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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에 걸려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우두두두두 앞 유리에 은행잎들 쏟아지더니 신호도 아직 바뀌지 않았는데 날더러 어쩌라는 건지 어디로 가서 견뎌야 할 노란 슬픔이 따로 있는지 바람은 또 어디로 우수수수수 은행잎들을 쓸어갑니다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이라는 단편소설을 연상케하는 작품이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깊은 회의가 묻어나는 이 시는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건지에 대한 자기회의에 깊이 빠진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현대인들의 상당수가 이런 목적성의 상실, 삶의 방향 상실 등으로 휘청거리고 흔들리며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오늘 아침 우리 자신을 한 번 조용히 들여다 볼 일이다.
시
등록일 2012.10.16
게재일 2012-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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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영혼의 땅 티베트에도 거지가 있다 사원이나 찻집마다 따라붙는다 티벳사람들, 주머니가 궁해도 이승의 공덕 쌓게 해주어 고맙다고 거지를 후하게 대한다 시인살이 하루 작파하고 누워 거지같은 생각을 한다 지상에서 가장 높은 거지마을에도 가난한 별빛이 내리겠지 거지노릇 마친 그들과 둘러앉아 지폐를 세고 있겠지 우습다 벼랑 끝 시를 밀고 있는 아, 거지같은 사랑 이승의 공덕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고맙다고 대접받는 티벳의 거지를 떠올리며 세상을 향해 수없이 시를 쓰서 날려 보내는 시인의 삶을 한 번 생각게 하는 작품이다. 거지같은 구걸은 하지 않지만 얼마되지 않는 원고료로 살아가는 시인에게는 벼랑 끝에서 시를 쓰는 듯한 절실함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시
등록일 2012.10.15
게재일 2012-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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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동 선창가에 돌고래 쇼는 없지만 귀신고래들이 가끔 나타난다 난전에 앉아 괭이갈매기들, 유연한 선회를 보면서 어느 부위에 붙어 있던 것인지도 모른 체 고래의 살점을 뜯고 잔을 비운다 젓갈에 묻은 고래는 우리에게 어떤 저항도 없다 오늘 바다는 고래를 담았다가 비운 접시처럼 허전하다 죽도시장 어물전 가장자리에 고래 고기 파는 곳이 있다. 해체되어 조각난 고래의 흔적들을 보는 마음은 안타깝다. 고래 고기 그 특유의 맛이 많은 매니어들을 만들어 고래가 남획되고 결국 그 개체 수가 줄고 멸종 위기에 몰린 적이 있다. 그동안 인류의 약속으로 포경이 금지되었다. 이제 우리 곁으로 바다의 순덕이 고래가 돌아오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고 기쁜 일이다.
시
등록일 2012.10.14
게재일 2012-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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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워크 후문 담벼락 새로 옮긴 골동점 평일당 이만원에 사온 김구림의 에이피 판화 화트만紙에 찍혀 있는 서른세 개의 입술꽃 - 뽀뽀, 라고 찍어둔 - 사랑해요, 라고 찍어둔 - 당신 내 꺼야, 라고 찍어둔 - 미워 미워, 라고 찍어둔 - 우리 헤어져요, 라고 찍어둔 뭉툭한, 퉁퉁 부은, 깡마른, 요염한 헤벌죽한, 나른한, 검은, 검다 못해 붉은 어쩔 수 없이 경쾌한 입술에, 심장에 내 생에 사랑해요, 라고 찍어둔 당신이라는 입술꽃 어느 골동품 그림집에서 이만원 주고 사온 그림, 서른 세 개의 입술꽃이 피어있는 그림을 들여다보며 시인은 하나 하나의 입술꽃에 사랑과 이별, 기다림과 그리움의 의미를 새겨본다. 수많은 의미로 다가오는 그림 앞에서 입술에 심장에 내 생에 깊이 각인된 당신이라는 입술꽃을 생각한다
시
등록일 2012.10.11
게재일 2012-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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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대물림 저고리 하나 있다 큰아이 살다 나온 집 둘째 셋째 넷째 자식 손자까지 만남의 정표로 씨줄 날줄 변색된 바람막이 껍질이 있다
시
등록일 2012.10.10
게재일 2012-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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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점에 온 모녀가 커피가 나오자 기도를 한다 나는 보던 책을 내려놓았다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기도는 길어지고 딸이 살그머니 눈을 떠 엄마를 살피고는 다시 눈을 감는다 하느님도 따뜻한 커피를 좋아하실 텐데...... 속으로 그러다가 기도를 마친 모녀가 커피를 마시는 걸 보고서야 나도 커피를 마셨다 참으로 아름다운 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모녀가 드리는 묵상. 사소한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착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기도의 시간들이 길어져 비록 커피가 조금 식었을지라도 그들이 호로록 호로록 마시는 커피는 세상 어떤 것보다 따스하고 향기있는 것이 아닐까. 밀레의 만종이라는 그림에 나오는 기도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떠오르게 하는 따스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시
등록일 2012.10.09
게재일 2012-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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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 밭에 빠진 날, 힘들고 지친 날 눈도 흐리고, 귀도 막혀서 그만 자리에 눕고 싶은 날 연꽃 보러 가자, 연꽃 밭의 연꽃들이 진흙 속에서 밀어 올린 꽃 보러 가자 흐린 세상에 퍼지는 연꽃 향기 만나러 가자 연꽃 밭으로 가자 연꽃 보러 가자 어두운 세상 밝혀 올리는 연꽃 되러 가자 연잎 위를 구르는 이슬 만나러 가자 세상 진심만 쌓고 쌓아 이슬 되러 가자 이슬 되러 가자 눈도 흐리고, 기도 막혀서 자리에 눕고만 싶은 날삶에 지치고, 기울어지고 찌그러져가는 세상, 온통 진흙탕 싸움질에 바쁜 세상을 바라보며 시인은 연꽃을 보러가자고 한다. 연잎에 송글송글 맺힌 이슬을 보러가자고 한다. 진흙 속에서도 저리 고운 꽃을 피워올리는 연, 흐린 세상에 환하게 불을 켜는 연꽃을 얘기하며 세상의 진심을 얘기하고 있다. 연
시
등록일 2012.10.08
게재일 2012-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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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대낮에 자전거 타고 둑길을 내려간다 맞은 편에서 자전거 타고 오는 흰옷 입은 여인 이마에 땀방울 맺혔다 둑방에 핀 개망초꽃 흔들린다 그와 나도 한 그루 망초꽃인가 고개를 빼들고 햇살에 흔들리다가 시드는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저 스쳐가는 것이다 길 옆에서 산야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개망초꽃. 둑길에 피어나 바람에 흔들리며 햇살을 품는 망초꽃과 자전거 탄 한 여인을 스치며 시인은 자신의 한 생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름 석 자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나 이리 저리 인생의 바람에 흔들리며 햇살받고 살다가 누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쓸쓸히 스치며 살다가 스러져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하는 허망한 깨달음에 이르고 있음을 본다. 우리 또한 저 강둑에 피어난 개망초꽃같은 존재가 아닐까.
시
등록일 2012.10.07
게재일 2012-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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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고 푸른 대를 닮으려 노력하였네 동창이 환해지도록 묵향에 젖어도 보았네 무엇이 이토록 애닯도록 하는 것일까 푸른 댓잎이여 오죽(烏竹)이여 윤선도 오우가(五友歌)를 즐겨 부르며 닦아온 긴 세월이여 중견 문인화가이기도 한 시인의 `묵향`이라는 긴 작품의 한 허리를 잘라내어 음미해본다. 평생을 묵향에 젖어 걸어온 먼 길이 아득하기도 하고 어제 같기도 하리라. 곧고 푸른 대를 닮아 흔들림 없이 꼿꼿이 서서 오직 한 길을 참참이 밟아온 그 정신이 푸른 대나무처럼 푸르게 다가서는 아침이다.
시
등록일 2012.10.04
게재일 2012-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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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은 질 때가 되면 미련없이 떨어진다신에게 연장의 시간을 구걸하지 않는다꽃같이 깨끗이, 미지의 시간을 단념할 수 있을까 연륜은 정직하고 순수하다쓸쓸한 숲의 나무들은 한 켜씩 한 켜씩 연륜을 불빛처럼 켜가고사람들은 밤이나 낮이나언제까지일지도 모르게 그어지는하루살이 꿈을 한 켜씩 켜고 있다 하루, 얼마나 거대한 미래인가하루, 얼마나 꿈꾸는 소멸인가시간은 원광처럼 그대의 등 뒤에서 빛을 발하고나는 그곳을 지나 다른 원광의 터널을 지나이윽고 무거운 꽃을 벗는다 낙화, 한껏 아름다움을 드러내고는 미련없이 꽃은 떨어진다. 그의 시간들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리라. 자연에 흐르는 시간이나 인간의 시간이나 다를 바 없다. 한 칸씩 세월의 흔적을 나이테에 그어가는 나무나 생의 시간을 쌓아가는 인간이나 정직하고 순순하게 그들
시
등록일 2012.10.03
게재일 2012-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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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생선코너에는 묵호 앞바다가 출렁이고 적막 속 눈 내리는 풍경처럼 슈퍼 진열창에는 까만 눈동자들이 차가운 서리를 맞고 있다 모든 것이 어리석은 사랑이었다고 물기둥 같은 한기가 내 귓불을 스치며 속삭인다 폭설처럼 추억들이 눈앞을 스친다. 부정할수록 진실이 되려는 과거는 당분간 싱싱하겠다 슈퍼마켓 생선코너 진열장에서 발견한 꼴뚜기들 까만 눈동자들에서 시인은 지난날의 아픈 추억 속으로 들어간다. 아픔 투성이의 사랑도 잊지못할 아름다운 사랑도 생생하게 거기에 비쳐져 있다. 어찌되었건 우리 청춘의 한 순간이 진지하게 녹아났던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다시는 다시는 이르지 못할 길이 아닐까. 가슴 한 쪽이 시린 아침이다.
시
등록일 2012.10.01
게재일 2012-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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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한 날 베이고 밟혀 피 흘리며 쓰러져놓고 어쩌자고 저를 벤 낫을 향기로 감싸는지…. 알겠네 왜 그토록 오래 이 땅의 주인인지 자기를 베어낸 낫을 향기로 감싸는 들풀, 그 아름다운 용서와 화해를 시인은 본 것이다. 자기보다 강자에게 비록 하찮게 여김을 당하고 짓밟히고 뭉개지더라도 그들을 용납하고 오히려 그들을 품어 안는 향기로운 생의 태도를 우리 인생들도 한번은 생각해 봄직하지 않을까. 그런 들풀들이 진정한 이 땅의 오랜 주인이듯이 우리네 삶에도 더러는 그런 아름다운 풍경들을 볼 때가 있다.
시
등록일 2012.09.27
게재일 2012-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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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날 작은 들판은 그리움으로 빛나고 있었다 오고가는 그 길엔 모두가 노래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태양이 없어도 무지개는 뜨고 있었다 세월의 시계는 멈추지 않았다 현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들판에는 서리가 하얗다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은 가슴에 문신으로 남는다 언젠가는 들판을 건너 돌아오리라는…. 숨겨진 호롱불 하나 켠다가슴 속 묻어 두었던 호롱불, 그 아득한 그리움의 징금다리를 건너보면 시인이 불러일으켜 주는 정겨운 풍경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세월은 쏜살과 같이 휙휙 지나가지만 붙잡아두고 싶은 그리운 풍경들, 그 속으로 흐르는 시간들이 우리 가슴 속에 남아있어 우리를 눈물짓게 하기도 하고 착하디 착한 마음으로 살아가게도 한다.
시
등록일 2012.09.26
게재일 2012-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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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더 이상 배경이 아니다 신전이다 거기에 새나 벌레만 깃든다고 말하지 마라 바람도 사람도 문 살짝 열고 들어가 숨다운 숨을 쉬고 나온다 지나친 바람도 큰물도 넘쳐나는 햇빛도 재우는 넉넉한 오지랖 세상의 격랑들 찾아와 남기고 간 저 경전을 읽어 보라 나무는 신전이고 또한 경전이다. 마북리 700년이나 된 노거수를 본 적이 있다. 인간 수명의 수 십 배를 살고 있는 나무 앞에서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었다. 격랑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 봐온 그 나무는 신전이고 경전이 아니고 무엇이랴. 가장 순리를 존중하면서 싹 틔우고 잎 피우고 성장을 차려입었다가 가을에 열매를 내미는 정직하고 착한 존재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우리네 인간들은 나무를 가만히 들여다 볼 일이다. 말없는 나무의 말에 귀 기울일 일이다.
시
등록일 2012.09.24
게재일 2012-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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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을 겨우 넘자 글자들이 흔들리더니 자꾸 눈을 닦아도 달아나는 낱자들 생각은 산 너머 하늘 노을처럼 번진다 다시 고개를 돌려 돋보기로 낱자를 잡다 눈감고 그저 감감히 눈감고 볼 수밖에 달아나 벽면에 박힌 그 낱자를 찾는다 눈에 안 뵈던 것들 눈감으니 더 잘 보인다 낱낱이 가슴에 쏠려 이슬 빛을 단 것들 그 모두 용서도 하고 실타래를 풀어준다 나이 들면서 시력이 떨어져 잘 보이지 않던 글자들도 심안(心眼). 눈 감고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니 보이지 않던 것까지 훤히 보인다고 고백하는 중견 시인의 시안이 깊다. 낱낱이 가슴에 쏠려 이슬 빛을 단 것들, 혹은 살아오면서 눈에 가슴에 새겨넣은 것들이 하나 하나 선명하게 마음의 눈에 보이는 것이리라. 이 아침 우리도 가만히 눈감고 마음의 눈을 떠보자. 가슴에 쏠려
시
등록일 2012.09.23
게재일 2012-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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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국이 핀단다 못 본 지 하마 한 삼 년 한달비 선바위 돌아가는 굽이마다 높은 햇살 받아 보라스레한 얼굴들 양지와 음지가 마주보고 있는 골짜기에 옹기종기 모여 살던 모습 보고싶다 꿈들 평생을 끌어안고 살아온 고향 바다, 바람 찬 바다 기슭에 핀 해맑은 해국 덤불을 그리는 시인의 눈시울이 젖어있다. 누가 보아주든 보아주지 않든지 간에 시련 속에 피어나 그 아름다움을 간직하는 것이 비단 해국 뿐이랴. 차디찬 해풍과 몹쓸 가난에 꺾이며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는 이 땅의 가난한 이웃들의 그 옹골찬 삶을 본다. 그 애절하면서도 꿋꿋한 한 생애는 눈물겹게 핀 한 무더기 해국 덤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시
등록일 2012.09.20
게재일 2012-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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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보내는 나무 스스로 잎을 버린다 긴 겨울나기 위하여 몸의 무게 줄인 뒤 지그시 두 눈을 감고 부는 바람에 기댄다 흰 눈 쌓여 아득한 겨울 한가운데 살아 온 날 삭여 환한 울림 매달고 영하의 기온 견디는 나이테를 감는다 겨울을 건너기 위해 스스로 이파리들을 내려놓는 나무, 매서운 눈바람에 견디기 위해 나무는 단단히 자신을 단속하고 준비하는 것이리라. 쉬 꺾이고 부서지지 않기위해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는 것이리라.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북풍한설 같은 시련의 시간들이 닥쳐오는 우리의 삶에도 이런 나무 같은 준비와 자기단속이 필요한 건 아닐까. 단단히 마음을 고쳐먹고 어떤 어려움이라도 뚫고 나가려는 강한 생의 의지가 필요한 건 아닐까.
시
등록일 2012.09.19
게재일 2012-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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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다음 차례는 죽음 죽음의 다음 차례는 삶 탄생과 죽음 죽음과 또 다른 탄생 봄의 초록빛 싹과 꽃 다음에는 여름의 녹음과 뜨거운 빛 그리고 가을이 와서 열매를 따면 낙엽이 지고 어느덧 함박눈 쌓이는 겨울과 침묵 우주의 순환은 아름다운 질서다. 계절의 순환은 어길 수 없는 신의 약속이며 축복이다. 그 준엄한 약속은 시작과 끝이라는 당연한 논리에 기초하고 있지만 노시인은 깊은 사유의 한 면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우주의 모든 삶은 죽음에서 비롯되었고 죽음은 또 다른 삶에 이르게 하는 생명의 끈이라는, 절망을 극복하는 빛나는 희망의 한 끈을 우리에게 건내고 있다.
시
등록일 2012.09.18
게재일 2012-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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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있는 부표 위로 내려앉는 갈매기 정박한 목선에 밀리는 파도 아침 햇살이 유리처럼 빛나고 또 하루는 그렇게 시작되고 있다 우리는 떠날 것이다. 바다가 있는 한 삶의 의미는 그곳에 있다 지난 날 저 거센 파도, 드센 풍랑에도 우리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굽히지 않는 삶을 던졌듯이 오늘 아침 우리의 출항도 운명이다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생존을 버릴 수 있는 법 바다 저 넓은 어머니의 품안으로 힘찬 의욕의 그물을 던지며 만선의 꿈을 건져 올리는 것이다 땀방울로 얼룩진 꿈을 건져 올리는 것이다 포구의 아침은 희망차다. 거센 파도와 드센 풍랑과 싸우며 밤새운 투망에서 돌아온 어부들의 어기찬 어깨 위로 동녘의 해는 떠오르고 어획한 고기들이 퍼덕거리는 아침 포구는 생의 용트림을 느낄 수 있는 건강한 시공이
시
등록일 2012.09.17
게재일 2012-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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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자라는 걸 본다 바다를 가둬 두고 소금의 자식들을 키워 내는 물은 사각형의 기억인자를 지니고 있다 빛을 빨아들이던 둥근 어둠이 조각 나서 소금 알갱이가 된다는 걸 바닥은 기억하고 있다 고랑마다 어머니는 수 천 개의 달을 심어 놓은 것이다 내 기억인자는 밭에서 자라는 바다이다 몇 번씩이나 맷돌을 돌려 쏟아 내던 어머니의 밭에서 자란 나는 달이다 수 천 개의 달이다 소금 달이다 무엇이든 생성에 이르는 길은 그 과정이 힘들고 어려움의 연속일 수 있다. 사각형의 소금이 되기까지 바닷물은 수없이 자기를 비우고 또 비운다. 둥근 어둠이 조각나서 되는 소금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네 어머니들의 사랑과 헌신은 소금 결정체보다 더한 시련과 고통의 과정을 그쳐 오늘의 우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거룩한 본능이 아닐 수
시
등록일 2012.09.16
게재일 2012-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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