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로만 기어올라 돌담 위에 전신을 뉜 비루한 삶이 피우는 꽃들이 어찌 저리 큰가? 끝까지 일관되게 그 노란 꽃의 논리를 따라 뻗치던 여름. 그 여름이 이룬 역사의 무늬와 힘줄이 호박의 겉과 속을 밝게 지펴놓는다.

할머니는 그 거대한 열매의 꽉 찬 속을 거슬러오르내리는 길을 안다. 구덩이를 파고 스스로의 똥으로 채운 그 위에 씨를 놓고 흙으로 덮는 것으로 자신의 꿈의 서사를 펼쳤으니, 저 까칠까칠한 호박 넝쿨을 따라가면 틀림없이 당신의 생의 탯줄이 뻗어나온 길을 되짚어볼 수 있으리라.

그렇게 익은 누런 금빛 사상을 툇마루에 덜렁 놓아든 게 참 당당하다.

`작가세계` 2009년 봄호

돌담을 기어오르는 한여름 뙈약볕을 견딘 누런 호박을 보면서 삶의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하는 작품이다. 우리네 짧은 한 생애도 이와 같아서 시련과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나면 안정되고 성숙한 인생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법이다. 까칠한 호박덩굴을 보면서 당당하게 한 생을 살다가 이제는 낡고 늙어가지만 또 다른 의미의 길이 열리고 있음을 시인은 보고 있다. 그 길은 당당함의 길이요 완숙된 생의 길인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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