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비린내 나는 참혹한 전쟁 속 비극·고뇌·갈등

때는 2차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2월. 연합군은 유럽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일본군과의 태평양전투는 점점 치열해지고 있었다.

미군과 일본군 사이에 가장 치열한 전투가 일어났던 곳은 바로 일본 이오지마 섬.

이오지마 섬 전투는 6천명의 미군병사가 사망하고, 1만 7천여명의 부상자를 기록하며 태평양 전투의 중요전환점이 되었는데, 1945년 2월 23일, 마침내 섬을 손에 넣은 미군이 수라바치 산 정상에 성조기를 꽂으며 끝을 맺는다.

당시 5명의 해병대원과 1명의 해군병사가 성조기를 세우는 모습은 AP 통신의 존 로젠탈 기자에 의해 사진기로 찍히고, `이오지마 섬에서의 성조기 세우기`란 제목으로 신문 1면을 장식, 미국민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고 로젠탈 기자는 퓰리처 상을 수상한다.

깃발을 세운 6명 중 곧 사망한 3명을 제외하고 본국으로 송환된 생존 병사 3인은 영웅대접을 받으며 대국민 전쟁기금마련 행사에 동원되지만, 정작 본인들은 자신들을 영웅이라 생각하는데 대해 어색해하고 괴로워한다.

이 영화는 그런 전장의 한가운데를 묘사함으로써 영웅주의의 탄생 배경을 묘사하고 그런 영웅주의가 탄생하게되는 사연을 추문한다. 본국으로 돌아온 세 전쟁영웅은 사실 자신들이 다른 이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안다.

단지 자신들은 성조기를 세우는 옆에 있었을 뿐이고 우연히 그 깃발을 세우게 되었을 뿐이다. 그들이 기억하는 것은 그 깃발을 세우던 영광이 아니라 그곳에서 무참히 죽어나가던 동료들의 마지막 순간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선 단상에서 자신들은 영웅이 아니고 그곳에 목숨을 바친 전우들이 진정한 영웅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는 전쟁기금마련에 한몫을 하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그것은 그들의 진심이다. 아이라와 닥은 모형으로 만들어진 돌산을 기어오르면서 그 당시의 기억을 회상한다.

우연찮게 거머쥔 영광이지만 그 영광은 결코 맛있게 씹어넘길만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기억에 각인된 것은 그 전장에서 세운 깃발의 영광 따위가 아닌 피 흘리고 찢겨져 나간 채 죽어간 전우들에 대한 목도이다.

이 작품은 우리가 전쟁을 기억하는 옹졸한 시선을 탐색하고 지나간 것들에 대해 쉽게 간과해버리는 습성을 지적한다. 모든 것은 세월이라는 필터를 걸쳐 추억으로 미화되고 포장되지만 전쟁이라는 비극이 그 필터에 걸러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전장 한가운데 서보지 않은 이들의 지독한 무지함일 것이다.

명예로운 애국심에 고개를 들던 젊은이들이 전장에서 날아드는 총알과 포격에 공포의 시선을 떨군 채 고개를 숙일 때 우리는 전장의 진실을 발견한다.

우리가 미화하는 전쟁의 명예는 그 현장을 애써 포장하고자 하는 합리적 욕구의 발현과도 같다. 그 현장에서 죽어나간 이들의 본심과 무관하게 우리는 그것을 명예로 미화하고 숭상한다.

과연 그곳에 명예가 있는가. 그곳에는 인간의 죽음이 있다.

승리와 패배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그곳에는 파시즘과 프로파간다에 휘둘려 내몰린 나약한 인간들의 피 비린내나는 비극들이 엉켜있다.

정상에 꽂힌 알량한 깃발의 명예는 그 깃발을 위해 죽어간 수많은 비극들을 함구해버리게 만든다.

전쟁의 참혹함과 영웅주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