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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제주도 도두리 불턱으로 시커먼 음절들이 올라옵니다. 시렁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가난. 대물린 업보로 물속을 헤집다가 바닷물을 털어내며 불턱으로 모여듭니다. 물에 나간 아들, 반백의 아들놈, 행방이 궁금해져 깊은 숨 참으며 깊숙이 잠수하며 아들놈의 그림자를 찾습니다. 숨이 가빠 옵니다. 오늘도 새끼 전복 하나 건지지 못해도 전복 소라 문어 아니어도 아들놈의 반백머리 행여 보일세라 샅샅이 헤집오 보는 세상, 숨이 가빠 옵니다. 아들의 얼굴을 본 듯도 합니다. 지전(紙錢)이 날리고, 숨이 가빠 옵니다. 누군가에게 가뿐히 드려 어디론가 떠나가는 듯합니다. 오후 3시 도두리 불턱으로 모여든 시커먼 음절들, 숨이 가빠 옵니다 가난과 대물림의 운명을 안고 물질을 하는 제주 해녀들의 처연한 삶을 들여다보는 시안이
시
등록일 2016.06.02
게재일 2016-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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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오 천번 절하는 사람 있다. 전도섭(46)은 길 위의 참회자이자 김밥장수. 밀리는 차들은 물론 쌩쌩 달리는 차들에까지, 그는 안타깝게도 여지없이 구십도 꺾은 공손하기 짝이 없는 허리절을 한다. 하루에 칠천 번 절한 적도 있다. 하루 오십 개 파는 김밥은, 그의 절 공덕에 비하면 덤 같은 보시!길거리에서 김밥을 파는 전도섭이라는 사람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인은 이 땅 민중들의 치열한 삶의 한 양태를 찬양하고 있다. 하루에 오천 번씩이나 허리를 꺾어 절하고 김밥을 팔아 먹고 사는 전도섭 같은 사람보다 더 열악한 형편에서 최선을 다해 생을 이어가는 이웃들이 우리들 주변에는 많다. 전혀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게 저들의 삶을 이어가는 치열함에 거수경례를 하고 싶은 아침이다.
시
등록일 2016.06.01
게재일 2016-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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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질수록 눈물은 많아지는가 길게 내리는 산그늘 속 처연한 빛깔의 희디흰 산 벚꽃 같은 이제 조금씩 사람이 되어가나 보다 먼 하늘 한편으로는 아직도 붉은 노을 저리 타고 있는데 치열한 시 정신으로 살아온 중견시인이 한 생을 뒤돌아보며 회한에 잠겨 쓴 시지만 결코 후회하거나 물러서지 않는 생의 자세를 발견할 수 있다. 처연한 빛깔의 하얀 산 벚꽃같이 머리카락은 희게 변해가도 가슴 속 아직도 붉게 타오르는 열정과 의욕이 있어 주저앉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시
등록일 2016.05.31
게재일 201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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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허물어졌다 숲은 불타버린 나무들로 강은 몸이 삶아져 둥둥 뜬 물고기들로 하늘은 방사성 낙진에 가려진 검은 겨울로 대지는 아우슈비츠 화장터의 해골들로 가득 찼다 지구의 나이 동안 쌓아온 생명의 바벨탑이 무너져 내렸다 사랑은 길이 끊어진 전선들과 자동차들이 신음하는 아비규환으로 예술은 귀와 눈을 잃어버린 장애인의 긴 침묵으로 학문은 주소를 잃어버린 책들의 슬픔으로 종교는 무너진 사원의 돌 더미로 문명의 선한 얼굴이 모두 불타버린 시간 속으로 사라졌다 핵미사일 단추가 눌러지던 그 날 빛과 열의 해일을 몰고 죽음이 정체를 드러내던 그 날 칼자국이 난 평화의 틈으로 캄캄한 바람이 불던 그 날지난 가을 일본 히로시마현에 있는 평화공원에 다녀온 적이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피폭된
시
등록일 2016.05.30
게재일 2016-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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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이 없는 나무가 어디 있으랴 바람에 부러지든 톱날에 잘려가든 옹이 없는 나무는 없다 흉터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돌에 걸려 넘어지든 낫에 베어지든 흉터 없는 삶은 없다 살아간다는 건 조금씩은 상처를 입으며 흉터를 만드는 거 깊이 동의하고 싶은 시다. 아무리 미끈하게 잘 자란 나무라 할지라도 군데 군데 옹이가 있다. 시련과 아픔의 상처이며 흔적인 것이다. 우리네 한 생도 마찬가지다. 힘겨운 한 생을 살아가다보면 온갖 굴곡을 겪고 풍상에 시달리며 크고 작은 상처를 입기 마련이다. 그런 상처를 갖지 않는 사람들이 어디 있으랴. 시련과 아픔을 겪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더 성숙한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이다.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시
등록일 2016.05.29
게재일 2016-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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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빛 순수처럼 너를 사랑하고 작열하는 태양처럼 청춘을 함께 불사르고 샛노랗게 해맑은 은행잎처럼 너를 추억하며 파아란 하늘 흰 구름처럼 너를 그리며 밤하늘 아름다운 별들을 함께 세며 눈 덮인 오솔길을 함께 걸으며 흐르는 강물처럼 함께 세월을 보내고 노을 지는 수평선을 함께 바라보며 언젠가 밤하늘 은하수 너머로 너와 함께 가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영원을 향해 함께 가고 싶어 하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시인은 그 사랑의 대상에게 태양, 은행잎, 구름, 별, 오솔길, 강물, 노을, 수평선, 은하수 같은 한없이 맑고 깨끗한 존재인 자연물과 함께 영원을 지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시 전편에 기다림과 그리움의 마음이 잔잔히 흐르고 있어 간절한 시인의 사랑을 엿볼 수 있다.※이 사업은 지역
시
등록일 2016.05.26
게재일 201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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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물소리 따라가면 어머이가 계실까 다듬이질 소리 들리는 쪽마루에 나를 태우고 먼바다로 미신 후 아직 기다리고 계실까 부뚜막에 밥 한 그릇 묻혀 있을까 뒤란 바람벽에 나무 그림자 푸르게 일렁이던 우리 집이 거기 있을까 태어난 모천을 잊지않고 성어가 되어 다시 찾아오는 연어에게는 회귀본능이 있다. 인간에게도 이러한 본능이 새겨져 있다. 생명의 모태이며 성장의 거처였던 고향집에 대한 그리움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지울 수 없는 혈흔 같은 것이다. 고향집 그 툇마루에는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가 있다. 올망졸망 자식들을 키우던 고향집과 어머니의 헌신과 사랑의 향기가 그리워지는 아침이다.
시
등록일 2016.05.25
게재일 2016-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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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석봉이 아재는 무덤을 달고 살았는가 몰라 장가도 안 가고 총각귀신 되어버린 석봉이 아재는 어린 내가 꼽추 꼽추 놀려도 웃기만 하던 석봉이 아재는 더는 서울에도 안 가고 어디에도 안 가고 무당할매 곁을 떠나 너댓 평 점방에서 목을 맸나 몰라 (중략) 생전에 못 가본 마실이라도 간 걸까 애기메꽃 일제히 기상나팔을 불어제낀다 꼽추였던 석봉이 아재에 대한 어린 시절 추억의 서사를, 아련한 그리움과 아픔으로 그려진 그림 하나를 본다. 장가도 안가고 어느날 목을 매고 총각귀신이 된 그 연유는 알 수 없지만 어린 시절 놀려대고 따라 다녔던 기억들이 지금은 애틋한 그리움과 사랑으로 남아 있음을 본다. 지난 날 이 땅 여기저기 이러한 가슴 아픈 일화들이 있었다.
시
등록일 2016.05.24
게재일 2016-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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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꽃은 어느새 푸른 살구 열매를 맺고 나는 오글오글 떼지어 놀다 돌아온 아이의 손톱을 깎네 모시조개가 모래를 뱉어놓은 것 같은 손톱을 깎네 감물 들 듯 번져온 것을 보아도 좋을 일 햇솜 같았던 아이가 예처럼 손이 굵어지는 동안 마치 큰 징이 한번 그러나 오래 울렸다고나 할까 내가 만질 수 없었던 것들 앞으로도 내가 만질 수 없을 것들 살구꽃은 어느새 푸른 살구 열매를 맺고시인의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을 큰 징이 한번 오래 울렸다고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살구꽃이 지고나면 푸른 살구 열매가 맺히듯 풋풋한 어린 생명이 깃든 아이가 성장해간다. 참으로 곱고 푸른 열매가 아닐 수 없다. 오월 푸른 살구나무에 올망졸망 달려있는 살구 알갱이 같은 우리들의 아이들이 분탕스럽고 시끄러운, 불구의 아픈 세
시
등록일 2016.05.23
게재일 2016-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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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솟아나고 가라앉으며 60억 광년 회로를 따라 약속에 이끌려 여기까지 왔다 억만 년 전에 찢긴 흰 구름 푸른 물결로 출렁이면서 이 모래밭에 뿌리 내리려던 한 알갱이 모래 모든 일몰은 죽음으로 간다, 다시 내장되거나 캄캄하게 태어나는 빛! 헤어지지 말아요! 해의 누이 달이 속삭이는 소리 약속을, 동쪽 끝에 걸어두었는데 어느새 혈육으로 깁지 못하는 저녁이 왔다 이 구멍은 테두리뿐인 가락지처럼 속이 환하다! 쌍가락지는 약속의 의미를 띈다. 서로 시간을 견디며 오래 오래 관계를 유지하자는 정표이다. 어느 한 쪽이 사라져 버리면 그 약속은 상처를 입게되는 것이 쌍가락지에 스민 가치가 아닐까. 영원으로의 지속을 염원하며 서로 나눠가지는 쌍가락지는 우주적 순환의 시간 속에서 어쩔 수 없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시
등록일 2016.05.22
게재일 2016-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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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해를 등지고 그림자를 보고 있다 길게 누운 건물들 쓰러진 채 달리는 버스 사내를 밟고 지나간다 몸 가운데 타이어 자국이 선명한 그림자 벌떡 일어나 사내에게서 발을 뺀다 그림자를 잃은 사내는 보도블록에 붙어버린다 멀어져가는 그림자를 쳐다보는 사내 기울어지는 해를 따라 점점 길어진다 그림자에 대한 재미난 상상력을 바탕으로 시가 이뤄지고 있다. 사내의 그림자 위로 지나가는 버스 그림자가 겹쳐지고 사내의 몸 가운데 타이어 자국이 선명하다는 표현이 재미나다. 일종의 그림자 사건은 그림자도 우리의 몸도 텅 빈 것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몸이라는 복잡하고 무거운 존재감을 가볍게 만들어 버리고 있는 것이다. 시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몸과 관련된 심각한 인식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시인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시
등록일 2016.05.19
게재일 2016-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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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까지 가기엔 너무 멀다 가다가 지쳐 그리움을 꺼내 숲에다 걸어둔다, 그리움은 나를 닮아 수염도 까칠하고 참 못생겼다 담장이 없는 마음속엔 늘 산이 보인다 지친 눈으로 가끔씩 하늘을 쳐다볼 때마다 나는 그리움과 정이 든다 그럴수록 너는 나에게 너무 멀다 길은 공간과 공간을 이어줄 뿐 아니라 존재와 존재를 이어준다. 시인이 설정한 존재에 대한 그리움은 늘 길 위에 있다. 그 길을 다 걸어가도 그리움의 대상에 이를 수 없다. 어쩌면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운명을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길을 가고 먼 길을 바라보며 그리워한다. 가 닿을 수 없는 아득한 존재에 대한 그리움으로 우리네 한 생은 가고 있는 것이다.
시
등록일 2016.05.18
게재일 2016-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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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 부리 왁새는 한쪽 발을 들고 진흙바닥에 서 있다 두 발로 물을 밟다가는 연못이 넘칠까 걱정스러운지 목은 길고 뒷머리꼬치 청홍 회백색 날개죽지에 그의 전생이 조금씩 나부끼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전생에게 저항한 흔적을 눈꼽만큼도 남기고 싶지 않은가보다 한 쪽 발로 선 왁새를 바라보면서 그 새의 모습에서 시인 자신의 모습을 본다. 전생을 불의에 저항하면서 살아온 시인 자신의 모습처럼 왁새도 불구의 모습으로 한 발로 서 있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 한 생의 주변에도 이런 인생들이 있다. 철저히 자신의 전생을 숨기는 것처럼 보여도 어디선가 치열하게 저항하며 살아온 그의 전생이 부지불식간에 비쳐지는 경우가 있다. 한 발로 물을 딛고 선 왁새처럼 말이다.
시
등록일 2016.05.17
게재일 2016-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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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가가자 노루귀의 꽃잎을 뜯어먹던 청설모 한 마리가 놀라 달아났다 나는 청설모가 먹다 남긴 노루귀의 꽃잎 하나를 입에 물어 보았다 이 개똥밭을 얼마나 더 굴러야 나는 청설모가 될 수 있을까 언제쯤이나 청설모처럼 아무 생각 없이 나무와 나무를 오갈 수 있을까 집 근처 집개들이 드나들고 노루귀 꽃잎이 피어난 텃밭가에는 청설모가 내려온다.시인은 개똥밭의 청설모를 바라보면서 소유와 욕망에 얽혀있는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있다. 청설모가 먹다 남긴 야생화 꽃잎 하나를 입에 물어보며 번잡한 세속의 가치에 갇혀있는 자신의 삶을 벗고 무욕의 청설모처럼 살고 싶은 심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시
등록일 2016.05.16
게재일 201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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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 카페는 한껏 붉은 입술을 벌린다 초승달 카페는 가끔 아프고 헐거운 주인이 마호가니 바에 앉아서 물고기처럼 술을 마신다 어느 새처럼 울던 사내는 오지 않는다 처음부터 새와 물고기가 사랑한 저녁은 없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 구름이 벗겨진 천장과 강물이 흘러간 마룻바닥과 천둥과 번개만이 누렇게 얼룩진 초승달 카페는 천 길 벼랑 끝에서 삐걱이고 아침이면 아가미 같은 문을 닫는다 초승달의 모양을 바라보며 물고기를 떠올리기도 하고 다시 카페로 상상하는 시인의 상상력이 재밌다. 오지 않는 사랑을, 이뤄질 수 없는 새와 물고기의 사랑을 기다리고 있는 시인은 절대 오지 않을 사랑임을 알고 있으며 그런 사랑은 도저히 이뤄지지 못할 사랑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초승달을 올려다보며 불가능해서 더 아프고, 아파서
시
등록일 2016.05.15
게재일 2016-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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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음에 겨운 한낮 얼음치의 하얀 뱃구레를 살살 간질이다가 혼자된 늙은 사공이 나룻배를 띄우면 얼른 길을 열어주는 강물을 본다 강굽이 따라 간혹 흔들리고 물갈래마다 풀풀 아쉬움을 풀어놓기도 하지만 모래톱에 사근사근하고 모난 돌 머리도 가만 쓰다듬어 주는 참으로 여리고 착한 저 강물 바라보다가 건너편 돌비알 아래 길게 그 강물에 일찌감치 발 담그고 날 새는 줄 모르는 달빛 따라 나도 쉽게 떠나지는 못할 것 같다 건너편 돌비알 아래 길게 발 담그고 늘 그 자리에 푸르게 깨어있는 강물을 눈에 가슴에 퍼담는 시인은 쉽게 그 강가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혼자된 늙은 사공에게 길을 열어주며 외로움을 함께하는 강물, 모난 돌 머리도 가만히 쓰다듬어 주며 품어주는 넉넉한 사랑의 강물, 여리고 착한 강물이기 때문에 시인은 깊
시
등록일 2016.05.12
게재일 2016-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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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 준령 우람한 황악산 겹겹이 산 어깨 위 서쪽 하늘 얼굴을 가리고 산은 산끼리 어깨를 맞대고 나무는 나무끼리 하늘 뜻을 가늠하고 있느니 소백 준령 묵묵한 산 세상! 천년 노송 숲길 끝 나를 씻는 도량(道場)있네 솔향기 목탁소리 뉘우침도 바래며 허위허위 걷다보면 청솔빛 쑥국새 울음 끝 얼굴 씻은 저 별 떨기도 보이느니 소백 준령 황악산을 오르며 겹겹이 이어지는 산과 울울창창한 나무들에서 넉넉한 산의 가슴을 느끼고 있다.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영원을 견디는 봉우리들과 천년 노송을 바라보며 우주의 작은 점 하나로 살아가는 인생을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산자락 절집의 목탁소리와 그윽한 솔향기에 취해 걷다보면 어느듯 저녁 별들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윽하고 깊은 평화경을 걷는
시
등록일 2016.05.11
게재일 201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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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타사 입구 하마교에서 왼편으로 오르다 보면 일월사 터에 홀로 서 있는 삼층석탑 푸른 이끼의 목숨 거느리고 햇살 받고 있다 깨지고 잃어버린 시간의 틈새마다 퍼렇게 자라나는 이끼들이 무르팍에 남아 있는 상처처럼 반짝인다 석탑에 등 기대고 앉으면 오동나무 그늘이 따라와 내 몸에 눕는다 삶의 무게를 뺀 푸른 그늘 내 몸 어딘가를 더듬었는지 서 늘 하 다 말없이 살아온 것들의 푸른 감촉 모진 풍상을 견딘 삼층석탑과 오동나무 그늘에서 시인은 생의 보편적 진리 하나를 발견한다. 깨지고 잃어버린 시간의 틈새에 푸른 이끼의 목숨을 거느린 석탑은 시인이 옹호하고자 하는 가치를 품고 있는 존재다. 비록 아프고 힘든 세월의 상처를 입었더라도 넉넉히 타인을 품을 줄 아는 아량과 배려와 사랑과 헌신의 정신을 삼층석탑에서 시인의 눈
시
등록일 2016.05.10
게재일 2016-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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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가 기어가고 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가 길을 가고 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가 가는 길을 태어난 내가 가고 있다 태어난 내가 무덤으로 가는 길을 태어나지 않은 자가 자궁으로 가고 있다 태어나지 않은 자의 자궁으로 가는 길과 태어난 내가 무덤으로 가는 길이 중복된다 지렁이가 길을 가는 형상은 크게 주목받지 않은 사소한 일이다. 태어나서 한 생을 살아가는 우리네 생도 일상적 삶의 행위의 연속이라는 것이 시인의 인식이다. 우주의 모든 것이 이렇듯 각자의 길을 아주 자연스럽게 가고 있는 것이다. 특별하지 않고, 주목 받지 못하거나 않거나와 상관없이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것이 인생이다.
시
등록일 2016.05.09
게재일 2016-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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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차려준 밥상이 아직도 기억에 있어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너희 집 앞을 지나다 받았던, 첫 애기 입덧 내내 네가 비벼준 열무비빔밥 간절했어 네 자취방의 아침밥도 잊을 수 없어 내가 차렸다는 어린 날의 밥상들이 이십 년 만에 나간 동창회 자리에 그들먹하니 차려진다 함순례 시인의 시에는 어린 시절 홀어머니 아래서 성장하면서 가난과 역경에 치이고 꺾였던 가슴 아픈 흔적들이 많이 발견된다. 어린 시절 친구가 차려주던 열무비빔밥을, 그 그릇에 골싹하게 담겨져 있던 정겨움과 우정을 잊지 못하는 시인의 고백이 감동적이다. 우리들에게도 오래 휘어진 기억의 저편에 이러한 가슴 덥혀주며 평생 잊지못할 따스한 서사가 있지 않을까.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시
등록일 2016.05.08
게재일 2016-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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