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밤바다 모래밭을 맨발로 걷으려고 나섰다. 작은 마트 앞을 지나는데 중3 학생인 듯한 남자애 3명이 그 옆 건물의 닫힌 문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웃으며 라면을 먹고 있었다. 반듯한 차림새에 책가방을 갖고 있는 것 같아서 속으로 ‘참 별난 녀석들이네….’하며 힐끗 보는데, 눈이 마주치자 미안한 듯 ‘저 가게가 복잡해서요’한다. 길거리 식사, 학생 때는 그런 낭만도 있어야지 하며 웃어주었다. 그리고 해변을 한참 걷고 집에 오면서 그곳을 지나는데 계단 구석에 쓰레기가 보인다. 녀석들이 먹었던 라면 그릇과 휴지들이 버려져 있었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지난 22대 총선에서 자유우파가 또 참패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압도적인 의석을 차지한 야권은 벌써부터 온갖 위협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공공연히 ‘탄핵’이란 말을 입에 올리고 “협치란 말은 지워라”고 하는가 하면 “국회가 사법부를 통제해야 한다”는 극언도 서슴지 않는다. 국회의원은 각자가 국민을 대표하는 자격을 갖는다. 의결은 다수결로 할지라도 소수의 의견도 가급적 존중되고 반영되어야 하는 이유다. 다수당이라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전횡은 그런 취지를 위배하는 폭거다.여당의 참패와 폭주하는 야권
서울의 한 식당이 인스타그램에 “당분간 의료파업에 동참하는 관계자분을 모시지 않는다. 정중하게 사양한다”는 글을 올려 많은 조회 수를 기록했다. 미쉐린 가이드에 이름을 올린 유명 식당이다. 반응이 엇갈렸다. 응원 댓글도 많고 별점 테러를 하겠다는 이도 있다. 노이즈 마케팅이라며 평가절하 하기도 했다.식당 주는 최근 종합병원을 찾았다가 의료 파업 현장을 보고 이 글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쟁취하려는 게 도대체 무엇이냐?”고 비판했다.타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의정 갈등에 국민의 피로도가 급상승하고 있다. 식
기본소득이란 재산이나 소득이 많든 적든 일을 하든 안 하든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지급하는 돈이다. 모든 국민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보장하자는 취지에서 나온 복지 개념이다.2016년 스위스는 전 국민에게 보편적 기본소득을 지급할지 여부를 물었다. 전국민 투표 결과, 국민의 76%가 반대했다. 18세 이상 성인에게 매달 2천500 스위스프랑(약 300만원)을 지급하고, 어린이·청소년에게는 650 스위스프랑(약 78만원)의 기본 소득을 나눠주자는 것인데 반대가 훨씬 많았다.스위스 국민의 반대는 지금보다
어제부터 강한 꽃샘바람이 분다. 겉옷이 날릴까봐 양팔로 감싸고 걷는데도 옷깃을 들추며 스며드는 바람 때문에 수시로 옷섶을 여미고 있다.나무는 나와는 달리 온몸으로 바람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다. 오히려 바람의 손길에 운명을 맡긴 듯하다. 그런 연유로 벚꽃 잎이 하르르 하르르 떨어지더니 길섶마다 소복하게 쌓인다.꽃잎을 밟으며 걷는데, 문득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이 생각난다. 얼마 전에 중고등학생들과 이 시로 수업할 때였다. 나는 문학 작품을 분석하고 비평하는 수업을 할 때에 ‘역할 바꾸기’를 자주 요구한다. 소설에서는 등장인물, 시
24절기 가운데 일곱 번째가 입하(立夏)다. 태양의 황경이 45도에 위치하며, 2024년에는 어린이날인 5월 5일(음력 3월 27일)이다. 음력으로는 4월의 절기다. 입하는 곡우(穀雨)와 소만(小滿) 사이에 해당한다.명리학에서는 동지(冬至)를 새해로 보지 않고, 입춘(立春)을 새해로 본다. 하늘은 이미 새해가 되었지만, 땅은 입춘이 되어서야 새해가 되는 것이다. 하늘의 기운이 땅으로 내려오는데 그만큼 시차가 필요한 것이다. 입하(立夏)의 입(入)은 계절이 시작됨을 알리는 절기를 표현한다. 실제로 이전 기운인 봄이 아직 남아있는 상태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마주 앉는다. 만시지탄이지만 반갑다. 두 사람 모두에게 국민과 나라를 위한 진정과 진심을 기대한다.시대정신과 역사담론은 차차 살피더라도, 급한대로 민생을 돌아보는 공감과 배려가 나타났으면 한다. 시장이 한산하고 가게에 사람이 없다. 도시마다 도심이 사라졌고 마을마다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시내버스가 빈 차로 달리고 지역공동체가 활력을 잃었다. 경제적으로 힘이 빠지고 문화적으로 생기가 없다. 누구 탓이라 할 것 없이 사회 일반이 가라앉는 느낌이다.대통령과 정부가 심기일전의 각오로 경제와 민생을 살피고, 야당과
‘저자’는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가게, 작은 규모의 시장을 이르는 말이다.‘저잣거리’는 가게가 늘어서 있는 거리라는 뜻이다. 가방(街坊), 시항(市巷) 등으로도 불렸다.저잣거리는 원래 서울시 마포구 밤섬에 있던 마을 이름이다. 조선시대 나루터가 발달한 곳에 저자가 형성됐다. 지금은 이름만 남았다. 전국 민속 마을에 저잣거리가 조성되고 있다. 조상의 생활상과 정취를 맛보게 할 목적이다.충남 아산시 외암마을은 16세기 중반에 조성된 예안 이씨 종족마을이다. 민속문화재 등 전통 가옥이 많은 충남 지역의 대표적인 민속 마을이다.아산시는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물과 에너지가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 식물과 동물도 방식만 다를 뿐 물과 에너지를 이용해 살아간다. 사람도 입으로 음식과 물을 섭취해서 살아간다. 이건 선택하는 문제가 아닌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일이다. 먹어야 하기 때문에 위장의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입으로 들어온 물과 음식은 식도를 통과해 위장으로 들어가서 분해된 후 소장 대장을 거쳐 대변으로 나가고 또 물은 소변으로 배출된다.이 필수적인 과정 때문에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문제가 위장의 문제이다. 음식이 들어가면 필연적으로 위장 소장 대장을 통
사후 시신기증서를 썼다. 2000년 어느 봄날이었다. 죽으면 없어질 몸이다. 땅에 묻기 전, 불 속에서 타기 전, 의대생들의 공부에 도구로 쓰이는 것이 더 유용할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내 몸이 공부용으로 쓰일 것이라 생각하니 더 귀하게 여기게 되었다. 되도록 온전히 그들에게 넘겨주기 위해선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되도록 내 몸의 병력도 제대로 기록해 두어야 할 것 같아서 수술할 일 있을 땐, 가능한 한 시신기증한 병원에서 했다.그때 아들들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 서명을 받으면서 동시에 유언 비슷한 얘기도 남겼다. 흔적을 남기고
인사는 조직 내 혁신과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좋은 인사정책은 직원들의 창의성과 열정을 촉진하여 혁신을 유도한다. 효과적인 리더십과 인재 관리는 직원들의 역량을 향상시켜 기업의 성과를 높이는 것이다. 인사는 조직의 문화와 성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잘 구축된 인사 전략은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킨다. 세계 선진기업들은 경영 비전과 전략에 맞춰 개인과 조직의 성장을 인사에서 제시하고 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혁신의 모멘텀도 인적자원관리에서 기인되며 기업 문화로 간다.최근 4차 산업혁명에 전기차가 부상하면서 자동차 배
온통 초록빛 세상이다. 눈길 닿고 발길 닿는 곳마다 연두와 초록이 손 흔들며 반기고 있다. 앞서거니뒤서거니 봄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나는가 싶더니, 대지는 하루가 다르게 초록빛과 연둣빛의 싱그러움으로 여울지고 있다. 겨우내 당당한 상록수의 잎새들이 군데군데 진초록으로 자리잡고, 그 언저리에 연초록의 잎사귀가 겹쳐서 피어나며 일제히 초록빛으로 출렁거리는 듯하다.헐벗게 보이던 산과 들도 봄날이 깊어지면서 산뜻하고 생기 넘치는 초록의 새 옷으로 갈아입은 셈이다.만물이 생동하는 봄의 새싹과 잎사귀는 왜 하필이면 초록빛일까? 도대체 초록색의 비
집권여당 사상 유례없는 총선 참패를 두고 빚어진 윤상현 의원과 권영진 당선인(대구 달서병) 간의 설전은 국민의힘 향후 진로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윤 의원은 여당의 험지인 인천 출신이며 이번에 5선고지에 올랐고, 권 당선인은 재선 대구시장 출신에다 이번에 재선 국회의원이 됐다. 둘 다 당의 미래를 이끌고 갈 중진이다.설전은 윤 의원이 지난주 “영남 중심당의 한계가 총선 참패의 구조적 원인이며, 이들이 공천에 매달릴 수밖에 없어 당 지도부나 대통령에게 바른 소리를 전달하지 못했다”고 언급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대해 권 당선인은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코로나19 대응 교훈보고서를 발간하면서 한국을 모범사례 중 하나로 소개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대응과정 중 얻은 교훈을 전 세계적으로 공유해 향후 팬데믹 가능성이 높은 감염병 대유행에 대비하자는 취지로 만든 이 보고서에 한국의 코로나 극복과정이 모범사례가 된 사실은 자랑할만한 일이다.코로나19가 4년 3개월 만에 엔데믹 상황을 맞는다. 작년 8월 코로나19의 감염병 등급을 계절성 독감과 같은 4급으로 분류한 정부는 5월부터는 사실상 코로나 종식을 선언했다.병의원 등에 남아있던 실내 마스크 착용의무가 사라
미술관 건축은 건축 이상을 의미한다. 미술관은 미술을 담는 공간이지만 미술관 건축은 그 자체로도 예술이다. 어떤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지, 어떤 전시를 기획하는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미술관의 첫 인상은 미술관 건축에서 비롯된다. 마찬가지로 미술관에 대한 기억에 있어서도 다름 아닌 건축이 차지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파리의 루브르하면 유리 피라미드,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 하면 나선형 계단, 파리 퐁피두센터하면 외부로 노출된 설비시설이 떠오를 정도로 미술관의 기억은 곧 미술관 건축에 대한 기억이다.예술성, 기능성, 상징성, 공공성
커피콩 가는 소리가 들리면 함께 사는 강아지는 바빠진다. 손님이 온다는 걸 눈치 빠른 강아지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재빨리 창문 쪽으로 다가간다. 목을 길게 빼고 손님을 기다리기 위해서다. 좋은 향이 날아가기 전에 손님이 빨리 왔으면 싶다. 나는 언젠가부터 손님이 오지 않는 날은 커피를 내리지 않는다. 지구별에 보내는 내 작은 성의다.커피만큼 사람을 휘어잡는 것이 또 있을까. 주변에 밥은 굶어도 커피는 마셔야 산다는 이들이 꽤 있다. 헤어날 수 없는 커피의 마력에 빠진 이들이다. 악마의 유혹에 이끌린 사람들로 인해 거리엔 카페가 넘
4·10 총선 전 어느 아침.옆 아파트 담장 안쪽에서 보랏빛 꽃을 앙증스레 피워내는 한 그루 라일락을 올해도 만났다. 너무 반가웠다. 아니나 다를까. 라일락 향기가 몸과 마음의 온 세포를 윤슬처럼 일렁이게 했다. 대체 라일락은 어떤 유전자를 가졌기에 저토록 자기 삶에 정직, 진실할까.식물은 거짓을 모른다. 본능대로 살며 꽃피우고 열매 맺는다.한데, 자칭 만물의 영장(靈長) 인간은 어떤가. 영적 존재, 윤리, 도덕, 진선미, 지정의, 신망애, 과학기술 등을 앞세워 가장 진화했다고 자화자찬해온 인간이다. 화성에서 인간의 헬기가 뜨는 시
지난해 12월 ‘당사국총회 COP28’이 개최된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를 다녀오면서 사 온 선물 중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중동의 대표적 동물인 낙타 모양의 귀여운 인형이었다.만약 호주로 여행을 갔는데, 호주에서만 서식하는 캥거루나 코알라를 사정상 볼 수 없었다면 얼마나 섭섭할까? 우리는 날마다 새롭고 첨단화되는 핸드폰, TV나 자동차를 선호하지만, 한편으로는 변함없이 인간과 함께해온 자이언트 판다 ‘푸바오’ 같은 동물들에게도 열광한다.이처럼 인간이 일부 동물을 좋아하는 사례는 인간의 감성적인 필요성 일부이지만
기울어진 선체가 캄캄한 물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고작 52시간은 수십 년처럼 막막하고, 차가운 바다에서 학생들이 죽어갈 동안 땅의 어른들이 헛되이 버린 골든타임 72시간은 억겁처럼 까마득했는데 10년은 참 빨리도 갔다. 너무 빨리 지난 10년이 섬뜩하다. 나는 가끔 악몽을 꾼다. 안개가 자욱한 바다 위에 섬인지 유령선인지 분간할 수 없는 검은 형상이 어른거리는 꿈을. 회색 바다 위로 뒤집힌 배의 구상선수 부분만 떠 있는 이미지는 우리 모두에게 강력한 상징이 됐다. 그것은 곧 어른들의 탐욕과 국가의 부재, 세계의 부조리함을 지시한
혼자 살던 집에 동거인들이 생겼다. 바로 작고 작은 반려 식물들이! 하나 둘 씩 모으던 식물이 점차 수를 늘려가며 벌써 다섯이 되었다.집안일을 다 끝낸 무료한 주말엔 집 근처 식물 가게에 간다. 처음엔 분명 구경을 하러 가는 것이지만 왜인지 나올 땐 식물이 하나씩 손에 들려 있다. 아마 식물 가게 주인의 엄청난 영업 실력 덕분이지 않을까.내가 제일 처음에 들인 식물은 스파티필름이다. 어린잎이 하나둘씩 자라더니 갓 파마를 마친 할머니 머리처럼 바글바글 풍성해졌다. 현재는 꽃차례에 하얀 불염포를 피우고 있는데 얼마나 기특한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