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로 10년째 혼수상태에 빠진 부인을 그리는, 안타까운 사연의 사모곡(思慕曲)을 부르고 있는 국회의원이 있다. 바로 대구출신으로서 경기화성을에서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된 한나라당 박보환 의원이다. 박 의원은 대구초등학교와 경북중·고등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민정당 사무처 공채 6기로 들어와 경기도당 사무처장을 지냈다. 지난 10일 박 의원을 만나 그의 어린 시절 꿈과 추억, 당료로서의 역정, 그리고 국회의원으로서 소신과 포부 등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고향이 대구로 알려져 있다. 구체적으로 어디입니까.

▲사실은 청도가 고향입니다. 다만 아버님이 교직에 계셔서 어릴 때 대구로 이사해 대구초등학교와 경북중·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대구가 고향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죠. 지금은 아무런 연고가 없는 경기도 화성에서, 수도권에서 52%의 지지를 받아서 당선돼 화성이 제2의 고향이 됐습니다.

-어린 시절 고향에 어린 추억들이 있다면

▲장난기도 많았고, 호기심도 많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위험할 때도 있었구요. 초등학교 4년 때 방학이라서 고향인 청도에 놀러 갔다가 연못에 익사할 뻔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보다 2살 많은 형이 저를 구해줬는데, 그 뒤에 그 형의 건강이 안 좋았을 때 숙부님이 하던 병원에서 치료를 해 줘 은혜를 갚기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 대구 동촌에 멱감으러 갔다가 옷을 둘 데가 없어서 나룻배에 뒀는데, 누군가 용돈을 다 가져가 버려서 동촌에서 남구 대봉동까지 2시간가량 걸어서 간 기억도 납니다. 그 밖에 수성 못에서 스케이트 즐기던 일, 수성천변에서 메뚜기 잡으러 다니던 일들이 아련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깊은 에피소드를 소개한다면.

▲초등학교 때 어린이회장을 뽑는 데, 간선제였습니다. 그때는 6학년 1반 반장이 어린이회장을 하게 돼 있어서 반장선거가 치열했는데, 한 표 차로 이겼습니다. 그때 떨어진 친구와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고, 대학은 따로 다녔는데, 외무고시로 공무원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대사로 승진해 귀국했을 때 환영회석상에서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도 그때 기억을 하더라구요. 또 한 번은 경북중학교 때 1학년 3반 반장선거에 나갔는 데, 한 표차로 떨어졌습니다. 그 이후로는 반장선거에 안 나갔죠. 다만 저는 그런 일을 통해 이미 한 표의 소중함을 깨우쳤던 것 같습니다.

-경북중·고 친구들 가운데 자주 만나는 친구들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특히 보고 싶은 친구들이 있습니까.

▲지금도 자주 보는 친구들은 유영학 보건복지부 차관 등 서울에 근무하는 친구들입니다. 그리고 동기회나 총동창회 체육대회, 그리고 일 년에 2번 정도 있는 골프대회때 학교 친구들을 자주 만납니다. 그리고 국회에서는 민주당 김부겸 의원의 경우 고3 때 같은 반이었고, 초등학교도 동기였습니다. 국회서는 교육과학기술위원으로 같은 상임위에 있는 데, 같은 상임위를 같은 반이라고 보면, 33년 만에 같은 반이 된 셈입니다. 고교 한 반 친구 두 명이 같이 국회의원을 하는 경우가 드물고, 더구나 여야로 나뉘었으니 희귀한 케이스일 것입니다.

-어린 시절 꿈은 무엇이었습니까.

▲아버님이 교직에 계셨고, 누님도 교직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는 아버님의 영향을 받아 공무원으로서 봉사를 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료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데, 어떤 계기가 있습니다.

▲군대를 육군하사로 제대하고, 행정고시 공부를 했습니다. 고시촌에 들어가 공부를 했으나 시험에 떨어져서 격려 겸 술자리를 했는데, 2년 후배가 `여러 스타일로 봐서 정당체질이다. 성격도 활달하고, 선후배 간 친화력도 많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쪽저쪽에서 `그렇다`고 동조하면서 `민정당 공채 시험이 있는 데, 시험을 쳐보라`고 권유해 시험을 쳤던 게 인연이 됐습니다. 민정당의 경우 정통성 문제도 있어서 지지를 못 받았지만, 들어가서 배워보자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민정당 공채 6기로 약 50명 정도를 뽑았는데, 4천 명 정도 응시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김형렬 대구 수성구청장이 민정당 공채 7기로, 저보다는 2년 반 정도 뒤에 들어왔죠.

-절절한 사모곡을 부르는 국회의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충청도 아줌마로 불릴 만큼 후덕하고, 마음씨 좋았던 아내가 10년 전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선천성 뇌정동맥 기형`이란 병명인데, 뇌혈관 기형으로 출혈이 일어난 거죠. 출혈량이 많아 뇌손상도 그만큼 많아서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호스로 식사를 하고 있고, 기도 확보를 위해 목도 뚫려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지금도 일어날 것이란 희망을 갖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난 6월에는 줄기세포 시술을 통해 뇌세포 손상된 것을 살리는 수술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내 옆에 운동화를 사 놓고, 병이 나아서 같이 산책을 하는 꿈을 꿉니다. 아이들은 아내가 쓰러질 때 중학교 3학년과 1학년이었는 데, 한창 엄마 손이 필요할 때였습니다. 아이들이 엄마 없이도 바르게 커 줘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고향에서 정치를 하지 않고, 경기도 화성을 선택한 계기가 무엇입니까.

▲지난 2004년 6월부터 2007년 7월까지 한나라당 경기도당 사무처장을 맡았습니다.그런데 2005년 4월25일 당시 경기도 화성시장이 뇌물수수로 형이 확정, 보궐선거를 하게 됐는 데, 선거지원을 하면서 자주 들렀습니다. 당시 화성에서는 여러 사건이 자주 나는 데, 경찰서나 소방서가 없었고, 실내체육관이나 체육문화시설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서울의 1.4배 되는 지역에 이래서야 되겠나 하는 생각에 이어 `이런 곳이 일할 거리가 많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또 그동안 당에서 일하며 쌓아놓은 중앙인맥도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친박의원으로 알려져 있는데, 박근혜 전 대표와는 어떤 인연입니까.

▲도당 사무처장을 할 때 박 전 대표가 당 대표를 했던 인연이 있습니다.그 당시 여러 선거에 박 전 대표가 지원해줘서 모든 선거를 다 이겼습니다. 심지어 지방선거때 시장 군수는 2~3명 떨어졌지만, 도의원은 다 이겼고, 재보궐선거 역시 전부 이겼습니다.

-강재섭 대표와는 각별한 사이라고 들었습니다.

▲강재섭 전 대표가 있으면, (어디라도)같이 갈 만큼 각별한 고교 선후배 간입니다. 강 전 대표는 현직에 있을 때는 불러서 간 적 있을 뿐이지만, 요즈음은 (강 전 대표가) 시간이 있고 하니까 가끔 찾아가곤 합니다. 조만간 (강 전 대표와) 송년 모임도 가질 예정입니다.

-국회의원으로서 꿈이 있다면.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는 인재육성과 과학기술개발에 미래가 달렸다고 봅니다. 그래서 상임위로 교과위를 택했습니다. 장기적 해결 과제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공교육의 질을 높이고, 학교 선생님이 강의를 잘해야 학원에 안 갈 것 아닙니까. 공교육 질을 높이려면 교사질을 높여야 되고, 그러려면 교원평가가 돼야 할 것입니다.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야 합니다. 공부 잘하고 능력 있으면 더 배울 수 있는 건강한 교육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또 지금 국회가 국민들에게 불신을 받고 있는데,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국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지역구 얘기를 하자면, 경기도 화성시에도 이제 경찰서도 유치되고, 소방서가 들어오고, 보건소와 복지센터가 들어왔습니다. 1-2년 후면 종합체육관도 만들어집니다. 지난 1년 6개월 만에 15만명의 인구가 늘어났습니다. 인구증가에 비해 기반시설이 못 따라가는 부분은 더 노력해서 교육과 명품 도시로 만드는 게 제 꿈입니다.

-국회의원으로서 상도 많이 받았던 데요.

▲당연한 의정 활동을 열심히 했다는 이유로 상을 받으니 쑥스럽습니다. 먼저 김형오 국회의장으로부터 받은 상은 일종의 개근상 같은 것인 데, 제주도 김재윤 의원과 공동으로 1위를 했습니다. 흔히 국회 개의시간이 되면 의원회관과 국회에 안내방송이 계속 나오는데, 의원들 빨리 오라는 방송입니다. 저는 그 방송을 듣고 국회의원이라면 개의시간만은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1년 동안 출석체크를 했는 가 봅니다. 최근에는 대정부 질문 때 개의 때, 속개 때, 산회 때 출석을 점검해보니 자리를 끝까지 지킨 의원은 이윤성 국회부의장을 포함해서 정해걸·정하균 의원과 저뿐이었다고 해서 언론에 난 적이 있습니다. 대정부 질문도 문제는 있습니다. 강압적인 데다 중복 질문, 그리고 정치적 질문 같은 것은 낭비요소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상임위 활동에 주력하는 의원들로서 국정 전반에 걸친 현안파악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있었고, 의원의 질문과 정부 답변을 들어본다는 차원에서 자리를 지켰습니다.

-고향 주민들에게 인사말을 하신다면.

▲고향은 대구(청도)지만, 지역구를 수도권에 갖고 있어 자주 못 가서 송구스럽습니다. 지금 대구 경북의 경제적 여건이 아주 안 좋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섬유산업이 사양산업으로 가면서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경기도 의원으로 있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향발전에도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김진호기자 kj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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