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년 찌든 벽을 도배하려고

액자를 떼어냈다

아하, 외줄로 뻗쳐있는 까만 길

우주에서 내려다본 만리장성 같다

담배씨같이 자잘한 개미들이

큰짐승 눈을 피해 숨죽이고 나래비 서서 다닌

고 작은 발자국들 세발세발 쌓인 길

까마득한 절벽을 타고

히말라야를 넘는 차마고도

님 마중하는 꿈길마다 바윗돌 부서져 모래가 되었다는

옛 노래처럼 작은 빨빨거림이 몽쳐

우주를 꿰뚫은 노래

`푸른시` 2009

포항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 차영호의 시는 꼼꼼하고 세밀하여 독자의 눈과 관심을 끝없이 자잔하고 미세한 풍경이나 일들이 존재하는 곳으로 끌고 다닌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시인의 시선은 천산준령을 기어오르기도 하고 무변 우주로 흩어지기도 하는데, 이 `길`이라는 시를 읽다보면 그걸 절실히 느낄 수 있다. 낡은 벽을 기어오르는 자잘한 개미들의 길을 보면서 히말라야를 넘어가는 차마고도를 떠올리는 시안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개미들의 작은 발발거림에서 우주를 꿰뚫는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려나 귀 기울여 볼 일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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