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신 / 객원 논설위원·문화중고 총동창회장
한참 전에 이런 우스갯말들이 많이 오갔다. 부부가 30대엔 마주 보고 자고, 40대엔 천장을, 50대에 들어서는 등 돌리고, 60대엔 각방을 쓰며 70대에 들면 어디서 자는지조차도 모른다.

IMF 위기시대가 지나가도 한국 경제는 여전히 어려웠다. 이런 어려운 시대를 통과하면서 한국사회는 4, 50대 백수가 부지기수로 생기고 직장의 문턱도 밟아보지 못한 이태백이 들로 인해 살림살이는 더 팍팍해졌다.

서른이 넘도록 자립은커녕 부모에게 얹혀사는 자식들을 대신해서 일터로 나가는 부부가 늘어났지만 사람과 사람 간에 얽힌 사랑의 온도 차이만은 올랐다.

또 자식들을 다 내보내고 노인 부부만 살아가는 2인 또는 나 홀로 가구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면서 부부의 가치관도 많이 변화하고 이런 세태를 보는 시각도 점차 현실화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서는 20대 부부는 서로 사랑하면 살고, 30대 부부는 열심히 일하면서 살고, 40대 부부는 참고 산다고 한다. 50대 부부는 서로 포기하고 사는 것까지는 앞서와 비슷한데 “60대부터는 감정 세계가 확 달라져 서로 감싸며 살고, 70대에 들면 부부는 서로가 간호사가 되어 산다”고 했다. 한 시대의 거울 같은 말들이다.

사실 결혼 한지 10년쯤 지나면 부부는 성적인 관심은 시들해지는 대신 아이들 건사하느라 정신이 없다.

한국인의 못 말리는 교육열이 결국 부부관계를 소홀하게 만들고 세계적인 이혼율로 가는데 한몫을 하기도 했겠지만 그즈음 한국 부부를 지탱해 주는 끈은 역시 부부의 사랑보다는 자녀들에 대한 책임과 의무였다.

그런 정신으로 인해 실제 파경을 막는 역할이 더 컷을 것이라는 게 사회학자들의 분석이다. 사· 오십대 가장이 겪는 경제 환경도 너무 힘들었다.

자녀들이 고등학교·대학에 다닐 나이에 백수가 돼 그 정신적 고통도 엄청났을 것이었으니 부부의 성관계는 자연스럽게 멀어졌을 터이고, 참고살고 포기하고 살았을 것이다.

금슬 좋기로 이름난 미국에서도 각방을 쓰거나 따로 자는 부부가 늘어나 2015년쯤에는 잠자는 방이 2개로 되는 주택이 60%를 넘을 것으로 뉴욕타임스가 2007년 말 보도한 적이 있다. 동거와 동침은 다를 뿐이다.

신문화에 가장 많이 젖어 있는 미국 부부 가운데 엄마들이 어머니날 가장 받고 싶어 하는 선물은 예외 없이 꼽는 게 있으니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하는 자리다. 미국도 맞벌이 등 두 직업을 갖고 뛰는 부부가 많고 아이들 역시 운동이다 음악학원이다 해서 한자리에 모이기 힘들어서다.

이런 미국 역시 지난해부터 불어 닥친 불경기 여파로 가정이 깨어지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도 오히려 부부가 힘을 모을 가족 식사 자리가 늘어난다는 것.

미국의 주 정부들은 매년 9월 넷째 월요일을 부부는 물론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가족의 날`로 정하고 저녁을 함께할 것을 권하고 있다 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무척 어렵다. 물신(物神)이 지배하는 지금의 세상에선 직장에 쫓기고 자식에 쫓기고 기댈만한 곳이 쉽지 않다. 냉정함이 서릿발과 같은 서양부모와는 달리 당장 춥고 덜 먹더라도 자식부터 챙기는 것이 부부의 마음이니 물신(物神)이 춤추어도 돌아설 수 없는 것이 또한 부부의 혼이다.

부부는 30년을 참고 견딘다고 한다. 아내는 남편의 영원한 누이다. 순간을 이겨내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오면 부생(浮生)의 실패자이니 이 해를 넘기면 다시 새날이 시작될 것이다.

“침실에 아이 사진을 걸어둔 부부는 불행하다”(미국 작가 아옐릿 월드먼 뉴욕타임스 기고 칼럼) 어쨌든 그 정도는 아니지만 “자식보다 남편(아내)을 더 사랑 한다”는 정신이 필요한 시기다.

“한해의 끝자락에서 불현듯 나를 돌아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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