 불행해져야 하는 세상이라면, 그것은 정말 `몹쓸` 사회 아닐까? `덕 시티`는 몸과 정신의 `표준`을 정복하도록 조종당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실상을 파헤친, 섬뜩하고 씁쓸한 소설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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