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진경산수화의 완성자로서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의 명성은 당대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드높다. 모든 중고등학교 미술교과서에 그의 그림이 실려 있으며, 국사와 미술사 교육과정에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는 58세 되던 영조 9년 1733년에 우리 포항 청하현의 현감으로 부임했다.

겸재는 청하에 재직 중 내연산을 매우 사랑하여 자주 탐방하고 중요한 작품을 남겼다. 그는 자신이 답사한 바위에 이름을 새겨 지금까지도 남아 있고, 특히 그의 득의작인 내연삼용추도(內延三龍湫圖)에는 우리가 오늘날 바람을 쐬며 바라보는 내연산 폭포와 힘찬 바위들이 그대로 그려져 있다.

또 자신이 현감으로 재직하면서 그린 청하성읍도(靑河城邑圖)는 오늘날 허물어진 돌무더기로 남아 있는 청하읍성의 옛 모습을 역력히 보여 주고 있다. 가깝고 먼 마을과 들판과 소나무 숲까지, 이 그림에는 지금도 볼 수 있는 청하 덕성리가 고스란히 보인다.

가을 바람이 깊어가는 오늘, 어쩐 행운인지 겸재기념관에서 발간한 겸재 작품 도록을 얻게 되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의 깊은 의취와 호방하고 즐거운 붓놀림이 마음에 가득 담겨 온다. 그러면서, 이런 대선배가 우리 고장에 와서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았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 생각한다. 새삼 청하읍성의 낡은 돌더미가 정겨워지고 내연산의 폭포들이 반가워지는 마음이다.

그러면서, 우리 역시 겸재처럼 우리의 산하를 사랑하고 감사했던가 생각한다. 겸재는 오랜 전통처럼 내려오던 관념적 산수화의 기풍을 넘어서서, 우리 산수와 삶의 아름다움을 가슴으로 받아들였다. 우리 눈앞에 있는 바로 이 산하를, 그는 민족 최고의 미술품으로 승화시켰다. 우리는 오늘 우리 산하를 사랑하는가.

혹은, 정말 겸재가 여기 왔던 것을 알기나 하는가.

겸재는 청하현감으로 부임한 지 2년이 된 1735년 모친상을 당해 사임하고 포항을 떠났다.

/可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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