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균 창원대 명예교수
이명균 창원대 명예교수

죽음에 대한 얘기를 예전엔 금기로 여겼지만 요즘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그렇더라도 칠십을 조금 넘긴 필자가 죽음에 대한 생각을 얘기한다면 나이 드신 분들은 무엄하다할지도 모르겠다. 어느 보험회사의 TV광고에서 ‘유병장수’라는 어휘를 보았을 때 병든 노인에게 저주를 보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필자는 돌아가신 어머님의 별세에 대해 가끔 생각하곤 한다. 당신께서는 잠을 주무시다 조용히 세상을 뜨시겠다고 생전에 자주 말씀하셨다. 사람이 죽는 순간엔 목숨을 편안하고 쉽게 거두어야 된다며 예순이 지난 뒤부터는 보약이나 건강식품 같은 것을 일체 드시지 않으셨으며, 간혹 선물로 받으신 건강식품은 자녀들이나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셨다. 그 이유는 나이든 사람이 보약이나 건강식품 같은 것을 먹어봤자, 새롭게 힘이 많이 솟아나지도 않을뿐더러, 그냥 목숨만 더 오래 유지되게 할뿐이라는 것이었다. 당신께서는 9년 전 만 82세로 세상을 뜨셨는데 평소 말씀대로 밤에 혼자 주무시다 돌아가셨기에 6남매 자녀들 중 아무도 임종을 못하였다. 시골집 텃밭에 심어놓은 고구마를 가을이 되면 수확하여 우리 형제들에게 보내주겠다고 하시던 어머님이랑 전화통화를 했던 동생이 그 다음날 오전 약속시간에 맞춰 어머님을 찾아갔을 땐 이미 숨을 거두신 뒤였다. 일반적으로는 자식으로서 부모의 마지막 임종을 못하면 불효라고 여길지 모르겠으나 필자는 솔직히 말해서, 그러한 죄책감은 전혀 없었다. 당신 생전에 장례절차, 49제를 지낼 절, 화장한 유골 모실 곳(가족 자연장지)까지 직접 방문하시며 필자와 함께 모든 의논을 다 해놓은 터였다.

필자는 15년 전 대학병원에 시신기증을 하였으며 얼마 전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도 하였고, 현재는 어떤 건강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은 상태이며 암이나 중병에 걸려도 항암치료나 연명치료 등은 일체 하지 않기로 하였다. 미소 짓는 나의 모습의 영정사진도 마련해놓았다. 사람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끊어서도 안 되지만 의료기술에 의지해 억지로 연장하는 것도 자연이치에 어긋난다고 본다. 신체와 의식이 건강하면서도 타인이나 사회에 조금이라도 이로운 일을 할 수 있거나 적어도 부담은 주지 않는 정도에서 세상을 살다 떠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통상적 기준으로 세상을 살만큼 살았다면 언제 어디서 쓰러져 죽더라도 전혀 아쉬움이나 문제가 없도록 생전에 모든 조치를 다 해두어야 할 것이다. 오래 살면서 나이 많은 것을 무슨 큰 훈장처럼 자랑하며 내세우거나 그렇게 비친다면 보기 좋은 모습이 결코 아닐 것이다. 유병장수가 가족이나 사회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짐이 될 수밖에 없을 뿐 아니라 무병장수도 자칫하면 누군가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은 질병치료와 건강관리를 적극적으로 하여야 마땅하다. 그러나 죽음이 본인과 가족들의 고통과 부담을 없애주는 좋은 수단으로 여기고 자신의 생각, 활동, 주변 등을 잘 정리하면서 노년을 보내는 것이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필자에게 무병장수와 무병단수 중 선택하라 한다면 단연코 후자를 택할 것이다.