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녀석이 또 말썽을 피웠다.

대한민국의 조변석개같은 교육정책이 대학 입시생으로서는 인간이기를 포기해야 하는 공부벌레를 양산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들은 학교공부가 싫은지 자주 거짓말을 한다.

집으로 온 전화에서 담임선생님은 “애가 정규수업 이후 1시간 하는 보충수업을 이틀이나 빼먹고 홀연히 사라졌다”며 아내에게 짜증을 냈다.

스승이 부모만을 탓하며 마치 “애 교육 잘 시키라”는 투였다고 하니 아내가 퇴근전인 남편에게 전화로 하소연할만 했다.

그날 저녁, 아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회초리를 맞았다.

학교 빼먹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이야 커가는 애들에게 무슨 큰 허물이 될 수야 있겠냐만 한두번이 아닌 이같은 일에 거짓말을 밥먹듯 하는 까닭에 다 큰 자식에게 회초리를 들게 했다.

학창시절, 그만한 `잔머리`를 굴리지 않은 사람들이 없으랴만, 회초리를 든 아비의 마음이 편치못했다. 새벽, 다리가 퉁퉁 부은 채 자고 있는 아들을 보며 속울음으로 편지를 썼다.

“다 큰 자식에게 회초리를 들 만큼 자격이 있는 아버지는 못되지만 아들을 사랑하는 만큼 아들을 믿는다”고.

`펄펄 나는 저 새가 우리 집 매화 가지에서 쉬는구나. 꽃다운 그 향기 짙기도 하여 즐거이 놀려고 찾아왔도다. 여기에 올라 깃들어 지내며 네 집안을 즐겁게 해 주어라. 꽃이 이제 다 피었으니 열매도 많이 달리겠네`

전남 강진에서 15년째 유배생활을 하던 다산이 딸에게 보낸 족자로 만든 매조도(梅鳥圖)다.

매화 가지를 찾아온 멧새처럼 딸과 함께 지내고 싶은 아비의 소망이 묻어 있다.

하지만 출가외인, 며느리로서의 본분을 다 하면 예쁜 꽃이 진 자리에 알찬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리듯 기쁘고 즐거운 일이 언제나 가득할 것이란 희망을 전하고 있다.

다산이 보낸 편지는 그의 아내 홍씨가 유배지로 보낸 낡은 6폭의 치마를 잘라 만든 `하피첩(霞陂帖)`.

4첩을 잘라 두 아들에게 편지를 쓰고, 나머지는 작은 가리개로 만들어 딸에게 보낸 것이다.

어머니가 시집 오시던 날 입었던 빛바랜 치마 위에 아버지가 써 주신 훈계의 말씀을 받아 든 자식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하지만 우리사회에는 자식에게 회초리를 들고 훈계를 할만한 자격있는 아버지가 없다. 아버지라고 자처하는 위인들 역시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고 조직과 국가,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만 앞세워 짙은 화장으로의 위선을 통해 사리사욕에만 빠져 있다. 정치는 없고 정파만 있다.

필자 역시 부끄런 아비로서 아들에게 매를 들 자격이 있을리 없겠지만, 한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그 백성들이 아버지를 향해 표출하지 못하는 회초리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훗날 그 자식들이 우리의 아버지들에게 회초리를 들고 호통을 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우리 스스로 반성할 때다.

가시나무새라는 물고기가 있다. 이 물고기는 암컷이 알을 낳고 달아나면 수컷이 홀로 남아 알이 부화될때까지 정성을 다해 키운다. 그리고 새끼들은 그 아비의 살점을 뜯어먹고 살아간다. 아비의 희생으로 대를 이어 그 새끼들에게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다. (바보 노무현 중)

비단 가정사만이 아니겠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는 알을 낳고 달아나는 무책임한 암컷 가시고기는 없는가. 자신의 살점을 `새끼`들에게 먹이며 정의를 지키고 `파사현정`하는 아버지는 있는가? 배고픈 자식들에게 자기 살점을 뜯게 하지는 못할 망정, 회초리를 들고 호통만 치는 이는 없는가. 자기의 허물을 자식들에게 떠넘기고, 사랑이 없는 회초리로 질서를 고집하는 우리사회의 아버지는 또 없는가.

수신(修身)이 이토록 어려울진대, 제가(齊家)만 고집하고, 회초리를 휘두르며 치국(治國)을 욕망하는 자는 또 없는가. 이 삼복더위에 뼈저린 수신을 위해 피땀을 쏟으며 가시고기같은 태산양목(泰山樑木)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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