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마음의 쉼표` 프레시안북 刊, 256페이지, 1만2천원

“조금 더 느리게 가면서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런 삶에 눈을 둘 필요가 있다. 풀 한 송이, 꽃 한 송이를 노래하는 것이 삶을 성찰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폭설이 온 나라를 뒤덮었을 때, 앞으로만 흘러가던 세상의 속도가 잠시 느려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는지. 내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는, 눈이 오면 고립될 때가 많다는 청주 쌍암재 산방에서 생활하고 있는 도종환시인이 삶의 순간순간에 필요한 쉼의 시간을 노래하며 새로운 산문집 `마음의 쉼표`를 펴냈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 발맞추어 숨 가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호흡을 고르며 삶을 성찰하기를 권하는 시인의 깊고 융숭한 이야기들을 함께 묶었다.

동양화에서의 여백, 그 없음이 있는 것들과 함께 어울림으로써 완성되듯, 우리의 삶 또한 순간순간 쉼의 자리가 있어야만 충만해질 수 있다. 쉼표 또한 악보의 중요한 부분이며 쉼표의 자리에서 쉬어 가야 아름다운 노래가 될 수 있듯, 쉴 때 쉴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인생의 박자를 잘 맞추어 가는 사람일 것이다.

살아가는 데 있어 쉼의 순간은 일상의 바깥에 자리한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하며, 바로 그러한 때의 작은 사색이 의미 있는 깨달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하는 우리 시대의 시인 도종환. 지난 2년여 동안 매주 두세 편씩 `프레시안`을 통해 세상에 내보낸 엽서들 중 여든여섯 편을 담은 이 책은 그가 새롭게 일구어낸 느린 시간 속에서 세계를 바라본 깊이 있는 사유와 성찰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프레시안` 손문상 화백의 그림도 함께 실렸다.

각박하게 흘러가는 세상을 한탄하면서도, 그러한 세태의 일부가 되면서 흥미진진한 구경거리에만 눈을 돌리는 사람들은 작은 것 안에 담겨 있는 결코 작지 않은 의미들을 찾아내지 못한다. 그러나 도종환 시인은 풀 한 포기와 같이 작은 것들 속에서도 곰삭은 성찰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의 깨달음은, 큰 것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그가 매주 두세 편씩 세상에 써 보낸 짤막한 엽서들은, 어느 한순간이 아니라 매일의 꾸준한 일상 속에서 배태된 것이다. 하루하루 짧은 시간일지라도 읽고 생각하고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그의 이야기는 그가 일상을 밀고 나가며 몸소 보여준 것이기에 독자들에게 주는 의미는 더욱 각별하다.

“봄은 소리 없이 옵니다. 그러나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옵니다. 지금도 멈추지 않고 몸 바깥으로 새순과 꽃봉오리를 밀어 올리고 있습니다. 겨울에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 이 세상 모든 봄꽃이 다 겨울부터 준비해온 꽃이라고 생각하면 아름답고 귀하기 그지없습니다. 꽃처럼 아름다운 이름과 향기를 가진 사람들도 그 향기와 빛나는 삶을 겨울부터 준비합니다. 모질고 추운 시련의 날을 보내면서도 멈추지 않고 자기 생을 앞으로 밀어 올린 이들에게는 반드시 꽃피는 날이 찾아옵니다. 그들의 생은 시련의 날들로 인해 더 아름답고 향기롭습니다.” (본문 중에서)

도 시인은 우리가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희망을 소각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경계한다. 그리고 “희망은 본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마치 땅 위에 있는 길과도 같은 것이다. 실상 땅 위에는 원래부터 길이 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위에 살고 있는 사람이 많다보니 저절로 길이 생긴 것일 뿐이다”라는 루쉰의 말을 인용하면서 희망이 막연한 것, 만들어낸 우상과 같은 것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가 수없이 그 길을 걸어가서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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