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욱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노승욱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팬데믹에서 엔데믹으로 가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트윈데믹이란 말이 등장했다.

트윈데믹은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독감(인플루엔자)의 동시 유행을 뜻한다. 그러더니 ‘멀티데믹(multiple pandemic)’이란 말까지 나왔다. 최근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로 인한 급성호흡기감염증이 트윈데믹에 추가됐기 때문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올겨울 미국 전역에서 RSV 감염 환자가 증가 추세를 보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달 초 경기도의 한 산후조리원에서 신생아 11명이 RSV에 집단 감염됐다. RSV는 아직 예방 백신이나 적합한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았다. RSV로 인해 급성 모세기관지염에 걸린 대다수 환자는 9세 이하의 어린이로 알려져 있다.

현재 독감 유행도 심상치 않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올해 45주 차 인플루엔자 의심 환자는 평상시 유행 기준의 2배를 넘어섰다. 코로나19의 재유행도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근래 들어 우리나라의 코로나19 확진자는 일본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국제통계분석사이트인 ‘아워월드인데이터’에서는 최근 일주일간 100만 명당 확진자 숫자 1위가 대한민국이라고 발표했다.

이번 동절기에 멀티데믹이 현실화되고 있지만, 국민들의 경각심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위드 코로나’에 익숙해져 버린 측면도 있다. 올봄 오미크론 대유행을 거치면서 집단 면역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기도 했다. 염려되는 것은 현재 상황에 대해 정부와 국민 간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미크론 변이에 대응하는 개량 백신 접종률도 전체 인구의 3.7%에 불과하다.

실제로 주변에서 개량 백신을 맞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올봄 오미크론 확산 때 2~3차에 걸쳐 미리 백신을 맞았지만 결국은 걸렸다는 체험적 이유가 크다. 또한 백신을 맞고 나서 치르게 되는 여러 증상들에 대한 불편함과 두려움도 있다. 무엇보다 일년에 코로나19 백신을 몇 번까지 맞아도 안전한지, 접종을 하고 난 후의 부작용 대비 효율성은 어느 정도인지를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적다.

멀티데믹 현상이 우려되자 방역 당국은 개량 백신 추가 접종을 강조하고 나섰다. 정기석 코로나19 특별대응단장 겸 국가감염병위기대응자문위원장은 “치명률이 100배가 넘는 병을 예방하지 않고 독감에 더 집중해서 예방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최근 코로나19 개량 백신 접종률이 독감 백신 접종률의 6분의 1 수준인 것을 지적한 것이다.

개량 백신 접종에 대한 방역 당국의 독려는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국민들은 독감 백신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반면에 코로나19 개량 백신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정보가 부족하다. 정부는 개량 백신 접종률이 낮은 것을 지적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에 대한 소통에 문제는 없었는지 성찰해야 한다. 또한 국민이 국가를 신뢰할 때 멀티데믹이 극복될 수 있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