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영경북교육청 Hi! e-장학 집필위원
기축년 12장 달력이 한 장씩 떼어지더니 결국 마지막 한 장만 달랑 남았다. 맨 끝에 있기에 다른 달에 비해 관심이 떨어질 것 같은데 `12월`은 인기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등장해 첫날부터 관심을 끌어간다. 아니, 절대 떠나보내면 안 될 것 같은 첫사랑처럼 꼭 붙들고 싶어 아쉬운 표정으로 자꾸만 바라보게 만든다.

불혹을 지나고 나니 하루하루가 쏜살처럼 날아간다. 이제 스무날만 지나면 다시 또 한 살을 먹게 된다. 특별히 이루어 놓은 것도 없이 나이만 자꾸 먹고 있다는 생각에 미안하고 조급해진다. 잠시 그 급한 마음을 멈추고 책상 위에 놓인 달력을 찾아 첫 장부터 다시 한 장 한 장 넘기며 지나온 날들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해오름달, 시샘달, 물오름달, 잎새달, 푸른달, 누리달, 견우직녀달, 타오름달, 열매달, 하늘연달, 미틈달, 그리고 어느새 중순으로 접어든 매듭달까지. 앞만 보며 정신없이 달려온 2009년 345일의 날들, 12월이 되니 미처 챙기지 못한 일들이 떠올라 메모를 시작했다.

먼저 올해가 저물기 전에 따뜻한 밥이라도 한 끼 대접해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은 분이 있어 저녁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오랜만에 좋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니 양념처럼 곁들여지는 귀한 말씀에 마음과 귀를 모두 기울이게 된다. 정담이 오가는 동안 그분이 하시는 말씀 중에 유난히 반복되는 말이 있었다. 바로 `고맙습니다` 였다. 듣기 좋은 꽃 노래도 자꾸 들으면 싫증이 난다는데 그분이 대화 중간마다 쏟아내시는 그 말은 상대편 마음까지 고마움으로 가득 차게 만들며 기분을 좋게 하였다.

몇 년 전에 아름다운 영상과 감동을 담아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인기를 끌었던`고맙습니다`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처음엔 내용도 모른 채 제목이 마음에 들어 보기 시작했다.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와 착한 미혼모,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아홉 살 여자 아이가 주인공이었다. 이 드라마에서 할아버지는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다가 틈만 나면 쏟아냈었다. 할아버지뿐 아니라 주인공들이 습관처럼 주고받았던 그 말은 시청자들에게 따스한 메시지를 남기며 공감을 끌어냈고, 그 후 필자도 `고맙습니다`의 의미를 다시 새기게 되었다.

사람은 자신이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을 도움받았을 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된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상대의 어떤 행위에서 인정과 선의가 느껴지면 더욱 그러하다. 고마움은 나의 가치를 인정하고 높여주는 다른 사람의 지원과 연대에 대한 마음의 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엔 친밀감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정서가 밑바탕에 깔려 있으며 사랑과 공경의 마음까지 담고 있다.

천소영 수원대 국문과 교수는 `우리말의 속살`이란 책에서 `고맙다`의 어원 `고마`가 신(神)또는 신령(神靈)을 지칭하고 `고마`의 형용사형인 `고맙다`는 인간 이상의 존재에 대한 외경의 표현이며, 동사형 `고마하다`는 `공경하다`라는 뜻을 갖는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는데 그 결과 자신은 더욱 성숙해지고 주위 사람들까지 변화시킨다고 말한다. 그날 저녁, 밥상을 가운데 두고 주고받았던 대화에서 주메뉴로 등장했던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아직도 그분의 맑은 낯빛과 함께 떠오르는 걸 보니 그 다섯 글자의 힘이 새롭게 느껴진다.

2009년이 서서히 저물고 있다. 한 해의 끄트머리에 서면 크고 작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떠오를 것이다. 살아가면서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 할 사람이 분명히 있을 텐데 이런저런 이유로 아직도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오늘은 문자로 하든 메일로 하든 아니면 직접 만나 말로 하든 듣는 것만으로도 따스해지는 `고맙습니다`를 한 번 말해 보자. 어쩌면 이 말이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끈이 되어 아쉬움으로 보내게 될 12월을 행복으로 매듭짓게 만드는 최고의 메시지가 될지도 모르니까.

“경북매일신문 독자 여러분! 아낌없이 주신 격려와 사랑,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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