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미술 작가들에게 가족은 무엇이며 그들은 가족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미술평론가 박영택 경기대 미술경영학과 교수가 그림 속으로 들어온 가족을 이야기한다.

책 `가족을 그리다`는 삶의 많은 시간을 전시회 도록을 넘기고, 전시장을 다니고, 작가들의 작업실을 찾아다니며 보낸 그가 최근 한국 현대 미술에서 유독 가족을 다룬 작업을 자주 접한다는 데서 이 책의 여정을 시작한다. 그는 한국 사회의 가족 문제와 미술 속 가족 이미지를 헤아리면서 그간 우리 미술의 흐름 안에서 가족이 어떻게 다뤄졌는지를 중점적으로 서술한다.

`가족을 그리다`는 고구려 고분벽화 중 부부 그림, 조선시대의 남자 초상화, 근대 초기에 일상의 풍경으로써 등장하기 시작한 가족 그림과 모성이라는 틀에 갇힌 여성들, 식민지 시대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이별과 가난에 내던져진 상처투성이 가족, 농촌을 떠나 가난한 도시 생활을 시작한 빈민 가족, 국제결혼과 동성결혼의 양상, 그리고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독신 여성에 이르기까지, 한국 미술 속 가족이라는 이름의 대서사를 보여준다.

`가족을 그리다`는 그간 출간된 저자 박영택의 책들과 궤를 같이 한다. 그는 `식물성의 사유`, `나는 붓을 던져도 그림이 된다`를 거쳐 이번에는 한국 미술 작가들에게 있어서 가족이 무엇이며, 어떤 식으로 가족이라는 담론이 형상화되고 있는지 마치 지도를 그리듯 촘촘히 들여다본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겪는 모든 문제를 자신의 작업 속으로 불러들여 해명하고자 하는 작가들. 이 책은 그런 흔적과 상처를 모은 것이다. “한국 근현대 미술사의 궤적 속에 `가족`이 어떤 식으로 재현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은 새삼 가족이 무엇인가를 반추하는 일이자 동시에 한국인의 내면세계, 일종의 트라우마를 엿보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다.”

`가족을 그리다`에는 70여 명의 한국 근현대 미술 작가가 등장하고, 110여 점의 예술작품(회화, 조소, 사진)이 펼쳐진다. 가족을 소재로 한 한국 근현대 미술 속에는 전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을 정도로 전통과 현대의 현기증 나는 교차와, 변질의 시간을 체험해 온 한국 근현대사의 표정이 적나라하게 엉켜 있다. 이렇게 가족을 다룬 이미지에는 한 사회의 모든 것이 응축되고 저장돼 있다.

박영택은 그 많은 작가들이 가족이라는 화두를 어떤 식으로 드러내는지를 천천히 따라간다. 먼저 서구에서 태동한 가족의 역사적 개념과 이를 반영한 가족 이미지를 간략하게 살펴보고, 근대로 넘어오기 전 한국 전통 회화 속 가족 그림을 찾아본다.

이 책의 흐름은 오랫동안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이해된 가족이 역사적으로 변화를 거듭한 과정, 그리고 결국에는 왜 가족제도를 반성하고 고민하게 되었는지를 도상으로 펼쳐 보이면서 만들어진다. 시대별로 살펴보는 가족 그림은 고스란히 한국 근현대사의 맨얼굴을 드러낸다. 그래서 가족의 탄생과 성장, 붕괴와 해체, 그리고 재탄생에 이르는 긴 여정을 미술 작품으로 살펴보는 것은 가슴에 잔잔한 공감과 울림을 일으킨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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