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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하나를 보태다

등록일 2022-05-22 19:32 게재일 2022-05-2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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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전망대와 병곡방파제의 빨간등대.

고래불에 처음 간 날, 바람이 몹시 불었다. 하늘로 오르려는 모양의 전망대로 향하는 우리 일행을 휘감았다. 바람 혼자였다면 뚫고 지났을 텐데, 하얀 모래가 덩달아 신이 나서 방파제를 오르고 있어서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명사 이십 리에 가득한 모래가 하도 고아서 바람을 타고 얕은 담을 넘어 배가 정박한 항구의 영역을 침범했다. 다른 날 또 오리라 다짐하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대학 동기 언니들이 동해를 따라 드라이브하자고 해서 나섰다. 그 말에 바람이 길을 막던 고래불부터 들르자 했다. 날이 좋아서 입구의 구멍 숭숭 뚫린 고래 조형물 위에 사람이 함께 유영하듯 매달렸다. 누가 봐도 고래불 해수욕장이라는 안내문 같다.

전망대를 보러 방파제로 향했다. 바닥에 물 위에 햇살이 일렁이는 무늬가 그려져 파란 바다 위를 걷는 듯하다. 그 위에 지난 바람에 슬쩍 담을 넘은 모래가 둔덕처럼 쌓였다. 가만히 보니 바닷가에 오래 살았던 바람이 솜씨를 부려 모래에도 바다의 물결을 그대로 그려 놓았다. 모래에서 샤라락 파도 소리가 들릴까 싶어 몸을 낮춰 사진을 찍었다.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고래 전망대에 올랐다. 빙글빙글 계단을 오르자니 내부 벽에 귀신고래와 망치고래를 그려 놓았다. 몇 발짝 더 오르니 밍크고래가 보이고 범고래도 곧 물을 내 뿜으며 숨을 내쉴 품새다. 향유고래 이름과 설명을 읽다 보니 꼭대기에 다다랐다.

고래불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멀리 둥그런 모래사장 뒤로 소나무 숲이 검게 보였다. 그 모양이 낮게 엎드린 고래 모습이다. 고려의 학자 목은 이색이 상대산에 올라 고래가 뛰노는 것을 보고 경정이라 하였다. 경정을 우리말로 풀이하면 고래가 뛰노는 벌이다. 고려인의 눈이 되어 바다를 보자니 햇살이 눈이 부셔 손차양을 하고 휘 돌아보니 맞은 편에 빨간 등대가 섰다. 병곡 방파제 테트라포드는 회색 시멘트색인 다른 곳과 달리 빨강 파랑이 뒤섞여 독특했다.

조선의 실학자 이규경은 글에 고래가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만 산모에게 미역을 먹도록 하는 이유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를 전한다. 바닷가에서 한 사람이 헤엄을 치다가 갓 새끼를 낳은 어미 고래가 숨을 들이쉴 때 고래 배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는 고래 뱃속에 미역이 가득 붙어 있고 장부의 좋지 않은 피가 녹아서 물이 되고 있음을 보았다. 간신히 고래 뱃속에서 나와 고래가 미역으로 산후의 보양 삼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렸다. 사람들도 비로소 그 좋은 효험을 알아 이후 산후에 미역국을 먹게 되었다는 것이다.

첫아이를 낳고 삼 칠 동안 친정엄마가 끓여주시는 미역국을 하루 네다섯 끼를 먹었다. 많이 먹어야 회복이 빠르다고 배가 꺼지기도 전에 상을 내 앞에 밀었다. 옛 어른들 말이 틀린 게 없다며 오래 끓여 깊은 맛이 나는 국물을 들이켰더랬다. 태어나서 엄마 젖을 통해 그렇게 먹었던 미역국을 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먹는다. 고래에게 배운 깊은 깨달음을 먹는 것이다.

고래불은 영해면 대진해수욕장과 이웃한 해수욕장이다. 울창한 송림에 에워싸여 있으며, 금빛 모래는 몸에 붙지 않아 예로부터 여기서 찜질을 하면 심장 및 순환기 계통 질환에 효험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해변 길이가 8km에 이르고, 동해인데도 얕은 수심이라 아이들과 헤엄치기 안성맞춤이다.

고래불 가까이 일곱 개의 보물을 간직한 칠보산 자연휴양림이 있다. 찾아가는 길이 구불구불 소나무 가득한 숲길이다. 따로 예약하지 않았기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책로를 따라 오른다. 여러 코스가 있지만 우리는 전망대까지 걸었다. 시인들의 시를 한 편씩 읽다 보니 정자가 나타났다. 날이 좋아서 푸른 능선 너머로 고래불이 보였다. 하~ 좋다. 밤을 휴양림에서 보낸 사람들은 푸른 고래불에서 뜨는 붉은 일출을 보겠지. 칠보산의 일곱 개 보물에 숲에서 보는 바다라는 풍경 하나를 더해 팔보산이라 이름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김순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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