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 일흔일곱에 들어갔다

한해 뒤 어머니 마흔일곱에 들어갔다

두 사람 다 깊은 밤을 타 들어갔다

들어가기 전 1년 반씩

병고에 시달렸지만 들어갈 때는

병고도 씻은 듯이 놓았다

두 사람 들어간 문은 좁은문은 아닌 것 같다

일흔일곱도 받고 마흔일곱도 받은 걸 보면

좁은 문은 아니나

옷보따리 하나 끼지 못하게 한 걸 보면

엄격한 문인 것 같다

두 사람 거기로 들어간 후 두 번 다시 나오지 않았다

거기 법이 그런가 보았다

하긴 외할머니 어머니

여기서도 법도 잘 지키던 사람들이었다

들어왔으면

문 꼬옥 닫을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이진명 시집 `단 한 사람`

(열림원, 2004)

이진명 시인의 3시집 `단 한 사람`의 표지는 똥색이다. 아니 고운 흙빛이다. 코팅하지 않아 그 빛깔이 편안하고 깊다. 나는 아내에게, 당신도 한 번 읽어보라며 화장대 위에다 시집을 놓아두었다. 아내가 얼마나 읽었는지, 시집의 내용이 얼마만큼의 무게로 아내의 마음속으로 다가갔는지는 모른다. 다만 시집 군데군데 접혀있는 것만 보인다. 시집 뒷장에는 또 요즘 한자 공부에 한참 재미를 붙인 아홉 살 난 내 아이의 꾸불, 꾸불텅한 낙서가 몇 군데 선명히 남아 있다. 우리 집에 있는 수백 권의 시집들 중 우리 가족 모두의 흔적이 새겨져 있는 시집은 이것뿐인 것 같다. 마흔일곱에 돌아가신 어머니 그리고 한해 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 그리고 세상에 덜렁 혼자 남은 시적 화자 이진명 시인의 설움이 시 `들어간 사람들`에 진하게 배어있다. 그러나 감정의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하다. 이진명의 이 시를 처음 읽던 때가 2004년 백중날이었는데, 먼저 떠나간 이들의 모습이 시의 내용과 겹쳐져 슬픔의 물기가 더욱 넘쳐흐르던 그때가 엊그제인 것만 같다. 좋은 시(詩)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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