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도 이제 많이 쌀쌀해졌겠구나. 수능 시험은 잘 쳤을 것으로 믿는다. 대학입학 준비로 정신없이 하루하루 보내고 있을 네 모습을 생각하니 아련해지네. 요즘 들어 시간이 참 빠르게 흐르는 것 같다. 입대를 한 지 벌써 1년이 다돼가면서 계절도 몇 번이나 바뀌었고, 소대에는 이제 나를 가르쳐주던 선임들보다 새로운 후임들이 더 많아. 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가르쳐줘야 할 책임감을 느끼고 사소한 것이라도 좀 더 신중히 생각하고 어떤 일이든 간에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단다. 소대 막내로 독도에 처음 들어왔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얼마 전 10월25일은 독도의 날이었어. 많은 방송사와 언론사들이 독도의 날을 맞아 독도에 큰 관심을 보여주었다. 그날은 도서지역 합동훈련도 했는데 실전
어머니, 아버지 막내아들 김영웅입니다. 훈련소에서 어머니께서 우시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꾹 참은 채 입대한 날이 어제만 같은데 벌써 의경으로서 마지막 계급인 수경을 달았습니다. 울릉경비대와 독도를 오가면 이번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세 번째 독도는 이전까지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집니다. 군 생활의 마지막, 저 자신의 태도나 심경이 많이 변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모든 상황에서 급한 마음과 초조함이 사라지고 여유를 가지며 생활할 수 있게 된 것이 이 곳에서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유를 갖고 생활하게 된 독도는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산과 바다, 좋은 경치를 좋아하시는 어머니, 아버지께 꼭 보여드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서 두 분이 손을 꼭 잡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태양이 먼저 떠오르는 곳, 대한민국 영토의 최동단인 이 곳 독도에서 쓰는 편지다. 독도에 온지 벌써 2주가 지났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새들의 고향`이라는 별명을 가진 독도에 그 많은 괭이갈매기들이 오늘따라 보이지 않는다. 독도에 오기위해 울릉도에서 약 200리 뱃길을 따라 배들이 접안지 근처로 다가오면 독도경비대원들은 도열을 해 거수경례를 하는 것으로 접안지 근무를 시작한다. 독도 땅을 밟고 환호하는 분들을 보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나온다. 때로는 멀미 때문에 고생하는 분들도 계신다. 독도의 멋진 경관을 분주히 카메라에 담고 태극기나 `독도사랑`등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많은 분들이 독도를 오가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한 분이 있다. 어느 날 양팔이 온전치 못한
차가운 새벽바람 사이를 가르며 우리 현무지역대의 우렁찬 구호가 독도 사방에 울려 퍼지고 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헬기장에서의 체조와 구보로 힘찬 아침을 맞고, 이제 막 날기 시작한 어린 괭이갈매기들도 어색한 비행 연습을 하면서 하루를 맞는다. 아침 인원점검이 끝나면 근무표를 보며 오늘의 일정을 숙지하고 울릉도에서 독도를 방문하는 여객선들이 있는지도 확인한다. 하루에도 여러 번 돌변하는 독도 인근 파도 때문에 혹시나 여객선이 접안을 하지 못할까 걱정되기도 한다. 독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간절한 마음 덕분인지 오늘은 파도가 잠잠해 접안이 가능할 것 같다. 우리 독도경비대의 동료 괭이갈매기 들도 분주히 날아다니는 걸 보니 손님 반길 준비를 하는가 보다. 오전 10시, 높은 파도를
어머니, 아버지 안녕하십니까? 아들 김관훈입니다. 오랫동안 편지를 쓰지 못하다가 독도에 들어와서야 편지를 올립니다. 독도 입도 전 약 50일간의 훈련을 잘 마치고 이달 1일 독도로 왔습니다. 원래 50일 훈련을 마치면 이사준비로 한 주 정도의 시간을 주는데 이번 경우에는 해상날씨 및 여러 변수로 이사준비를 3일 만에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훈련으로 지친 체력을 회복할 틈도 없이 이사준비를 해야 했기에 힘들었을 텐데 저희 대원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이런 대규모 이사는 처음이었기에 생소한 부분이 많았는데 지휘요원들과 선임들의 경험에서 나온 노하우가 저에게 큰 힘이 됐습니다. 아버지 말씀대로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습니다. 울릉도에서 2시간 정도 걸려 도착한
유난히도 길게 느껴지던 이번 여름도 지나갔다. 하루하루 제대일을 손꼽아 세는 대한민국 군인들, 그리고 예비역이면 지금 이 하루의 더딤을 누구보다 공감하지 않을까. 글을 쓰기전에 앞서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각지에서 고생하는 대한민국 군인 모두에게 파이팅을 외친다. 이곳 독도경비대의 취사는 힘들다. 보통의 식당대원들이 다 그러하듯이 주된 업무는 `취사` 즉 밥 짓는 일이다. 이곳은 오전 6시만 되도 언제 새벽이 왔었느냐는 듯 날이 훤하다. 지난달 23일 월요일의 아침 메뉴는 비엔나볶음, 쇠고기 미역국이었다. 아침은 비교적 간단한 메뉴여서 밥 짓기가 한결 수월하다. 아침점호가 끝남과 동시에 독도경비대의 아침 식사가 시작된다. 점심메뉴는 찜닭, 고구마맛탕, 육개장이다. 독도에서의 메뉴는 육류는
모든 만남에는 이유가 있다. 그저 우연히 이뤄지는 만남은 없으며, 어떤 만남이든 그 이유는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여러 종류의 만남이 있으며, 이러한 만남은 모두 소중하다. 내가 지금 발을 디딘 이곳 독도의 독도경비대 또한 내 인생에서의 어떤 소중한 만남을 위한 필연풍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독도는 동도와 서도로 나뉘는데 동도에는 우리 독도경비대가 있고, 서도에는 독도관리사무소 직원들과 김성도, 김신열 독도 이장님 부부가 거주하고 있다. 독도에 입도하고 며칠 뒤, 동향근무를 끝마치고 접안지에 있는데 서도 김신열 할머니께서 기동복에 적힌 나의 이름을 유심히 보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신경을 안 쓰고 지나갔다. 근무 때문에 며칠간 접안지에 내려가지 못했는데 다른 대원들에게 전해 듣기로 할머니께서 나를 찾
오늘은 쓰레기를 처리하는 날이다. 보통 사람들은 독도를 떠올린다면 아름다운 괭이갈매기들이 푸른 하늘을 날아다니는 무인도를 상상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만은 않다. 괭이갈매기들이 하늘을 날면서 단체로 실례(?)를 저지르면 독도경비대 기동복이 괭이갈매기의 변에 뒤덮이기도 하고 동도의 독도경비대 건물과 서도의 주민가옥도 온통 변으로 널려있다. 더욱이 여름이면 관광객이 하루에도 수백여명이 오기 때문에 독도가 무인도라는 말은 사실상 옛말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이러한 이유로 독도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처리하는 작업은 보통 상식으로 생각하는 것 이상 고된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쓰레기를 분리수거한 상태로 모아두었다가 주기적으로 쓰레기 처리용 선박에 싣는다. 하루에 이뤄지기 어려운 만큼 과정이
지난 8월28일 태풍 `콩레이`가 대한민국까지 상륙하려고 했다. 이 태풍 영향으로 울릉도와 독도의 여객선 입출항이 전면 중단됐다. 식사시간 막사에서 식당으로 내려가는데 순간적으로 강풍이 불어 앞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독도에서는 갑작스런 돌풍이 불면 몸도 가누기 어려울 정도다. 헬기장이나 구 접안지 쪽은 굉장히 위험해 비명횡사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독도 의용수비대 시절에는 추락사 하신 분도 있다고 하던데 지금 생각해보면 돌풍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이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 등대 앞에 위령비를 지날 때마다 숙연해지는 이유다. 지난 1일(일요일) 독도경비대와 울릉경비대 전체가 긴장했다. 김귀찬 경북지방경찰청장이 부임후 첫 독도를 방문하는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
아침부터 내리는 빗소리에 깨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비가 왔지만, 대원들은 울릉도에서 들어오는 여객선 접안지 근무를 나가고 나는 오전 10~12시 등대 관측근무 준비를 하는데, 다행히 비가 그쳤다. 비가 온 뒤여서 바람이 차가웠지만, 독도를 지키겠다는 열정으로 추위를 날려버렸다. 오늘은 일요일(8월25일)이다. 하지만, 독도에서는 주말이 따로 없이 1주일 내내 근무를 서야 한다. 그래서 오늘도 등대로 가서 근무를 섰다. 근무하러 갈 때마다 요즘 발전시설을 교체하는 아저씨들과 웃으며 인사를 한다. 오늘 메뉴는 삼겹살! 육지에선 흔히 먹을 수 있는 삼겹살이지만, 섬에서는 특히 독도에서는 아주 귀한 음식이다. 오랜만에 대원들이 다 같이 모여서 삼겹살을 구워먹고,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 간만
지난 12일(월요일)은 두 달여간 수고를 해준 앞 소대와 근무교대가 있었다. 선발대로 지난 9일 들어와 잠시나마 함께 근무를 하고, 이야기를 하며 어려움과 외로움들 속에서 든든히 독도를 지켜준 그들이 고마웠다. 독도에 입도하고 다음날 나에게 큰 비보가 전해졌다. 불과 이틀전까지만해도 제대하면 꼭 같이 학교축제의 노래대회에 나가자고 연락을 주고받았던 친한 후배가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것. 한동안 이를 받아들이질 못했고, 독도라는 너무 먼 곳에 있어 마지막 모습을 지켜봐줄 수 없다는 죄책감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오늘 하루만 눈물 흘리고 다시 `정말 멋있다`,`부럽다`며 항상 치켜 세워준 멋진 독도경비대의 모습으로 돌아가 하늘나라에서 지켜보고 있을 동생에게 떳떳해지자는 다짐을
습한 장마철이 끝나고 뜨거운 태양빛이 작열하는 요즘 접안 지에 선박확인을 하러 내려갈 때면 콘크리트 복사열과 바다표면에 비치는 햇살 때문에 눈이 시린다. 어제만 해도 무더위로 인해 땀이 얼마나 났는지 온몸의 모공이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커진 기분이었다. 이러한 접안지 근무의 문제점들을 극복하게 해주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엔 독도를 방문하시는 여러 민간인 분들의 따뜻한 악수 한 번과 포옹 한 번 그리고 업무, 근무 시간 외의 접안지에서 하는 수영인 것 같다. 무더위와 먹파리, 모기 같은 여러 부수적인 문제점들로 인해 힘이 들고 맥이 빠질 때 독도를 찾아준 국민들이 수고한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로 무더위가 싹 사라지는 기분이다. 전 소대와 독도소대교체를 하고 나서 근 몇 십일을 아무 장비 없이
`애 앵~~`오후 3시 사이렌 소리가 독도의 정적을 깨뜨렸다. 비상사태에 대비해 `FTX훈련`이 시작된 것이다. 사이렌이 울리자마자 전 대원은 개인 총기를 들고 각자 맡은 위치로 일사불란하게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동도에 있는 등대, 헬기장, 선박 접안지 등과 서도 선착장뿐만 아니라 고무보트를 이용해 해상 경계까지 강화한 독도경비대대원들은 서로서로 무전 교신을 통해 상황을 주고 받는다. 과거 오래전부터 호시탐탐 우리의 독도를 노리고 있는 일본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우발사태를 일으킬지 모르기 때문에 저희 독도경비대는 모든 상황에 대비하여 긴장을 늦추지 않고 훈련을 하고 있다. 훈련이 끝난 후 대원들은 다시 각자의 보직에 맡는 위치로 돌아간다. 관측대원은 육안을 통한 해상감시와 울릉도에서
나는 독도경비대 상황실에서 서류 등을 작성,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독도 접안지에 내려가 선박 및 울릉도에서 들어오는 관광객을 맞는 일과는 달리, 대부분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보내다 보니 울릉도에서 복무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외로움과 쓸쓸함을 종종 느낀다. 그래서인지 독도에 들어와 근무할 때마다 더욱더 부모님과의 통화가 잦아지는 것 같다. 딱히 드릴 말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5분 정도의 짧은 통화가 저에게는 큰 힘이 된다. 그러던 중 그저께 어머니께서 다음 주 중으로 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독도로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휴가를 나가지 않아도 가족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정말 기뻤고, 현재 사는 서울에서 독도까지 먼 길을 와주신다는 것에 대해 감사했다. 근무 시간이 끝
지난 일주일간 독도에는 패기 넘치고 용감한 우리 독도경비대원들의 충성소리가 울려 퍼지지 못했다. 우리나라 곳곳에 불볕더위주의보가 내려져 국민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날씨예보가 무색할 만큼 최근 며칠 독도에는 세찬 바람이 불고 있다. 오늘(20일) 아침, 거칠고 높은 파도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저 독도 주위만을 돌던 씨스타 2호는 결국 독도에 접안 하지 못했다. 멀리서 봐도 멀미가 날 정도로 휘청거리던 씨스타 2호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배 밖으로 나와 멀리서나마 손을 흔드는 관광객들의 마음은 큰 위안이 된다. 우리와 인사하진 못했지만 `제2의 독도 경비대`인 갈매기 떼가 우리를 대신해 배 위를 날아다니며 관광객들을 맞아 줬다. 매일 관광객을 맞고자 오르락내리락하던 70도가 넘는 수직으로 뻗은 333
내가 독도 경비대로 지원한다고 부모님께 처음 말씀드렸을 때 위험하고 외롭고 집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며 막내인 저를 걱정하시면서 매우 반대 했다. 그래서 저도 그만 포기하고 다른 친구들처럼 육군으로 지원하려고 생각을 하고 있었던 찰나, 내가 왜 독도 경비대를 지원하려 했었는지 근본적인 이유를 또다시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잡고 다시 부모님을 설득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독도경비대로 뽑혀 독도로 가기 하루 전날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부모님께서 걱정하고 계실 거란 저의 생각과는 달리 아버지의 목소리는 힘차고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들아 나는 네가 너무나 자랑스럽구나” 저희 아버지께서는 아직도 지인 분들에게 항상 자랑을 한다. 우리 아들이 우리나라 동쪽 끝 독도를 지키는 독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말로만 듣고, 사진으로 보기만 했던 독도! 우리 땅 독도에 지난 6월22일 입도하게 됐다. 애초 6월 19일 독도에 들어갈 예정이었지만 갑작스런 장마 탓에 독도로 가는 선박이 출항하지 못해 나를 비롯한 교체 소대원들은 사흘 동안 울릉도 사동리 울릉경비대에서 대기 할 수밖에 없었다. 독도에 바로 갈 수 없다는 실망감이 컸지만 울릉도에서 날이 좋아지기를 기다리며 50일간의 독도의 생활을 그려봤다. “독도는 우리 땅이다”를 직접 독도에 가서 실천으로 보여 줄 수 있다는 설렘과 독도를 찾는 많은 관광객을 맞이할 기대를 하니 하루 빨리 독도에 가고 싶었다. 처음 독도 가는 선박을 타게 된 나는 기상으로 선박이 통제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
오늘(지난 22일)밤 왜 이리 잠이 오지 않을까? 그렇게 시끄럽게 울어대던 괭이갈매기도 이 밤은 조용하다. 입도한지 어제 같은데 벌써 56일이 지나 교대 시간이 됐다. 이제 아침이 밝으면 두 달여 동안 정들었던 독도를 떠난다. 대원들과 함께 울릉도에 있는 울릉경비대로 돌아간다. 독도에 입도 할 때는 신임대원들이 많아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훌륭한 지휘요원들과 대원들의 헌신 노고 덕분에 아무런 사고 없이 임무를 완수하고 복귀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그동안의 독도 접안 지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울릉도를 출발해 독도에 들어오는 많은 탐방객의 애국심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불편한 몸으로 휠체어, 유모차, 지팡이에 의지해 독도 땅을 밟고 감격해 하시는 어르신들의 모습, 갈매기 배설물이 쌓여 있어도 엎드려
저는 이번 독도에 입도하기 전에 `독도경비대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독도로 오기 전에 얼마나 떨릴까, 독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접안지 근무를 하며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 50~60대쯤 돼 보이는 아저씨 한 분께서 저에게 오시더니 사진을 좀 찍어 줄 수 있겠느냐는 부탁을 했다. 그리고는 저에게 카메라를 건네시는데 두 손을 굉장히 떨고 계셨다. 저는 아마 그 떨림이 우리의 땅 `독도`를 밟았다는 가슴 벅찬 감동의 기쁨과 얼마 있지 못하고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에서 나온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 생각은 며칠 동안이나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신임대원 시절 혼자 더블백을 안고 독도를 밟기 위해 배 안에서 설렘 가득한 긴장을 안고 있
지난 4일 청소년 명예독도경비수호대 행사가 열렸다. 이곳 독도에 와서 여러 행사를 접했지만, 청소년들이 주체가 돼 경비대원 업무를 체험하는 일은 처음 접해보는 것이었다. 국회의원 한선교 의원이 기획하고, `수지희망 꿈 터`가 주관한 `청소년 명예 독도경비 수호대` 발대식을 독도에서 갖고 청소년들은 이광섭 독도경비대장, 독도경비대원과 함께 독도경비대원을 체험하는 것이다. 최근 일본 아베 정권의 침략전쟁부정 및 야스쿠니 심사참배, 역사 왜곡 문제가 심각한 요즈음 이러한 행사는 우리에게 있어 뜻 깊을 수밖에 없었다. 독도를 일본으로부터 지키는 첫 걸음은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들의 올바른 역사의식과 독도를 지키는 이러한 실천하는 자세가 아닌가 싶다. 청소년들은 우리 경비대원들을 졸졸 따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