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가 강간죄 피해자에 남성도 포함하는 등 기존 형법을 획기적으로 손질하는 개정시안을 내놨다.

형법은 1953년 제정된 이후 8차례 개정됐지만, 소폭 개정으로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법무부는 2007년 6월 형사법개정 특별분과위원회를 구성, 개정안을 마련중이며 내년 가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형법 전문가 대다수가 포함된 한국형사법학회와 한국형사정책학회가 지난 3월부터 연구회를 구성해 개정시안을 마련했다.

국내 권위있는 형법학자와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했고, 형법이 제정 이래 큰 변화가 없었다는 점에서 법무부의 개정안에 상당 부분 반영될 전망이다.

다음은 개정시안의 구체적인 내용.

■사형제 존치, 종신형제 불필요

사형제 존치론 근거로는 예방적 효과와 시기상조론이 있고, 폐지론 근거로는 생명권 침해와 예방효과가 없다는 점, 오판의 수정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있다.

연구회는 사형제 폐지시 형법 각칙을 대폭 수정해야 하며 학회 차원의 더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보고 판단을 잠정 유보, 일단 사형제를 그대로 뒀다.

사형제도와 무기징역 사이에 가석방이 없는 `절대적 종신형`을 도입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오히려 해치고, 형벌의 교육목적을 포기했다고 볼 수 있어 타당하지 않다고 봤다.

■존속대상 범죄 가중처벌 삭제

현행 형법의 살인죄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을, 존속살해죄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이처럼 우리 형법에는 존속살해와 존속상해, 존속학대 등 존속대상 범죄는 `패륜범`이라는 이유로 가중처벌 조항이 따로 있다.

그러나 연구회는 피의자를 동정할 여지가 있을 때도 일률적으로 가중 처벌하는 것은 불합리한 점과 가중조항이 없어도 법정형이 `5년 이상`처럼 규정돼 법관의 재량으로 충분한 점, 세계적 경향 등을 반영해 존속대상 범죄의 가중처벌 규정은 모두 삭제하라는 의견을 냈다.

■강간대상 확대·성적 강요죄 신설

형법 제297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법에 `부녀`라고 명시돼 있기 때문에 그동안 남성이 성폭행을 당하더라도 강제추행혐의만 적용했으나 연구회는 남녀를 구분할 이유가 없다고 보고 `사람을 강간한 자`로 고치도록 했다.

또 최근 고(故) 장자연 사건으로 회자됐던 `강요죄`와 관련해 강요에 의해 제3자의 성추행을 받아들이거나 성관계를 하도록 한 때는 가중처벌토록 `성적강요죄`를 신설하라는 입장이다.

■간통죄·혼인빙자간음 폐지

최근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재판관 9명 중 5명이 위헌의견을 냈지만 6명의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가까스로` 합헌결정이 난 간통죄에 대해 연구회는 삭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윤리의 문제에 형법이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고, 부부관계는 원칙적으로 계약관계라서 간통을 하면 계약법의 일반원리에 따라 계약의 해소와 손해배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혼인빙자간음죄 또한 여성을 오히려 스스로 의사결정할 수 없는 주체로 비하하는 것이고, 형법이 윤리적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형법에서 삭제하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