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복덕포항시의원
10월 하순의 아침 날씨는 제법 쌀쌀하다. 얇은 내의가 생각날 정도로 가을은 일찍이도 우리 곁에 와 있었다.

산위에서 시작된 가을은 이미 중턱까지 내려와 곧 산야를 물들일 것이다. 들판은 수확이 한창이고 계곡의 억새는 골바람을 타고 은빛으로 출렁인다. 무감각 속에 모르고 지나간 시간들이 농익은 가을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러고 보면 돌려놓을 수 없는 아쉬움이 계절에만 있는 것은 아닌 듯 하다. 평생, 청년인 줄만 알았는데 어느 날 흰 머리카락이라도 보이면 가슴이 철렁하고 한 움큼씩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면 거울 앞에 서기가 두려워진다. 아침잠이 없으면 벌써 늙었나 싶고 몸이라도 찌뿌듯하면 바깥나들이도 부담스러워 지듯이 세월 뒤에는 항상 아쉬움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하듯 시간과 계절과 세월은 같이 가는 것이지만 우리는 애써 구분하고 달리 이해를 하려 한다. 그것이 순리이고 자연의 법칙일 텐데 인간들이 순응하지 못하는 것은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본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위를 보고 며느리를 본다는 친구들의 청첩장이 날아 들 때마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을 했고 누구는 벌써 손자, 손녀를 봤다는 주변의 이야기에 할아버지 소리가 징그럽다(?)는 생각뿐 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커오는 자식들을 보면 남의 일만 같지 않으니 이걸 어쩌겠나! 추석을 맞아 오랜만에 내려온 딸아이는 훌쩍 커버린 느낌인데 확인이라도 하듯이 “우리 딸이 올해 몇 살이지?” 하고 물었었다. “아빠는 딸 나이도 모르시나?”며 섭섭해 하지만 많지도 않은 둘 자식의 나이도 모르겠는가.

일찍 시집을 온 아내와 비교하면 5살짜리 외손자를 봤을법한 나이인데도 실감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벌써”라는 말만 입 속에 되 뇌일 뿐, 현실로 받아 들이지 않자 아내는 “당신 나이는 생각하지 않느냐?, 당신은 그 나이에 결혼을 했다”며 핀잔을 준다.

아들이 제대를 해도 할 것을 했다는 생각뿐 이었고, 가끔씩 딸아이에게 중매가 들어와도 웃어넘겼으며 최근,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 아내의 귀띔에 “뭐하는 놈이냐?”는 소리가 먼저 나오는걸 보면 아직도 자식의 큼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식들이 커가는 만큼 아비도 나이를 먹어갈 것이고, 다 큰 자식들에게 친구가 생기는 것 또한 당연함에도 말이다.

무릇, 세상의 아버지들은 아직도 할일이 많은 자신의 나이 먹음을 아쉬워한다. 지나간 시간들을 누구나 아쉬워하지만 아버지이기 때문에 더욱 아쉬운지도 모른다.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 사회의 일원으로, 아버지는 아버지 이상의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김현승 시인은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시에서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그래서)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라고 표현하였다. 그러하듯, 세상의 아버지들이 갖고 있는 고민과 걱정은 나이 먹음과 비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내가 쓴 시간은 절반도 아닌 듯한데 훌쩍 지나버린 시간들을 돌아 보면 가슴이 먹먹하고 모든 것이 아쉽다는 것이다. 딸아이의 나이쯤에 불쑥 며느리 감을 데려와서 결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도 그러했을까? 그냥 엄하게만 느껴졌던 아버지도 아비와 같은 감정이 있었을까? 세대가 다르다 해도 무엇이 다르랴 만은 내 나이도 부정하듯이 혼기를 채운 딸아이의 나이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생각을 이제는 지워야 할 것 같다. 시간과 계절과 세월의 순리를 믿지 않았지만 이제는 따라야할 것 같다. 나의 아버지도 그래왔듯이 아버지라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버지이기 때문에 인정해야하는 것이다.

가을이 깊어 가고 있다. 가을이라서 더욱 아쉬운 계절이지만 이제는 지나가는 계절로 생각하며 외롭지 않은 아버지로써 커오는 자식들을 기쁨으로 맞이해야 한다. 어쩌면 그것이 자식들의 바람인지도 모른다. 뿌리 깊은 억새의 강함으로, 휠 듯 부러질 듯 억새의 부드러움으로 가을을 이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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