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안 좋으면 아예 안 팔면 되지. 여진 것(안 좋은 것)을 어떻게 팔아. 여진 것 팔아서는 오던 손님들도 다 쫓아내고 말아.”

6일 포항 죽도어시장의 한 모퉁이.

고등어와 갈치 등이 널린 이소향(76·사진) 할머니의 가판에는 소란스러움이 없다.

이따금 물건을 주문하는 손님의 요청에 조용히 토닥이는 도마 소리만이 정겹다.

손님들도 가격을 깎아달라는 등 손질을 어떻게 해달라는 등 아무런 소리없이 값을 치르고 물건을 받아간다.

그래도 할머니의 가판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오히려 `죽도시장에서 최고로 장사가 잘되는 집`이라는 주위 소문이 자자하다.

지난 1978년 처음 장사를 시작한 할머니는 시장과 생사고락을 함께한 `죽도어시장 1세대` 중 한 명이다.

처음 시장을 같이 꾸려갔던 이웃도 대부분 자리를 떠난 지금, 할머니는 묵묵한 고집스러움으로 장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할머니의 고집은 물건을 고르는 안목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생선 도매상들도 “죽도어시장에서 가장 물 좋은 고기는 모두 할머니가 가져간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다.

품질에 대한 입소문을 타다 보니 할머니의 단골 중에는 모 기업체 큰 며느리부터 병원 원장님, 교수 사모님 등 지역 인사들이 수두룩하다.

심지어 인터뷰 중 한 상인은 “시장의 다른 상인들도 집에 갈 때는 할머니 물건을 사간다”고 귀띔까지 했다.

성주에서 태어나 16세 때 경주 천석꾼 집안에 시집 와 대여섯 채의 집과 넓은 논마지기를 꾸려가던 할머니는, 그러나 40여년 전 딸 셋과 아들 하나를 낳은 뒤 부군을 잃고, 지안한테 마저 사기당한 후 도망치듯 포항을 찾았다.

배운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없었던 할머니는 이후 죽도어시장에 자리를 잡았고, 새벽 5시부터 저녁 9시까지 하루도 쉬지 않는 부지런함으로 제법 돈을 모았다.

아버지 없이 자란 자식이라 행여나 구박을 받을까, 할머니는 없는 살림에도 자녀 모두 대학까지 보내는 등 챙기고 또 챙겼다.

다행히 모두 별 탈 없이 장성해 아들은 버젓한 직장인이 됐고, 딸들도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어릴 적부터 총명했던 막내딸은 대구에서 한의원을 차린 어엿한 `의사 선생님`까지 됐다.

지금도 할머니는 그날 제일 좋은 생선은 수년째 단골들이 왔을 때만 상자에서 꺼낸다. 늘 찾아주는 단골들이야말로 어려운 시절, 자신을 살게 해준 은인이라는 할머니의 신념 때문이다.

언제 단골들이 들릴지 몰라, 혹시나 집에서 쉬는 날이면 마음이 불안할 지경이다.

막내딸이 `그만두고 함께 살자`며 간청해도 할머니는 한사코 손사래를 칠 뿐이다. 오히려 열심히 번 돈으로 손자들의 학비며, 생활비 등을 부쳐주는 등 이제는 어린 손자들의 뒷바라지에 억척스럽다.

“장사를 안 하면 몸이 아파.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이 장사를 해야 할 것 같아. 수십년간 내 생선만 찾아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해야 해. 고마운 마음을 좋은 물건 파는 걸로라도 보답해야지.”

/신동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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